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2월 3일

꼭 29번의 크리스마스 - 3 드레스덴

by 윤에이치제이

꼭 3번의 잠, 첫 번째 도시에서의 세 번째 크리스마스





am5시 의식이 조금 분명했다 두통도 조금 분명했다

밤새 이불속에서는 땀이 많이 났고 공기는 차가워서였다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두통은 내 집에서나 내 집 아닌 곳에서나 변함없이 성가셨다


am8시가 넘도록 두통을 가라앉히려 안간힘을 쓰고 괜찮다는 속마음 주문을 반복했지만

그래도 안될 때는 타이레놀이 답이다

스무 살이 된 후 버스를 오래 타고 통학하면서 시작된 편두통이 동반자가 된 인생에서

타이레놀도 변함없이 오래 함께인 중이다


세 째날의 드레스덴은 바람은 없고 날은 청명한데 어쩐지

쨍- 하고 깨질 것 같은 얼음의 차가움이었다 뼛 속까지 으슬으슬 춥다는 기분 그렇다고

멈출 수 없는 게 여행이지 않나 여유롭자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랬다


커피를 파는 빵집에 들어갔다

이른 새벽부터 구워냈을 빵 내음에 취할 것 같은 카페 안

그리고 우리가 픽 한 달달한 빵 하나 딱딱한 빵 하나 카푸치노 두 잔

작은 행복을 부르는 주문이었다


몸이 따뜻해지자 마음도 진정되었고 그제야 둘러본 가게는

오래 빵을 만들어 온 전통 있는 곳이었다 준비하지 않은 만남이 더 가치 있는 발견을 가져오는

우연의 맛이다 무계획의 여행에서, 지도를 벗어나는 발자국에서,


우연의 마법은 계속됐다

구시가지의 가지 않은 (이틀 내내 크리스마스 마켓만 갔었다) 길들을 목표하고 엘베강을 건너는데

다리 아래로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고 뭔가 그들만의 또 다른 축제가 벌어지는 분위기를 목격했다


플리마켓이라는 말보다 벼룩시장이라는 우리말이 더 어울리는

빈티지 마켓이 다리 아래 강을 끼고 넓게 펼쳐진 잔디와 산책길에 크게 열리고 있었다

이런 우연의 선물이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질까 겨우 티클의 시간을 머무는 방문자에게는 더욱,


만약 내가 여기 살고 있었다면 그 낡고 오래된 물건 하나하나가

버릴 것 없이 놓치고 싶지 않게 신기하고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80여 번의 잠 중에 겨우 2번의 잠이 지난 지금, 좁디좁은 여행 가방에 욱여넣을 공간이 없는 것

그래서 그저 사진기 속에 꾹꾹 눌러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사실이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욕심과 탄식을 구겨 넣고 각자 기념이 될만한 딱 하나씩의 물건만을 흥정하고 품었다


다리 아래로 발걸음을 이끌어 준 빈티지 마켓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여행 지도에 없던 길들을 걸었다

강을 따라 평온하고 긴 산책을 하고 그 산책길을 따르다 만난 교회에서 오래 조용히 앉아

영혼을 건드리는 파이프오르간의 깊은 울림에 숙연해지고

인간이 완성한 예술적인 건축물이 인간의 화로 불타버린 흔적에 마음이 시큰해지고


경건의 순간을 깨는 것은 창피하게도 생에 대한 사람의 본능 중의 본능

허기의 신호는 때가 되면 빠짐없이 꼬박꼬박 참을 수 없이 시끄러운 경보를 보내온다

가던 방향을 무시하고 마켓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당분간은

웬만해선 질리지 않을 소시지빵과 사진만으로는 수긍이 가지 않을 인생 포테이토를 흡입했다


오전 9시 즈음에 시작된 외출이 오후 4시가 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추위를 피해 실내로 들어갔던 몇 번의 순간이 있었지만 누적된 한기에 몸이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기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가야 할 또 다른 낯선 길들을 발견했지만 내일로 미뤄둔다


돌아오는 길의 노을이 오늘도 또 예뻐서 기분도 걸음도 가벼워 몸이 붕 떴다는 건 당연히 거짓말

독일산 탄산수와 초콜릿과 포테이토칩을 사서 돌아온

사람의 적응력은 굉장해서 벌써 내 집 내 방 같아진 호텔방에서

발갛게 열이 오른 얼굴과 몸을 녹이는 순간은 단순하고 소중한 행복 그 자체였다






서리 내린 이른 + 막 구워낸 빵을 먹는 이른, 카페에서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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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하지 않은 뜻밖의 우연이라는 마법, 엘베강 빈티지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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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틀간 미뤄 둔 햇빛 조명이 비춘 낮의 엘베강과 구시가지를 걸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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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딱히 먹을 게 없다고들 하지만 소시지가 물리지 않으면 걱정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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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풍경은 닮은 듯 다른 듯 어쨌거나 질릴 일이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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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하루가 가지만 우리에겐 빈티지 마켓에서 데려 온 낡은 책과 틴케이스가 남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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