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 사람 Oct 01. 2024

쉰 며느라기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 힘든 이유들

마음이 답답, 착잡한데 누구한테 속시원히 터놓을 곳이 없어 대나무숲같이 이곳에라도 글을 써본다.


여러가지 이유로 쉰이 넘고 자녀들이 대충 독립한 것 같은 모양새를 갖춘 지금 뜬금없이 시댁에 들어와서 살게되었다.

시어머니와 잘 맞는 며느리가 얼마나 되겠냐마는, 심지어 친정부모님과도 나이들어 같이 살기 쉽지않건마는 나도 시어머니와 성격과 성향이 정말 맞지않은 며느리 중 하나이기에 남편이 처음에 시댁에 들어오자고 했을때 적잖이 화를 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여러가지 현실적인 상황과 여건-그 중에는 비교적 가까이 있는 친정에 자주 드나들며 편찮으신 친정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돌보느라 힘든 친정어머니를 돕기에 용이하다는 점이 큰 이점으로 작용하여-때문에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당분간 시어머니와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 사시던 것에 익숙해진 시어머니도 우리가 아예 들어와 사는 것이 불편하신 듯 했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단점보단 장점을 더 크게 받아들이시기로 했는지 요즘 자꾸

"이렇게 같이 살면 되지 뭐. 인생 뭐 별 거 있냐? 애비 그동안 일하느라 수고하고 스트레스도 많았을텐데 이젠 그냥 좀 편하게 쉬고 건강도 챙기고 그렇게 살아라" 그러신다.

이제 50대 초중반인 아들 부부 여생을 어떻게 뭐 먹고 살 것인가는 둘째 문제라 해도 손자 손녀 대학 졸업도 못했는데 걔들은 눈 밖이신건가?

아들은 그동안 일 많이 했으니 쉬라고 하시면서 남편 자식 뒷바라지에 이젠 부모님 뒷바라지까지 하느라 쉬는 게 뭔지 모르는 며느리는요?

저는 50 백수 남편과 시어머니까지 삼시 세끼 밥해주는 게 당연한 건가요?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꾸역꾸역 삼키고 그래도 여태까지 못했던 며느리 노릇(?)이 참에 한번 해보자 마음 고쳐먹고 며느리가 해주는 밥 드시는 게 소원인 시어머니와 그 아들 하루 한끼 식사는 어떻게든 만들어 챙겨 드리려고 하고 있는데....


자꾸 뭘 더 원하신다.

은근히 집을 더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다. 누가 좀 싹 정리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시고

언제 하루 날 잡아서 대청소 좀 싹 하자고....

올해는 네가 있어서 김장하러 큰딸 집까지 힘들게 왔다갔다 안해도 되겠다며 벌써부터 김장시킬 궁리하시고...

휴... 예 어머니 그동안 어머니댁에 손님처럼 왔다갔다 해주시는 밥 먹고 담아주신 김치도 수년동안 잘 받아먹었으니 힘들어도 그 정도는 해야지요.

그런데...

자꾸 어머니의 가족, 남편의 외가나 친가 가족들에게까지 가족노릇을 하기를 바라신다.

얼마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남동생, 남편의 외삼촌댁에 홀로 남겨진 외숙모님이 남편을 보고 싶어하신다고 꼭 좀 들르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고  한번 인사도 드리고 찾아뵈라고 몇번 말씀하시길래 그정도 도리는 하는 게 좋겠다 싶어 큰 맘 먹고 어머니가 당신 편의대로 뽑으신 날에 다른 일정을 비우고 외숙모님댁으로 갔다.

그런데 아뿔싸!!

두어차례 뵌 적 있던 외숙모님이 매우 사람을 좋아하는 슈퍼 E랄까 아무튼 그런 성격이었던 것을 까먹고 있었다.

시어머니와 나와 남편 우리 셋만 잠깐 들러 점심식사나 한끼 하고 오자고 갔는데 이 외숙모님이 이미 다른 이모님과 이모부님까지 다 모이시도록 연락들을 해두신 상태였다.

자고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오라는 당부를 들은 터였지만 그러고 싶은 맘이 조금도 없던 터라 당연히 아무 준비도 없이 갔건만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1박 하고 가는 쪽으로 흘러가고...

어머니나 남편이나 누구 한 사람이 좀 강력하게 저녁까지 먹고 좀 밤늦게라도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얘기했으면 좋겠구만 아무도 그러지 못하고 결국은 내가

"외숙모님 저희는 잘 준비를 하나도 해오지 않아서 나중에 늦게라도 집에 가야할 거 같아요"라고 직설적으로 말씀드렸지만 누구 하나도 들어주지 않고 그냥 묵살되었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나도 화가 나서 괜히 남편에게 눈치를 주며 몰래몰래 구박을 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후련해지지 않았다.

결국 결혼 후 20여년만에 처음 보는 이모부님을 비롯해 시어머니의 친정식구들(아이러니하게도 그 집 주인인 외숙모님도 그 곳에선 혈연의 가족이 아닌 혼인에 의한 가족이고 원치않게 시어머니의 시누이 마인드까지 자꾸 엿보게 되는 것도 유쾌하진 않았다.)노인네들 틈에서 내가 모르는, 관심도 없는 그들의 어릴적 이야기, 옛날 이야기들을 흘려들으며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본인도, 남편도 의도치 않게 일 만들기 좋아하는 외숙모에게 휘말려 생각지 못하게 1박 2일 하고 와서 피곤해하며 여독을 풀고 있지만 내 맘의 여독과 답답함은 어떻게 풀 것인가?

남편도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일들 일 수 있지만 괜히 그런 남편이 원망스럽고 미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남편에게 선언했다.

이제 쉰 며느라기는 여기까지라고. 담부턴 어머니 가족들에게까지 세트로 딸려가 낯선 집에서 출장 가사도우미가 되고 싶진않다고. (외숙모님은 나에게 설겆이 하지말라고 몇번이나 말리셨지만 안할 도리가 없지않은가?)

그렇지만 내가 다음번에도 선을 넘는(?)어머니의 요구들을 단호하게, 지혜롭게(?) 잘 거절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쉰며느라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마음이 아픈 가족이 있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