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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Feb 08. 2023

이번 전시는 망한 것 같아

전시 시작 전, 10년차 큐레이터의 망상과 불안의 싸이클  

세상 모든 일이란 것이 하기 전에는 지레 두려워이기 마련이지만, 전시 기획자에게 전시 전의 불안감은 정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몇 달 전 전시를 준비하기 전에 작가 섭외를 하고 전시 구성안을 만들 때 가졌던 하늘을 찌르는 패기는 서서히 쪼그라들고, 전시일이 다가올 수록 내가 했던 모든 일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전시 운송 업체에게 날짜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작품 보험 가입할 때 리스트를 잘 못 만들어주지는 않았는가. 벽면 텍스트를 붙이는 업체에게 제대로 시간을 통보했는가. 하다못해 내가 빠뜨린 서류 같은 것은 없는가.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가기 시작하는 시기가 되면 이제 밤잠은 거라고 있다. 


이제, 전시 일주일 정도가 되면 사람들이 과연 이 전시를 보러 올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다. 아무도 안오는 텅빈 전시실을 상상하며 소름이 끼쳐 혼자 몸서리를 치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해서 반드시 그 전시가 좋은 전시는 아니고,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내가 만든 전시에 관람객이 적게 온다고 해서 내 월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투입한 예산이 있고 작가를 초청해놓은 체면이 있지 않은가. 


전시 설치 전날에는 이런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이쯤 되면 온갖 불행한 상상이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가기 시작한다. 


작품 운송 업체가 오다가 교통 사고가 나서 작품이 전부 손상되어 버리는 소름끼치는 상황. 변수가 생겨 정해진 일정 내에 전시 설치를 다 못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가능성. 내가 만들어낸 전시 구성안에 허점이 있어서 현장에서 구성을 아예 뒤집어 엎어야 할 지도 모른다는 밑도 끝도 없는 불안.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미뤄진 전시 일정에 맞춰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신청한 유치원, 학교에 전화를 돌려서 사과를 하고 취소를 하는 상상까지. 


젠장, 망한 것 같아



모든 것이 잘못 될 것만 같은 기분에 젖어, 그렇게 전시 설치 날이 밝는다. 


작품 운송 업체가 의외로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하는 걸 보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작품이 자리를 잡고 설치되기 시작하면서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던 나는 조금씩 안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전시 설치일 저녁, 모든 설치가 끝났다. 운송업체와 디스플레이업체 사람들도 전부 집으로 돌아간 뒤 나는 전시 설치가 끝난 전시실 사진을 찍으면서 미소를 짓는다. 이사를 끝내고 내일 집들이를 앞둔 집주인처럼(물론 내가 여기 주인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전시날, 끊임없이 하락곡선을 긋던 나의 자신감도 조금씩 올라온다. 먹구름같던 불안감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전시 첫날, 직원 아닌 척 하면서 전시 반응을 살피고 있다가 관람객의 반응이 좋으면 상상으로 어깨춤도 들썩들썩 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전시, 망할 것 같아"라고 하면서 괴로워했던 주제에, 이제는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 망상까지 든다. 나는 아무도 안보는 데서 제 손으로 툭툭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말한다. 


이번 전시, 잘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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