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2부
이상하게 난 축구보다 농구가 좋았다.
발보다는 손쓰는 운동을 좋아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교내 체육대회를 하면
농구는 키 큰 애들이 주로 나가서
키 작은 나는 많이 아쉬웠나 보다.
중3에서 고1 올라가는 겨울 방학 때
매일 학교에 가서 농구연습을 했다.
고등학교 때 도시락은 2교시 끝나고 먹고
점심시간에는 농구를 했다.
방과 후에도 하고, 방학 때 학교 나와서도 하고,
지금까지 만나는 고딩 친구들은 같은 반이 아니라
농구하다 만난 친구들이다.
대학교 2년을 마치고, 군대를 제대한 후에
캐나다 오타와에서 어학연수를 6개월 했었는데
그때 진짜 농구를 많이 했다.
아마 낯선 환경에서의 외로움을 농구로 달랬던 것 같다.
내가 살던 아파트 앞 작은 공원에
작은 농구대가 하나 있었는데 거의 매일 갔다.
주로 초등학교, 중학교 애들이 자주 오는 곳이었는데
나랑 키가 맞았다.
그리고 아직 어린애들이라 나의 실력을 뽐낼 수 있었다.
그러다가 한인 교회에서 친해진 형, 동생들과
매일 체육관에 농구하러 다녔다.
영어공부하러 간 게 아니라 농구하러 간 것 같았다.
외국애들이랑 돌아가며 하는 시합은 너무 재밌었다.
그다음 농구를 많이 했던 때는
대학 졸업하고 취업 준비할 때였다.
졸업할 때가 딱 IMF 터지고 난 다음이라
취업 못한 사람, 잘린 사람들이 넘쳐났다.
동네 고딩친구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신대방 굴다리 농구장으로 매일 출근했다.
가면 회사에 못 가고 앉아 있는 아저씨들이 많았다.
이 때도 매일 했다.
농구를 하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순수하게 내 움직임과 호흡에만 집중이 되는 것 같다.
힘들수록 더 그렇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발 하나도 움직이기 힘들 때
시간이 슬로비디오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진정한 몰입을 난 농구에서 느꼈다.
내 인생만화는 슬램덩크이고, 이 만화를 통해
땀과 노력, 그리고 열정이라는 인생 가치를 배웠다.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슬램덩크 만화를 사주었다.
아들도 만화 때문에 농구에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주말이면 신대방 굴다리 밑으로 데리고 나가
같이 농구를 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자 실력이 많이 늘었다.
하지만 내 몸은 나이를 피하지 못했다.
좀 무리해서 하고 나면 발톱이 빠지고, 물집이 생겼다.
발목보호대, 무릎보호대, 손목보호대,
팔꿈치보호대를 샀고, 농구화를 다시 샀다.
장비빨로 커버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장비 착용하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지금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매일 NBA경기를 보고,
학교 농구부도 지가 만들어서 대회 나가고,
맨날 조짜서 체육관 빌려서 농구하러 다닌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자
이제는 친구들이랑 하려고 하지
아빠랑은 안 하려고 한다.
그것 때문에 한참 힘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들은 그렇게 부모 품 안을 떠나가는 거라고 위로했다.
내 농구 인생도 그렇게 끝났다.
이제 내 나이에 맞는 운동을 찾아야 한다.
헬스랑 등산은 틈나면 하고 있고,
골프는 나랑 안 맞는 것 같고,
그나마 탁구를 좀 쳤는데 만만치 않다.
이제 와이프도 같이 잘 안놀아주고
어쨌든 운동은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하는 맛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