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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May 05. 2019

그 거리의 여자

2018.4.3 ~ 2018.4.17 ①, ②

2017년도 충분히 보통과 거리가 먼 여행을 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미리 말해두지만서도, 2018년부터가 진짜다.


2월 28일부로 회사를 그만 두고 나서는 여느 때처럼 어떻게 해서라도 취직은 되리라 생각했다. 대신에 올해는 놀 때 꼭 도쿄에 벚꽃을 보러가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사쿠라웨더맵을 매일 체크해가며 4월 3일 출발, 4월 14일 도착 비행기를 사 두었다. 늘 JAL을 타지만, 최근에 '굿 럭'을 보는 바람에 만 원 더 주고 ANA 티켓을 예매했다.


3월에는 메구미와 사토미가 한국에 왔다. 2018년부터는 일본 손님을 정말 많이 받게 됐다. 다만 여기서는 나 혼자기 때문에 놀면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몹시 컸지만, 나는 어느새 그 동네 대표이자 한국 대표가 돼 있었다.


메구미와 사토미가 돌아가고 정말 가고 싶던 회사의 공고가 떴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전통의 영화지. 벌써 세 네 번은 썼다가 서류 단계에서 탈락을 했던 기억인데, 이번에는 무려 800명 가운데 7명 안에 들어서 실무 면접 기회를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도쿄행보다 더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전형 일정이 매우 애매했다. 3월 말 실무면접에, 만약 합격한다면 4월 초 쯤에는 임원면접을 보게 될 듯했다. 그럼에도 나는 4월 도쿄행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매우 후회를 하고 있지만... 어쨌든 실무면접에도 합격, 나는 그 회사 지원자 중 3명 안에 드는 영광을 누렸다. 심지어 내가 일본에 다녀올 때까지 임원면접 날짜를 미뤄 주겠다는 고마운 말까지 들었다. 그 말만 믿고, 신카이 하지메와 만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며 ANA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 1년 동안은 친구 집에 머물 수 있음에도 굳이 에어비앤비를 잡아서 갔었다. 어느 순간부터 남의 집에서 자는 걸 병적으로 금기시했던 집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조금 신세를 져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8일 정도는 위클리맨션을 빌리고, 나머지는 치쨩 집과 지난 여행까지 제발 우리집에서 자라고 말해 주었던 맛스의 집에서 자기로 했다. 사실 치쨩 집에서 잘 생각은 없었지만, 위클리맨션 계약을 대신 해 주었던 시오링이 날짜를 착각하는 바람에 하루 동안 잘 곳이 없어서 부탁하게 됐다. 치쨩에게는 사실 계약 대행도 거절당했다.


처음 1박2일은 치쨩네서. 내 캐리어를 사랑하는 고양이 후우코.


안타깝게도 급격히 따뜻해진 날씨 탓에 출발 일주일 전에 이미 벚꽃 만개 타임이 찾아왔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흥부네 주걱에 붙은 밥풀 정도 벚꽃을 볼 수 있었다.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나를 위해 요요기공원에서 꽃놀이 비슷한 것을 같이 해 주었다.



해가 질 무렵 날도 추워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도 안 돼 다시 나가기는 했지만... 위클리맨션 체크아웃 후 묵기로 한 집 부인 맛스가 오너로 있는 디쉬에 가서 파이들을 먹고 타나로 가려는데 맛스가 현관까지 나와서 반가워 해줬다.



공교롭게도 이리에상이 타나 첫 바텐더를 서는 날이었다. 타나는 화요일이 휴무인데, 그날 이리에상이 바 영업만을 하기로 된 것이었다. 좋아하는 친구의 처음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하지만 이리에상은 술이 안 들어가면 언제나 텐션이 낮다. ㅋㅋㅋ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오후 한 시 반쯤 치쨩이 브런치를 만들어줬다. 원래 요리를 좋아하는 아이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치쨩에게 시집가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뜨듯해지는 식사였다.


고기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스팸까지...


저녁에는 감독이랑 치쨩이랑 셋이 동네 퓨전중국요리집에 갔다. 2019년 5월 현재는 없어져서 아쉽지만 맛있는 집이었다. 마파두부가 색달랐다. 선선한 공기 속에서 오랜만에 세 사람이 식사를 하니 지금 생각하면 참 애틋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밥을 먹고 정석코스대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남아있는 사진은 잔지바루다. 지난 여행에서 만났던 하나쨩이 이날 바텐더를 하기 때문에 갔나보다. 여기서 운명의 사람을 만나고 마는데... 신사에 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갈 때마다 코이미쿠지, 연애 점괘를 뽑곤 한다. 이날 잔지바루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내 코이미쿠지에 적힌 조건과 하나 빼고 다 맞아 떨어졌다. 닭띠, 5살 이상 나이차이, 게자리, 동북 출신까지 맞았는데 혈액형이 다르다고 하니 피를 바꾸겠단다. 이름은 오사다에 별명은 오사삐-라고 했는데, 이미 만취한 우리는 우사? 우사삐? 우사뿅? 하다가 그 사람의 별명을 우사뿅이라고 지어 버렸다. 운명의 남자로서 점괘는 딱이었지만 나는 전자담배, 특히 아이코스/글로 계를 피우는 흡연자를 남자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데킬라를 잔뜩 얻어먹고 5시 쯤 나 먼저 가게를 나왔다. 이번 여행에서 두 번 다시 우사뿅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때까지만 해도 우사뿅과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기억을 더듬어 쓰는 글이기에 문장에 '이'가 참 많다. 어쨌든 이 대목은 앞으로도 지켜봐 주시길...


술 취해서 우사뿅 손에 낙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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