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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에이치제이 Jan 28. 2022

그, 1월 28일

꼭 29번의 잠 - (미완성의 나머지) 2 토리노


꼭 1번의 잠, 토리노 2일




+++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비를 좋아하지만

로마가 아닌 토리노에서 비 오는 1월의 어느 날은 얼음물 속에 몸을 담근

차갑고 축축한 느낌이다 이곳에서 12월의 드레스덴을 떠올린다

습하고 차가운 겨울의 공기도 닮았지만

낯선 이에게 무관심한 사람들 정갈하지만 딱딱한 풍경도 어딘가 비슷하다

환한 시선으로 제대로 마주한 도시의 첫인상을 섣부르게 판단한 거겠지만

흘깃거리는 시선을 받지 않고 편히 다닐 수 있어 이편이 좋으면서도

여태껏 겪은 이탈리아의 인상과 달라 이편이 낯설다





긴 여행의 일정 때문에 고급 호텔에 머물 수는 없지만

내게만 허락된 적당한 1인실 싱글 배드는 어쨌든 마음은 편하고

그래도 이곳은 Bar와 Ristorante를 겸하고 있는 곳이라

포함된 조식이 꽤 괜찮아서 그 점이 좋다 그중에서 단연

Barista가 직접 내려 준 카푸치노가 환상적이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말에 여는 플리마켓이 길 위에

정갈하게 늘어선 곳에 다다랐다 그 사이를 지나며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서 잠시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마켓을 지나 일상이 배인 거리의 가게들을 지난다

그래 이곳도 그냥 사람 사는 모양이 다르지 않은 곳이다





번화한 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큰 대로변으로 나오니

앞으로 자주 보게 될 낡고 오래된 오렌지색 트램이 마침 지나간다

토리노의 메인 스트리트의 교차로에 서면 트램과 버스가 기가 막히게 교차하는

교통체계에 좀 감탄하게 되는데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세련되고 긴 트램들과 비교하면

레트로의 이 작고 오래된 오렌지 트램은 지난 시간을 품고 여전히 달리는

시대의 역사를 기념하는 가장 멋진 교통수단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앞으로 직진하다가 직각의 길들이 교차한 지점에서

90도로 꺾어 다른 대로변으로 내려가 본다

여전히 잘 닦인 길들 큰 건물들 넓고 깨끗한 공원이 도시 계획에 충실한

편리하고 전형적인 도시 풍경의 연속으로 다가온다

토리노는 바닥의 돌마저 오래되고 울퉁불퉁한 회색빛 유럽의 돌바닥과

조금 다른 듯한 느낌이 들어 중부와 남부의 이탈리아만 경험했던

나로서는 이 도시가 내가 아는 이탈리아 도시들의 배다른 남매인 것만 같다






토리노의 쇼핑 스트리트로 들어섰다

그래도 이 거리는 대로변의 풍경보다는 덜 삭막한 느낌이다

사람들 상점들 버스와 트램 교회 조금은 낡고 오래된 건물들

모든 것이 복잡하고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길에 들어서서야

도시의 진짜 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된다


쇼핑을 썩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했지만 아기자기하고 특이한 것을 또

그냥 지나치지는 못해서 자꾸만 쇼윈도에 진열된 앙증맞은 유혹들을

뿌리치지 못하고 슬금슬금 욕심 낸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이탈리아는 더 반가워서

잠시 교회 안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오래 건축물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토리노의 수많은 상점들 중에서 모르고 지나치면 아쉽고 섭섭해지는

유명한 매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떤 유명한 브랜드 체인의 1호점이라는 고유한 수식은

아주 매력적이고 커피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이 매장을 직접 본 것은

아주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토리노는 자연친화적인 콘셉트를 표방하는 슈퍼마켓도 많았다

머무는 동안 여행자에게도 유용한 이 두 곳의 슈퍼마켓을 나도 찜해두었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방에서의 심심하고 무료한 시간을 위한 

요거트와 과일과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샀고

묵직한 장바구니는 늘 소소하게 즐겁다


이곳이 바로 

라바짜Lavazza 1호점




낯 가린다고 하기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추위도 잊은 채 거리를 쏘다니다가

 거대한 압박감으로부터 숨어들기 좋은 골목길을 발견했다

광활한 자연은 좋은데 거대한 콘크리트는 버겁고

좁은 공간에서 안정감과 존재감을 느끼는 나도 참 미묘한 인간이다

그렇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이렇게 예쁘고 아기자기한 길이 나고

그 길 위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아니겠나


(아침의 플리마켓에서도 이 거리에서도 물론 다른 모든 장소에서도 그랬지만

여행의 말미라면 사버렸을지 모를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걸 살 수 없어 얼마나 아쉬웠는지)





돌아오는 길에 세 번째 교회와 마주치고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예쁜 상가주택을 마주한다

낯가림이 나아지고 있다 그렇겠지 다른 모습을 한 모든 것은 다른 매력을 품고 있고

사람이든 도시든 한 번에 드러나지 않는 매력을 서서히 발견하는 건 

참 흥미롭고 설레는 일이지





+


오늘 마트에서 사 온 여러 가지 군것질거리 중에서

내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아이스크림이었다

밥보다 군것질을 원래 더 좋아하지만 여행하는 동안 먹은 간식거리들이 몸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조금 걱정이다 이렇게 돌아다니는데도 바지가 헐렁해지지 않는 걸 보면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칼로리를 섭취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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