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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Aug 31. 2022

멀리 있다고 잊혀지는 건 아니다

전화 한 통화 별거 아닌데

최근 예전 다니던 첫 직장 동료 여럿이 꿈속에 나타났던 적이 있다. 난 혹시 내가 불편하지 않을까(내 성격이 그렇지 뭐)쭈볏쭈볏하며 멀찌감치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동료는 반갑게 맞이하며 어깨동무를 하고 우린 예전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알람 소리에 난 아침을 맞이했다.


꿈을 꾸고 나서 괜히 마음이 뒤숭숭했다. 자의로 퇴사한 이후 동료 간의 정은 재직 기간에만 적용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1명을 제외하곤 그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종종 진심으로 친했던 선배나 동기(친구)에게 전화가 오곤 했었을 때는 너무나 반갑고 고마워했으면서.


출근을 하고 오전에 잠시 시간이 남아 용기 내 몇몇 분들께 전화를 했다. 혹시 나란 존재가 껄끄러워 전화조차 받지 않겠거니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고 전화신호가 가는 동안 몇 번이고 그냥 끊을까 생각했다. 


이윽고 수화기 너머로 반갑다는 말이 먼저 들려왔다.


'어우, 잘 지내?'

'아, 네, 저야 그럭저럭 잘 지내죠..'

'그렇구나 별일은 없고?'

'네, 오래간만에 생각나서 전화드렸어요. 그동안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아니야, 무슨 소리야 난 항상 ㅇㅇ 생각하고 있었지, 연락 줘서 고맙네'


길지는 않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꼭 한 번 뵙자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안 사실 이지만 내가 퇴사한 다음 날이 생일이었는데, 직접 챙겨주지는 못하고 근처 선배를 통해 내게 생일 케잌을 선물해주신 분이다. 이후 한 번 더 내가 있는 곳 까지 출장을 마치고 가는 길에 들러서 저녁도 사주시기도 하셨다.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연락 한 번 못한게 미안했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자연스럽게 만나뵙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그렇게 2년 반이 지났다.


마음이 후련했다. 퇴사하고 이직은 했어도 나의 30대를 함께한 회사인데 쉽게 사람이 잊히지 않는 건 당연했다. 뭔가 미뤄놓은 숙제를 해치운 기분이었다. 


이어 용기를 내서 내가 성장하는 데 많은 꾸지람과 도움을 주셨던 부장님께 어제 연락을 드렸다. 곧바로 전화를 받으셨다. 다행히 나를 잊지 않고 있었고 예전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종종 연락드리겠다고 하곤 대화를 마쳤다. 


누군가 그리울 때 난 항상 먼저 나를 불편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별 쓸데없는 생각이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죄책감을 숨기기 위한 변명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악연이라도 시간이 지나고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 다시 관계를 맺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상황이 문제였지 사람이 문제인 경우는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Photo by NordWood Themes on Unsplash

저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게 주어진 숙명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관계를 만든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날 때 상대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기는 어렵다. 좋은 상황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인연이 되고 좋은 상황에서 만날을 땐 악연이 된다. 전쟁에서 만난 적군은 서로가 서로를 적이라 정의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이 그들을 규정지을 뿐 아닌가.


멀리 있더라도 잊히지는 않는다. 다만 상황이 그럴 뿐이다. 다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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