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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Aug 18. 2024

몸이 정신을 움직인다

리추얼의 종말 - 한병철

리추얼(Ritual)의 뜻을 찾아보니

의식이나 의례라고 되어 있다.

의식이나 의례는 주로 공동체에서

정치나 종교 행사에 필요한 것들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오늘날 공동체의 위기를

리추얼의 종말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리추얼의 종말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데이터주의와 관계가 깊다고 말한다.


난 이 책에서 작가가 주장하는 핵심을

몸이 정신을 움직인다.

정신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라고 봤다.


내가 즐겨보는 축구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구척장신의 주장 이현이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사람들은 그러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한병철은 그 반대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뇌가 먼저고 그다음에 정신이 생겼다.


의식과 의례, 즉 리추얼은

같음과 반복을 통하여

삶을 지속적이고 안정화시킨다고 말한다.

즉 몸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 같다.


사실 주중에 회사서 일하고

주말에 쉬는 일상도

같음과 반복이 대부분이고,

삶을 지속적이고 안정화시키는 일을 한다.


그러면 개인의 일상도 리추얼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종교적, 정치적인 공동체적 의식과 의례만 리추얼일까?


전에 읽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인생의 비밀은 반복에 있다고 했다.

난 처음엔 비슷한 맥락으로 봤다.

하지만 작가는 공동체에 더 방점이 있는 것 같다.


오늘날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체제는

무한한 감정적 소비를 통해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 진실을 감추기 위해

‘진정성 추구'나 ‘도덕적 가치', ‘공감'을 운운한다고 주장한다.


‘가성비’가 아니라 ‘가심비’ 같은 것이

진정성을 추구하는 감정적 소비와 비슷한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가심비라 해도 그때뿐이다.

순간일 뿐이다.

그래서 또 다른 가심비를 찾게 되고,

또 다른 소비가 무한 반복될 뿐이다.

사물은 유한하지만 감정은 무한하다.

자본주의는 소비를 무한히 일어날 수 있게

감정화시켰다.


사물은 무한히 소비할 수 없지만,

감정은 무한히 소비할 수 있다.”

“도덕적 가치들이 특색으로 소비된다.”

“그것들은 나르시시즘적 자존감을 높인다.”

“공감은 효과적인 생산수단으로써 동원된다.”


반면 “리추얼은 공명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공명이 없으면 사람은 자기에게로 되던져지고 독자적으로 고립된다"

“공명은 자아의 반향이 아니다.

공명에는 타자의 차원이 깃들어 있다.

공명은 함께 소리냄을 의미한다.

우울은 공명이 없을 때 발생한다.”


그럼 공동체와 함께 하지 않는

개인의 일상은 리추얼이 될 수 없는 것인가?

작가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국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공명 공동체가 없으면 개별화되고 우울증에 빠진다.

하지만 대안처럼 생각되는 오늘날 디지털 소통도

공명을 주지 못하고 나르시시즘적 자기만족만 강화할 뿐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디지털 소통도 하나의 소통이라 생각했는데 깜짝 놀랬다.


“디지털 소통은 반향실을 기반으로 삼는데, 반향실 안에서 사람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말을 듣는다"

좋아요, 친구, 팔로워는 공명의 토대를 이루지 못한다. 이것들은 자아의 반향을 강화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오늘날 데이터주의로의 전환을 비판한다.

“인간을 자율적 지식 생산자로 격상한

코페르니쿠스적-인간학적 전환이

데이터주의적 전환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제 인간은 데이터를 따라야 한다.

인간은 지식 생산자의 지위에서 물러나고 자신의 주권을 데이터에 넘겨준다.

데이터주의는 계몽의 관념론과 인본주의를 끝장낸다.”


오늘날 데이터주의는 우리로부터

상징의 힘을 빼앗아 갔다.

오늘날 우리는 사물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소비함으로써

나르시시즘적 자기만족에 빠졌다.

디지털 소통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공동체적 공명, 즉 리추얼이 사라졌다.

인간은 이제 데이터에 의해 주변으로 밀려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리추얼을 통해 공명 공동체를 부활시킬 것인가?

그에 대한 방법론은 이 책에 없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데이터주의는

점점 더 인간을 개별화시키고

주변화 시킬 것이다.


내 생각에 이 같은 현상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순간보다는 지속성을,

변화보다는 반복을,

즉 리추얼을 중요시 하는,

작은 공동체들을 계속해서 만들고,

확장하고 연대하는 수밖에 없다.

공동체 밖의 개인은 힘이 없다.


그렇다면 공동체가 몸이고,

개인은 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몸이 정신을 움직인다.

정신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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