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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Aug 24. 2024

친구 같은 아빠

가족 이야기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었던 이유는

내 아버지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릴 때 사우디로 일하러 가셨고,

좀 커서는 지방에서 사업을 하셨다.

주말에 가끔 얼굴을 볼 뿐이었다.

술 담배를 많이 하셨고 성격이 불 같으셨다.


대화는 거의 없었고,

같이 여행 간 기억도 별로 없다.

난 그러지 말아야지 속으로 다짐했다.


아들이 어릴 때 주로 아빠는 “천재박사"라고 세뇌시켰다.

뭐든지 물어봐도 척척 답해 주고, 해결해 주는 

맥가이버나 만능 박사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과학책들을 많이 봤다.

어린 아들에게 ‘이기적 유전자’니 ‘양자역학’이니 하며 허세를 부렸다.


좀 커서는 “자전거”를 타러 다녔다.

네발 자전거에서 두 발 자전거로 점프 한지 얼마 안 되어서

주말이면 신대방역에서 신도림까지 개천길을 따라 달렸다.

신도림 테크노마트 1층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먹고, 

5층 프라모델 전문점 구경하는 게 코스였다.


좀 더 커서는 안양천 따라 한강 선유도 공원까지 가서 

편의점 라면이랑 김밥 먹으러 다녔다.


그다음으로 머리도 쓰면서 좀 차분 해지라는 의미로 “바둑”을 가르쳤다.

나도 어릴 때 동네 형, 친척 형들과 바둑을 두며 수싸움의 재미를 배웠다.

바둑에 친숙해지는 방법으로 만화 ‘고스트 바둑왕’을 사서 보여줬다.

그 만화는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밌다.

그러더니 초등학교 바둑반을 들고 나날이 실력이 향상되는 걸 느꼈다.


부랴부랴 바둑책을 사고, 인터넷 바둑을 두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 있으니 몇 점 깔고 두던 실력이 

맞바둑을 두고, 한 두 판씩 지기 시작했다.

지니까 자존심이 상해 더 이상 두기 싫었다.

바둑을 접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슬슬 내가 좋아하는 “농구”를 시켜볼 때가 된 거 같았다.

이번에도 시작은 ‘슬램덩크' 만화책을 사줬다.

슬램덩크는 내 인생만화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몇 번을 탐독하더니 신대방역 굴다리 밑으로 농구하러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아들 친구들도 하나둘씩.

초등학생 친구들 사이에서 난 농구 잘하는 친구아빠가 된 느낌이었다.

끝나고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면 너무들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자 슬슬 아빠보다 친구들이랑 하는 게 좋아지는 걸 느꼈다.

점점 나를 피한다.

친구들과 안면 트고 같이 농구하는 것도 자꾸 싫어하는 눈치다.

가끔 일대일 대결을 해도 밀리는 느낌이다.


고등학생이 되자 대놓고 왼손으로 해도 아빠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한다.

질까 봐 해보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 농구를 접었다.


중학교 때 아들놈이 학교에서 자꾸 사고를 치자

와이프가 힘 좀 빼놓으라고 해서

제주도에 2박 3일로 자전거 일주 여행을 갔다.


3일 동안 240킬로미터를 돌아야 하니 

하루에 80킬로미터 정도 가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내 힘만 빠졌다.

항상 먼저 가서 나를 기다리는 아들놈.

재미없어서 아빠랑은 자전거 안 탄다고 한다.

얘기도 못했다. 

힘들어서 숙소에 도착하면 곯아떨어졌다.

그 이후로 자전거를 접었다.

이제 아들놈이랑은 자전거를 안 타기로 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팔씨름이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나를 이기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아직은 내가 이긴다.

이것마저 지면...


고등학생이 되자 아들놈이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렇잖아도 안 따라다니는 녀석이 더 같이 안 다니려고 한다.

자기는 절이며, 산이며 풍경 구경하는 휴가를 왜 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자기는 사진 찍는 게 가장 싫고,

산에 올라가는 게 가장 싫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 친구랑은 맨날 사진 찍고, 심지어 산에도 간다.


공부는 왜 하는지 모르겠고,

대학은 왜 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책은 왜 읽는지 모르겠고,

자기는 돈 버는 것보다 예술을 하고 싶다고 한다.


아빠 말은 죽어라 안 듣고, 안 믿고

특히 말대꾸 할 때는 없던 성격도 욱하고 올라온다.

다른 사람 말은 또 찰떡 같이 듣는다.

심지어 왜 그런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아들이 아니라 웬수 같다.

아들과 친구가 되기는 어렵다.


이제 고3인데 성적은 더 떨어졌다.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와이프의 한숨은 늘어간다.


내 자식이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알면서도 자꾸 내 의도대로 컨트롤하려고 한다.

그러니 더 어렵다.


친구는 동등한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친구라 할 수 없다.

그걸 새삼 또 느낀다.


이제 성인이 되려 하는 아들을 

진짜 친구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다.

될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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