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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박재관 Feb 24. 2024

나의 노래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것들 1부

어릴 때는 꽤 노래를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비염과 천식으로 목소리가 안 나온다.

아니 잘 못한다. 목소리 컨트롤이 내 맘대로 안된다.


제일 오래된 기억은 유치원 때 공연에서

솔로몬 왕을 맡아 노래를 했다.

어르신들 앞에서는 <비목>이나 <선구자> 같은

가곡을 불렀던 기억이 난다.


꼬맹이가 동요가 아니라 가곡을 해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뽀빠이 이상용과 윤유선이 사회자였던 <모이자 노래하자>라는 프로그램에 나갔던 기억이 있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성악과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었다.


중학교 때는 조회시간 운동장에서 전교생 앞에서

노래 부르다가 가사를 까먹어서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했고,

교무실에서 선생님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용돈으로 500원을 받은 기억도 있다.


<아 옛날이여> 같은 이선희 노래와

<소녀>, <휘파람> 같은 이문세 노래를

자주 불렀던 것 같다.


변성기 전이라 여자음역까지 목소리가 나왔다.

막내고모랑 같이 살았었는데,

고모 친구들이 전화 오면 가끔 헷갈려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네 집에 갔다가 빌려온

클래식 기타를 뚱땅거리며,

<이정선 기타 교실> 같은 교본을 보고

독학으로 기타를 쳤다.


엄마가 공부하라고 못 치게 해서

이불 뒤집어쓰고 몰래 치기도 했다.


친구 세 명이서 기타 2대, 키보드 하나로

지하 학생회실에 모여

마이마이 카세트에 핀 마이크를 연결하고

테이프에 노래를 녹음하기도 했다.


그 테이프들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고,

부끄럽지만 지금도 간혹 들어본다.


그때 친구들과 한번 노래를 시작하면

<가요 대백과사전> 한 권을 다 끝낼 때까지

한 8시간 정도 불렀던 적도 있었다.


기타를 뚱땅거리다 보니

노래도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시에 멜로디를 붙여 보기도 하고,

유치한 가사에 조잡한 곡들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냥 그러고 노는 게 재밌었다.


사실 대학교는 <강변가요제>나

<대학가요제>를 나가고 싶어서 갔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하여

교내 가요제에 나갔지만 입상도 못했다.


대신에 노래패에 들어가 활동하며

동아리 주제곡을 만들기도 했다.

정기공연 때 쓸 곡을 공동 창작 하기도 하고,

복학생의 외로움을 표현한 자작곡은

동아리에서 나름 히트 치기도 했다.


노래 진짜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학년이 올라가니

주로 기타 반주나 작곡 등 뒤에서 활동했다.

밤새 공연 기획하고, 준비하고,

노래하는 게 그냥 좋았다.

기타 치며 노래하고 어느 순간 합이 맞으면 가슴이 뛰었다.


노래에는 말과 다른 힘이 있는 것 같다.

가슴을 뛰게 하고, 감정을 증폭시킨다.

종교나 정치 집회에서 노래가 중요한 이유 아닐까.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오른쪽 마비가 오시고

말을 못 하셨는데, 산토끼 같은 노래는 하셨다.

노래와 말을 관장하는 뇌영역이 다른 것이다.


그 당시 노래는 내 인생이었고 전부였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위로해 주는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졸업하고 직장 들어가고 결혼하고 나니

인생의 전부 같았던 의미가 점점 사라졌다.

직장인 밴드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가끔 집에서 기타 치며 노래라도 부르면

와이프가 시끄럽다고 한다.


하도 안 하다 보니 기타를 조금만 쳐도 손가락이 아프고, 목소리도 안 나온다.


지금은 하는 것보다 듣는 걸로 어쩔 수 없이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 미련은 있다.

또 모른다.

내가 언젠가 밴드나 합창단 같은 걸 하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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