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었던 이유는
내 아버지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릴 때 사우디로 일하러 가셨고,
좀 커서는 지방에서 사업을 하셨다.
주말에 가끔 얼굴을 볼 뿐이었다.
술 담배를 많이 하셨고 성격이 불 같으셨다.
대화는 거의 없었고,
같이 여행 간 기억도 별로 없다.
난 그러지 말아야지 속으로 다짐했다.
아들이 어릴 때 주로 아빠는 “천재박사"라고 세뇌시켰다.
뭐든지 물어봐도 척척 답해 주고, 해결해 주는
맥가이버나 만능 박사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과학책들을 많이 봤다.
어린 아들에게 ‘이기적 유전자’니 ‘양자역학’이니 하며 허세를 부렸다.
좀 커서는 “자전거”를 타러 다녔다.
네발 자전거에서 두 발 자전거로 점프 한지 얼마 안 되어서
주말이면 신대방역에서 신도림까지 개천길을 따라 달렸다.
신도림 테크노마트 1층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먹고,
5층 프라모델 전문점 구경하는 게 코스였다.
좀 더 커서는 안양천 따라 한강 선유도 공원까지 가서
편의점 라면이랑 김밥 먹으러 다녔다.
그다음으로 머리도 쓰면서 좀 차분 해지라는 의미로 “바둑”을 가르쳤다.
나도 어릴 때 동네 형, 친척 형들과 바둑을 두며 수싸움의 재미를 배웠다.
바둑에 친숙해지는 방법으로 만화 ‘고스트 바둑왕’을 사서 보여줬다.
그 만화는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밌다.
그러더니 초등학교 바둑반을 들고 나날이 실력이 향상되는 걸 느꼈다.
부랴부랴 바둑책을 사고, 인터넷 바둑을 두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 있으니 몇 점 깔고 두던 실력이
맞바둑을 두고, 한 두 판씩 지기 시작했다.
지니까 자존심이 상해 더 이상 두기 싫었다.
바둑을 접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슬슬 내가 좋아하는 “농구”를 시켜볼 때가 된 거 같았다.
이번에도 시작은 ‘슬램덩크' 만화책을 사줬다.
슬램덩크는 내 인생만화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몇 번을 탐독하더니 신대방역 굴다리 밑으로 농구하러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아들 친구들도 하나둘씩.
초등학생 친구들 사이에서 난 농구 잘하는 친구아빠가 된 느낌이었다.
끝나고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면 너무들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자 슬슬 아빠보다 친구들이랑 하는 게 좋아지는 걸 느꼈다.
점점 나를 피한다.
친구들과 안면 트고 같이 농구하는 것도 자꾸 싫어하는 눈치다.
가끔 일대일 대결을 해도 밀리는 느낌이다.
고등학생이 되자 대놓고 왼손으로 해도 아빠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한다.
질까 봐 해보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 농구를 접었다.
중학교 때 아들놈이 학교에서 자꾸 사고를 치자
와이프가 힘 좀 빼놓으라고 해서
제주도에 2박 3일로 자전거 일주 여행을 갔다.
3일 동안 240킬로미터를 돌아야 하니
하루에 80킬로미터 정도 가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내 힘만 빠졌다.
항상 먼저 가서 나를 기다리는 아들놈.
재미없어서 아빠랑은 자전거 안 탄다고 한다.
얘기도 못했다.
힘들어서 숙소에 도착하면 곯아떨어졌다.
그 이후로 자전거를 접었다.
이제 아들놈이랑은 자전거를 안 타기로 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팔씨름이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나를 이기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아직은 내가 이긴다.
이것마저 지면...
고등학생이 되자 아들놈이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렇잖아도 안 따라다니는 녀석이 더 같이 안 다니려고 한다.
자기는 절이며, 산이며 풍경 구경하는 휴가를 왜 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자기는 사진 찍는 게 가장 싫고,
산에 올라가는 게 가장 싫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 친구랑은 맨날 사진 찍고, 심지어 산에도 간다.
공부는 왜 하는지 모르겠고,
대학은 왜 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책은 왜 읽는지 모르겠고,
자기는 돈 버는 것보다 예술을 하고 싶다고 한다.
아빠 말은 죽어라 안 듣고, 안 믿고
특히 말대꾸 할 때는 없던 성격도 욱하고 올라온다.
다른 사람 말은 또 찰떡 같이 듣는다.
심지어 왜 그런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아들이 아니라 웬수 같다.
아들과 친구가 되기는 어렵다.
이제 고3인데 성적은 더 떨어졌다.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와이프의 한숨은 늘어간다.
내 자식이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알면서도 자꾸 내 의도대로 컨트롤하려고 한다.
그러니 더 어렵다.
친구는 동등한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친구라 할 수 없다.
그걸 새삼 또 느낀다.
이제 성인이 되려 하는 아들을
진짜 친구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다.
될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