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효진 May 01. 2019

휴가 탈탈 털기

2017.11.17 ~ 2017.11.26 ①

어떻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짧디 짧았던 3박4일의 여행을 끝마친 2017년 가을, 나에게는 또 하나의 빅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티켓은 이미 9월에 사 두었다. 이때만 해도 회사를 1년은 넘게 다닐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해의 공력을 전부 쏟아 넣어도 좋을 여행이었다. 회사원이 된 이후 처음으로 휴가를 털어 가는 해외, 그 빅 이벤트란, 1월 소개받았던 친구 시오링의 결혼식이었다.


가기 전부터 우여곡절도 많았고, 이런저런 마음 상할 일도 많았다.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듯, 일본의 결혼식은 꽤 무거운 분위기다. 공장식 결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초대하는 사람들과 신랑신부의 거리감부터 왔다갔다 하는 돈의 규모도 다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식을 하지 않고 입적(入籍) 단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시오링의 결혼식에 초대받았을 때, 의아하면서도 기쁜 마음이 앞섰다. 웬만큼 친하지 않고서는 그런 큰 행사에 초대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봄부터 시오링 결혼식을 핑계로 여행 계획을 짜며, 실례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여러가지 공부를 했다. 다른 친구들에게 묻고 구글 검색을 해 가며 축의금은 친구라면 3만엔 선이 보통, 둘로 나눌 수 있는 짝수는 되도록 피하고, 1만엔 넣을 거면 넣지 마라, 등등 정보를 모으다 보니 멀리서 오는 친구들에게는 보통 신랑 혹은 신부 측에서 거마비나 숙박을 지원한다는 것까지 보게 됐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에서 결혼하는 경우 왕왕 존재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 부르는데 둘 중 하나는 하것지 싶었다. 심지어 시오링으로부터 먼저 호텔이나 비행기삯을 대겠다는 말을 듣고, 예산을 짰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기모노 대여비는 긴자 기준으로 해도 헤어+메이크업 비용 포함에 1만 5천엔~1만 6천엔 선이라고 했다. 여기에 축의금 3만엔 정도... 그 정도로 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쉽게 오지 않는 기회였기에 거의 일년 내도록 계획을 세웠던 기억이다.


그러나 결혼식 날짜가 가까워 올수록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달리 흘러갔다. 먼저 숙박 혹은 비행기삯 지원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이는 나도 시오링 결혼식 이외에는 여행을 하기로 마음 먹었던 부분이었고, 해 주면 고마운 것이지 안 해 준다고 성을 낼 대목은 아니었다. 원래 11월 3일이라고 고지했던 결혼식 날짜가 갑자기 옮겨지며 예약했던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다시 끊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뭐 그쯤이야. 또 축의금 관련 이야기를 대놓고 3만엔 기본이라 하며 봉투 사진까지 보내왔지만 그만큼 안 가져오면 가만 안 두겠다 이런 소리는 아니었을 터. 좋게 생각해서. 문제는 시오링이 나의 기모노 문제를 담당하겠다고 나서며 시작됐다. 시오링이 보낸 기모노샵 사이트에 들어가니 렌탈료가 3만엔~4만엔 선이었다. 이거는 도저히 감당하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기모노를 포기해야겠다고 말하니 축의금 필요 없다는데 그게 어디 그렇게 해결될 문제이던가. 빽스텝 밟을 겨를도 없이 시간이 흘렀고 결국 출국날이 됐다.


웬만하면 휴가를 5일 이상은 안 쓰려고 했는데 시간이 애매해서 반차를 썼다. 휴가 날짜도 선배랑 겹치는 바람에 죽음의 긴장감을 맛봤지만 취소시 손해 금액을 어필하며 겨우 허가를 받았다. 오후 7시 20분 김포 출발. 지금까지의 경험상 공항에서 돈 찾고 유심 찾고 출국 수속 다 해도 시간이 남아 돌았던 기억에, 집 앞 터미널에서 5시경 리무진에 올랐다. 그런데 웬걸... 금요일 저녁의 공항행 도로는 지옥의 정체였다. 6시 30분이 지나고부터 비워둔 방광이 힘들어질 정도로 불안해졌다. 6시 55분쯤에는 공항이 보였지만 이미 대한항공이 나를 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급히 대한항공에 전화를 연결해서 직원분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국제선에 도착했고, 미친듯이 카운터로 달렸다. 출발 18분을 남겨둔 상황이었지만 나를... 나를 태워주었다... 지금도 쓰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고 심장이 쿵쾅대는 경험이다... 그와중에 찾을 것 다 찾은 뻔뻔한 나...



그렇게 도착한 도쿄는 겨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더웠다. 에어비앤비에 짐을 풀고 나니 나가기가 싫었지만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늘 가는 바 타나로 향했다. 불금으로 떠들썩한 바에 도착해 늘 먹는 나마하루마키를 주문하고 나니 겨우 안정감이 찾아왔다.



2차로 네이바로 가니 오셀로 대회 예선전이 열려 있었다. 결승전은 다음날. 나도 초딩때 패미콤으로 컴퓨터 쳐부수던 실력을 동원해 참가했지만 막판에 무참히 깨지며 예선 탈락했다. 사진 시간대를 보니 최소 아침 6시 반까지는 마셨나 본데, 시오링 결혼식은 내일이었다. ㅋㅋㅋㅋㅋ



매거진의 이전글 3박4일은 이제 무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