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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들 Mar 24. 2020

어둠이 짙을수록 별은 빛난다.

출산, 어둠을 통과해 빛을 보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은 빛난다>

  별(Arista), 자기 내부의 에너지 복사로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

  2019년 4월의 봄의 정중앙, 인생의 큰 숙제를 마쳤다. 15시간의 산고로 숙제는 끝났고, 한 생명을 내 품에 안음으로 참 잘했다는 도장을 받았다. 원죄로 인해 임신의 고통을 크게 하고, 수고함으로 자식을 낳을 것이다라는 신의 명령대로 출산은 그 죗값의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이전엔 없었던 생명이 처음으로 내게 오는 기쁨과 함께 온몸이 찢겨 나가는 듯한 산통은 나의 영혼에 잊힐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소리 없는 아픔의 절규로 내 앞을 지나간 수 많은 존재들 앞에서 그저 묵묵함으로 일관했던 지난 날의 나를 되돌아보았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인간 존엄의 빛을 느꼈다. 출산은 나에게 어둠이 짙을수록 스스로 밝히 빛나는 별을 볼 줄 아는 존재로 만들어주었다.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별, 정진석-

  출산 후 3-4일, 인생의 봄을 선물 하듯 개나리 빛의 샛노란 초유가 가슴에서 나왔다. 이후 젖을 충분히 비우지 못하고 다시 차오른 젖때문에 가슴이 몹시 아팠다. 붉은 발적을 띄었고, 석회석처럼 매우 단단한 몽우리가 가슴에서 만져졌는데, 너무 아파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홍수가 범람하여 덮치는 듯한 아픔으로 허우적거렸다. 그때 간호사로 근무하며 만났던 유방 절제술 환자들의 표정이 줄줄이 지나갔다. 갈기갈기 구겨져 곧 종이 가루가 될 듯하게 일그러진 표정은 유방절제 수술실에서 볼 수 있는 한낱 지겨운 그림이었다. 지겨운 그림 앞에 나는 팔짱 낀 채 서 있었다. 무덤덤함으로 같은 그림을 응시했다. 엄마가 되어 젖이 돌고 젖몸살을 겪어보니 소리 조차 내지 못했던 그들의 아픔이 내게로 파도쳐 밀려왔다. ‘가슴이 아픈 건 온 몸을 날카롭게 찌르는 너무나 아픈 고통이구나’ 유방을 잘라 내기 전까지 그들이 겪었을 아픔과 끝내 유방을 잘라낼 수 밖에 없었던 그 속사정을 엄마가 되고 알았다. 그 순간 가슴 보다 깊은 곳에 사무친 영혼의 가슴이 아렸다. 그때 나는 비로소 어둠에 속하여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헌법 제2조 10장-

  매일 밤 잠에 취해 눈과 귀를 사정없이 비비적대는 아이의 등을 토닥토닥 거린다. 이후 곧 깊은 수면에 든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교과서로 배웠던 인간존엄의 뜻을 순간 벼락맞은 것처럼 느꼈다. 인간은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한다. 또한 사랑받아야 하며, 받은 사랑을 나눠 줄 수 있어야 한다. 숨막힌 10개월의 임신 기간과 15시간의 산고의 어둠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뱃속에 있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칭얼거리는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울음을 멈추는 것도 아이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너와 나의 다른 언어로 표현된다. 그 표현이 교통 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잊힐 수 없는 존귀한 별로 서게 되는 것이다. 그 별은 그 어느 누구도 해할 수 없는 존엄성을 가진다.

  ‘저 깊고 깊은 밤은 모든 태초를 품어 안은 자궁이다’ 라고 말하는 장석주 시인의 말처럼 그렇다, 내가 겪은 아픔, 내 주변 사람이 겪는 아픔으로 깊고 깊었던 그 밤은 자궁 속 어둠이었다. 고통, 인내, 기다림이 있는 그 자궁 속에서 어둠을 이미 맛본 우리는 어둠이 짙을수록 더 크게 빛나는 존재다. 그 빛은 너와 나의 사랑으로 더욱 환히 빛날 수 있음을 다시금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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