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애리 Jul 03. 2022

전시라는 스토리 만들기 (2)

재미없어서 책에는 담지 않았습니다만

그런데 전시 기획을 하면서, 나는 전시를 통해서도 ‘이야기 만들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신세계였다. 글쓰기와 차이가 있다면 전시는 3D라는 것이다.



(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2. 작가 초대전


소장품 전시가 정형화된 캐릭터들을 고르고 조합해서 하나의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라면, 한 작가의 초대전은 캐릭터와 이미 결말까지 갖춰져 있는 이야기이다.


작가가 정해져 있고, 작품도 정해져 있고, 그러다보니 스타일이나 주제도 내가 개입할 여지가 많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이 곳에서는 의미를 찾아내거나 캐릭터에 대해서 탐구하는 쪽으로 스토리텔링을 한다.


사실 사람으로 만나는 작가는 작품으로 만나는 작가와는 사뭇 다른 경우가 많다.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는 나이브아트(naive art) 스타일의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가, 태어나서 대도시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것처럼 세련된 차림을 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으로 만날 때는 회계사처럼 깐깐하고 은퇴한 공무원처럼 상상력 없는 것 같은 작가가 실제로는 생기 넘치는 강렬한 작품을 창작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와 이야기하거나 인생사를 공부하다보면 표면적으로 보이는 작가의 모습이 어느 순간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작가도 사람인지라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내는 경우도 있다.


인류학 현지조사를 할 때 사람들은 인류학자가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가짜 이야기를 꾸며내는 경우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조심조심 작가가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만들어내는 자신의 이미지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작가의 이미지를 베일처럼 걷어내면서, 그 속에 담긴 진짜 이야기를 찾아낸다. 그러면 동시에 내가 찾고 있던 작품의 의미도 함께 따라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가 되면 나는 작가에 대해 내가 탐구했던 과정을 관람객들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도록 전시 스토리텔링을 한다.



한 작가에 대해서 전시를 할 때면, 재미는 없지만 작가의 창작 순서대로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 물롬 나는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부 시기의 컬렉션이 많은 경우라면 그것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나머지 작품들은 관람객들의 참고를 위해서 각 시기별로 따로 작게 구성하기도 한다. 나는 도입부에서 작가에 대한 설명과 자료를 제시하고 바로 상반된 두 가지 작품을 비교하듯 각각 반대 벽에 배치해서 관람객들이 걸어가면서 볼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이따금씩 작가의 말을 인용하거나 인터뷰 내용을 배치하기도 한다. 전시에 들어가는 작가에 대한 설명과 자료, 작가의 인터뷰 자료 정리는 나의 몫이라 나는 신이 나서 즐겁게 글을 쓴다.


어떤 작가는 전시의 구성을 함께 만들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회화 쪽보다는 설치 미술 쪽 작가들이 주로 이러한데, 이런 작가들은 공간의 속성을 나보다 더 잘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유려한 동선으로 작품을 배치하고 때로는 작품의 내용을 살짝 변경해서 전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나는 자동차 조수석에 앉은 사람처럼 가만히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때때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전시 공간에 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나 전시 구성에 대해서 내 의견을 내놓기만 하면 된다. 



3. 주제로 구성된 전시


가장 힘들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시 구성은 하나의 주제로 여러 작가들을 섭외하여 만드는 전시이다. 이런 현대미술 전시는 복잡한 인물관계와 서사구조를 가진 장편 소설같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단순히 ‘안나 카레리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안나와 브론스키 자작의 사랑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키티와 레빈의 이야기이도 하며, 여러 다양한 인물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커다란 주제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


톨스토이는 이야기를 쓸 때 여러 인물들이 제각각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며 어떻게 이야기를 엮어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톨스토이도 아니고 내가 만든 전시가 『안나 카레니나』 같은 명작은 아니지만,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구성해서 하나의 전시를 만드는 것이 이렇게 장편 소설쓰기 같이 복잡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이렇게 전시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만들고 작품을 구성하는 것은 운이 좋으면 하루 안에 끝날 때도 있지만 대체로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한 달 넘게 걸릴 때도 있는데 이 때는 회사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집에 와서 잠을 자면서도 가끔씩 생각할 때도 있다. 어떻게 유려한 스토리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전시 공간을 걸어 들어오면서 내가 의도한 경험을 하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 머리 속으로 전시 공간 속에 작품을 여러 번 배치해보고 그림까지 그려서는 작품이 어떻게 보일 것인가 상상해본다.


