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서
해가 지면 가급적 마음을 기술하는 행위를 제한하려했지만, 최근 많은 변화를 겪고 기록이 필요할 듯 해서 몇 글자 남겨본다.
최근 이사를 하고 이직을 하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에 적응하려다 보니 알게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인 듯 했다. 무지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을 이겨보고자 성격에도 맞지 않게 의지만으로 일을 해내려다 보니 이직 후 3개월도 안된 시점에 번아웃이 왔다.
늦은 밤 11시 퇴근길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뿌듯한 감정보다는 지친다는 생각? 주말을 어찌저찌 보내고 일요일 아침. 일어나기가 어려웠다. 허리가 너무 아팠다.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더니 피로가 누적된 듯 했다. 급히 허리를 치료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회사 걱정부터 들었다. 이 쯤에서 이상한 조짐이 나타났다. 몸이 아프면 내가 먼저여야 하는데, 회사 사람들이 나를 좋게 보지 않을거라는 생각. 제안서 작성으로 바쁜 와중에.
9월 이후 바빠 챙기지 못했던 약이 생각났다. 월요일 오전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 회사에 정이 떨어졌다. 이직 2개월만에. 그 주 토요일에 정신과를 다시 찾았다. 주치의는 약은 평생 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6개월 이상 1년 정도는 꾸준히 먹어야 뇌가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근데, 난 우울증이라는 걸 믿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이 뿌연 안개로 뒤덮인 듯 하고, 문제가 생기면 자주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그러면서 병원에 와있다).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세라고 했다. 우울증세 때문에 인지기능이 약해져있다고. 끊지말고 꾸준히 오라고 했다.
오늘 감정은 기억으로부터 기인한다는 뇌과학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기억은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나쁜 기억은 나쁜 부정적인 감정을 만든다고 말이다. 그리고 뇌는 부정적인 스토리를 저장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그게 생존에 유리하니까.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에만 있으면 안되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그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행동으로부터 얻는 이점이 많다고.
뇌가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려면 최소 21일 이상 노력해야 한단다. 나도 나의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끊고 어떤 지시, 문제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성취를 느껴보고 싶다. 과거에 어떤 트라우마를 겪었던. 잠시 생각해보자면 초등학교때부터 그리 웃을일이 없었던 거 같다. 아무래도 부모님이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거 같다. 이런 이야기는 가급적이면 꺼내지 않으려 한다. 서로에게 좋을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그 분들도 부모가 처음이었을거고 많이 어려우셨을거다. 다만 내가 밝게 자라는게 낫지 않을까. 과거는 바꿀 수 없으니. 아내에게도 이런 증세에 대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잘 치료하라고 했다. 미안했다. 괜히 이야기를 꺼내서 걱정쓰이게 해서 말이다.
<필링 그레이트>라는 인지치료에 관한 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알라딘에서 구입을 했다. 책이 꽤나 두껍다. 800페이지 가량 된다. 왠지 이 책을 다 읽으면 성취감이 뿜뿜 뿜어져 나올거 같다.
우울증세는 감기와 같다고 하지만 제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큰 병이 된다. 우리가 감기 걸렸을 때 마스크를 쓰고, 약을 먹고 때론 주변에게 알려 조심하라고 이야기 해 주듯 숨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치료해보고 싶다. 그래서 자꾸 도망치려고 하는 안 좋은 인지행동을 고치고 싶다. 그리고 삶에서 작고 소중한 행복을 충만하게 느껴보고 싶다.
일에서도 일은 일일뿐. 어느 한 곳에 치중하지 않고 주변 시선 너무 의식하지 않고, 나의 갈길을 가고 성장하고 싶다. 인정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단기간에 인정받으려 하는 것은 반짝이다. 진정한 인정은 내가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끼고 주변에 그 영향력이 미쳤을 때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너무 인생에서 큰 걸 바라지 말고 그걸 이루려 애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