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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Feb 11. 2021

퀸스갬빗:중독의 본질은 무엇인가

원작소설과 같으면서도 다른 이 매력적인 드라마가 이야기하는 것

소련과 미국이라는 두 중심축 사이의 냉전이 한참이던 1960년대였다. 보육원에서는 아이들을 얌전하게 만들기 위해 신경안정제를 줬고, 소녀는 그 파란 알약에 중독되었다. 소녀가 입양된 집에서 양어머니는 결혼생활의 권태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술과 약으로 버티고 있었고, 소녀는 자신의 날카로운 신경을 진정시키기 위해 술을 마시고 파란 알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보육원에서도, 입양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보잘 것 없는 존재였던 소녀는 체스에만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소녀는 체스판 위에선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점점 체스에서 이기는 것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된다.


드라마 '퀸스 갬빗'은 체스 천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재능 때문에 알콜과 약물, 승부가 주는 스릴에 중독되었던 한 소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큇스 갬빗'이란 넷플릭스 드라마를 꽤나 뒤늦게 보았다. 드라마가 나와서 인기를 모았던 작년 가을 쯤에는, 1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밀리고 밀린 행사들을 한꺼번에 치르느라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그렇게해서 남들 다 보고 나서 뒤늦게 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드라마의 제목인 '퀸스 갬빗'은 체스 용어로 퀸 열에 있는 폰을 희생하는 오프닝 전략을 말한다고 한다. (사실 나도 체스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그런 용어가 있다는 것은 나중에 찾아보고 알았다.) 그리고 여자 체스 천재인 베스 하먼을 체스판 위의 '퀸'으로 상징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베스로 상징되는 퀸의 승부수인 것이다.


드라마 마지막 편에, 보르고프와의 최종 승부에서 베스는 상대방 편의 체스판 끝까지 전진한 폰을 퀸으로 프로모션한다. 장기의 졸(卒)에 해당하는 폰을 체스판 위를 종횡무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기물인 퀸으로 바꾸는 이 장면은 마치 베스의 인생을 보는 듯 하다. 아무런 힘도 없는 어린 소녀가 성장하여 퀸이 되는 과정.


그리고 소녀가 퀸이 되기까지, 그녀는 중독을 이겨내야만 했다.




드라마를 10번 이상 보고 나서 여세를 몰아 80년대 출간되었던 월터 테비스의 원작 소설을 읽게 되었다.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소설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베스의 이야기는 대사나 나레이션도 문장 그대로 따온 경우가 많았을 정도로 책과 전체적으로는 거의 같았다. 하지만 디테일에 있어서는 조금씩 차이가 났다.


소설 속의 그리어 홈(보육원)에서는 경고를 몇 개 이상 받으면 애들한테 채찍질을 하곤 했고, 베스는 화이트 트레쉬 부모 아래에서 자란데다 늘 분노에 차 있었으며 베니 와츠에게 체스 트레이닝을 해달라고 부탁하거나 파리에서 보르고프와의 승부에선 때문이 아니라 최선을 다했지만 공포 때문에 지고 말았다. 러시아에서 열린 베스의 체스 경기를 위해  더들리 벨틱이나 타운스가 베스를 돕기 위해서 함께 게임 연구를 한다거나 찾아오는 일은 아마도 드라마의 극적 요소를 더하기 위해서 추가된 설정인 것 같았으며, 드라마에서는 대인배의 상징이었던 보르고프는 사실 베스에게 지고 뒤에 삐져서 축하파티에 오지도 안았다.



나는 드라마의 베스도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원작 소설의 베스가 더 마음에 들었다.


드라마에서의 베스는 사람 때문에 경기를 망치기도 하고, 타인의 도움 덕에 우울에서 벗어나거나 친구들의 지지를 통해서 승부에 임할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소설 속의 베스는 혼자서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했고 그것이 힘들다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기 위해 문을 두드릴 용기가 있는 인물이었다.


나는 소설 속의 베스가 중독에 빠져 있는 자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보육원 친구인 졸린을 찾아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반했다. 그녀는 졸린이야말로 자신에게 도움을 줄 사람임을 알고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며 졸린의 연락처를 알아내고 체육에 능한 졸린에게서 매일 같이 지도를 받아 체력 훈련을 받음으로써 스스로 중독을 이겨낸다. 드라마를 보면서 유일하게 베스의 캐릭터와 맞지 않는 부분이 졸린에게서 러시아로 갈 여비를 빌리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소설의 베스는 빈털터리가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금을 털어서 여비를 마련한다.




소설을 읽고 나서 드라마를 다시 보자,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는 베스의 이야기가 달리 보였다.


드라마는 중독을 이겨내고 퀸이 되는 폰(베스)의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승부에 대한 중독과 알콜 중독, 약물 중독을 극복하고 경기에 임해서 결국 승리하게 되는 소녀의 이야기.


술, 약물, 도박, 담배까지... 세상에는 많은 중독이 있고, 그 중독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또 많은 이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따뜻한 지지를 얻는 것이 중독자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즉, 중독이란 일종의 고립에서 기인한 우울에서 유발된 자기파괴 행동이며, 타인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그것을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퀸스 갬빗이라는 드라마가 정말로 감동적인 이유는 외로운 고아 소녀였던 베스가 타인의 지지를 통해서 용기를 얻고 중독에서 빠져나오게 된다는 점이다. 어린시절의 친구인 졸린을 비롯하여, 베스의 친구로 남게 되는 타운스, 경쟁자이면서 친구인 해리 벨틱과 베니 와츠, 그리고 베스가 가장 큰 공포를 품고 있던 적이었지만 베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보르고프까지.


베스의 마지막 승리는 외롭고 힘들었던 과거와 거기에서 기인한 중독이라는 상황을 이겨냈다는 의미가 있을 뿐만이 아니라, 늘 혼자였다고 생각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였다는 느끼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베스가 흰 색 퀸처럼 옷을 차려입고 거리의 체스판에서 낯선 사람들과 즐겁게 게임에 임하는 모습이 나온다. 책에서는 '실례지만 저랑 함께 체스 한 판 두시겠어요?'라는 별로 임팩트 없지만 정중한 대사였지만, 드라마에서 그녀의 마지막 대사는 장갑을 벗으며 살짝 도발적인 표정으로 했던 '두시죠'였다.


한국어로는 '두시죠' 였지만 그녀가 러시아어로 했던 발언은 let's play 혹은 함께 놀자 게임을 하자는 뜻이다.


마지막 체스 경기를 통해서, 주인공이 체스에서나 인생의 승부에서나 적을 쳐부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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