작품은 한 공간에 있을 경우에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때도 있지만 가끔씩은 서로 맞지 않아서 전체의 통일성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


개성강한 작가들의 작품들의 의외로 서로 잘 어울리는 경우도 있고,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던 두 작품이 막상 옆에 두면 미묘하게 서로를 끌어내리는 경우도 있다. 가끔씩은 작가가 갑자기 새로운 작품을 출품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완벽하게 아귀가 딱딱 맞도록 다 구상해놓고서는 막상 전시 설치하는 날 현장에서는 원래의 구상이 완전히 바꿀 때도 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전시 설치가 끝날 때까지 전시 설치 준비는 끝난 게 아닌 것이다. 이렇게 전시 설치까지 끝내놓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만든 스토리가 물 흐르듯 잘 흘러가는지 아니면 어딘가 어색하고 재미가 없는지 알 수 있다.



시나리오나 소설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나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은 그냥 삭제하면 된다. 하지만 전시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작가나 소장자와 상의도 해야 하고, 만약에 그 작품이나 유물이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면 절대로 뺄 수가 없다.


소장품 전시라고 해도 마찬가지인데, 윗 선에 이 ‘작품을 하겠습니다.’라고 보고하고 허락을 받았던 작품을 내 눈에 거슬린다고 뺄 수는 없다. 그러면 이제 급하게 전시의 개연성을 위해서 부가자료를 급히 준비한다. 전시의 동선을 조금 바꾸고 설명을 덧붙이고, 추가 설명을 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자료를 섭외한다.


그렇게 전시가 완성된다.


늘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끼리는 안다. 전시의 구성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는지. 주제의 개연성에 맞추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러니까, 결론은 벽에 그림 거는 거잖아?


내가 전시 기획이 왜 단순히 벽에 그림 걸기가 아닌지 설명을 한참 하고 난 뒤,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무하게도 나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다행히


벽에 그림 걸고 설명을 붙이는 거구나?


라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그 정도만 이해해줘도 설명한 보람이 있다. 그러면 나는 살짝 지친 표정으로 그냥 맞다고 대답한다.



내가 이렇게 열을 올리며 전시 기획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줬으면 하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전시 기획도 일종의 창작이며, 나는 사람들이 전시를 볼 때 작품이나 유물만이 아닌 전시를 구성하고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창작자는 아니지만 창작자와 협업을 하며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며, 학자나 선생님은 아니지만 유물의 속성을 공간을 통해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냥 놓여있으면 ‘물건’되는 전시품이, 전시 공간 속에서 이야기의 흐름 속에 배치되면 ‘작품’이 되며 ‘유물’이 된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관람객의 기억에 남는다.


나는 관람객들도 전시를 볼 때 어느 정도는 느끼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그냥 맥락 없이 전시한 전시품을 볼 때와 달리, 구성이 잘 된 전시에는 쉽게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다. 전시 공간을 열심히 걷다가 피로할 때 즈음이 되면 의자가 나타나며, 가볍게 볼 수 있는 멀티미디어 감상물이 나타난다. 설명이 필요할 즈음이 되면 벽에 쓰여진 부가 설명이 우리를 맞아준다. 맥락 없는 작품이나 유물이 아니라 작가나 역사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


전시 공간에서 몰래 관람객들을 관찰하면서 나는 내가 만든 전시라는 스토리의 평가를 받는다.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면서 이것저것 읽어보고 작품을 열심히 감상하다가 가면 나는 A+를 받은 것처럼 기뻐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전시 공간으로 들어왔다가 그냥 빠른 걸음으로 다시 나가 버리면 나는 내가 만든 구성이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리고 다음 전시에는 또 어떻게 구성을 하고 배치를 할지를 메모해놓는다.




나는 큐레이터가 되기 훨씬 전에 스토리텔러였다.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내 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큐레이터가 된 뒤에는 이야기를 거의 창작하지 않았다.


나는 전시 공간 안에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었다.


다만 글로써 이야기를 만드는 대신, 좋게 말하자면 인류의 유산을 배치하고 돋보이게 하는 과정을 공간 속에 재현하면서 이야기를 만든다고나 할까. 사람들이 듣지도 읽지도 않고 대부분의 경우는 그 존재를 느끼지도 못하지만, 나는 오늘도 공간 속에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남애리, 《소소하게, 큐레이터》, 문학수첩


매거진의 이전글 전시라는 스토리 만들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