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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현 Jun 26. 2021

슬기로운 교회생활

팬데믹을 지나는 교회 이야기




다윗과 골리앗     



교회 공동체는 지금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언제든지 모여 예배하고 떡을 떼던 신앙의 자유를 잃어버릴 위기가 찾아왔다. 마치 골짜기 아래에서 여섯 규빗 한 뼘이나 되는 거인이 우리를 향해 조롱하고 모욕하며 비웃는 것만 같다. “이래도 너희 신앙이 진짜인가? 교회라는 공동체가 정말 필요한가?” 누구도 섣불리 상대할 수 없고, 대답할 수 없는 엄청난 적을 만났다. 창과 방패를 들고 호기롭게 나갔다가 오히려 패배하게 될까 봐,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신앙조차 흔들리게 될까 봐,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두려움 때문인지, 교회를 향한 코로나 19의 도전 앞에서 허공을 치는 이들이 많다. ‘정부의 지나친 대응에 어떻게 항의할 것인가?’와 같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이다. 수시로 바뀌는 외부적인 요인을 통제하려고 하다가 우리 교회 공동체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에서 초점이 빗나가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분석과 판단 그리고 대처법에 대해 말하며 발 빠르게 세미나를 열고 전문가들을 모으는 것은 좀 낫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이것이다!” 할 만한 묘수는 없어 보인다. 지금 이 상황은 ‘신의 한 수’ 같은 특별한 방법으로 타개할 만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2천 년을 이어온 교회 공동체의 본질에 더 집중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교회 공동체의 본질은 ‘말씀과 기도와 떡을 떼는 교제’와 같은 은총의 수단에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본질적인 말씀과 기도와 교제를 이어갈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지켜야 할 것과 바뀌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것과 바뀌어야 할 것   


  

교회 공동체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보다 ‘주님의 계명’인 약속의 말씀이다. 어떤 도전이 있더라도 성도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삶에 적용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신앙이다. 교회를 향한 도전이 거셀수록 우리는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을 지켜야 한다. 또한, 교회는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다. 물론 기도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만나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교회가 공동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는 일은, 교회의 본질을 이야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일이다. 교회에 위기가 올수록 우리는 우리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을 말씀과 상황 가운데서 정하고, 그 방향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공동체가 공동의 기도 제목을 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공동의 기도 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온 교회가 한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교회 공동체가 지켜야 할 것 중 하나는 교제다. 참된 예배는 예배당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십자가의 예배는 성도의 교제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성도는 함께 삶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신앙에 있어 일상을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떡을 떼고 교제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또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다.     


교회 공동체가 포기하지 말고 지켜야 할 것이 말씀과 기도와 교제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와 교제가 본질적이라고 해서, 그 방법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여기에 바뀌어야 할 것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교회에 모여야만 말씀을 듣고, 일정한 장소에 모여야만 교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금지될 수도 있는 상황 앞에 우리가 서 있다. 한동안 이 상황은 계속될 것이고, 이렇게 상당한 기간이 지난 뒤에는 이런 상태가 흔히 ‘New Normal’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우리는 마땅히 그런 미래도 대비해야 할 것이고, 현실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무언가 새로운 방식을 생각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슬기로운 교회생활     



우리 교회는 유아부 어린이로부터 노년에 이르는 모든 세대가 매일 같은 본문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있다. 새벽마다 목회자들이 정해진 본문을 해석하고 설교하며, 교회학교에서도 주일마다 같은 본문의 말씀이 선포된다. 코로나 19로 교회의 모임이 금지되었을 때는 매일 새벽 묵상 말씀과 해설을 전교인에게 문자로 보내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 말씀을 나눴다. 사순절 기간에는 카카오톡과 홈페이지를 연동하여 성경필사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이 이벤트는 매우 호응이 좋아서, 조만간 청년부에서 성경 필사 이벤트를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온 교회가 같은 말씀을 읽고 쓰고 묵상하는 것은 매우 큰 유익이 있다. 교회 안에서 누구를 만나도 같은 간증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댁에 간 손녀가 교회학교 선생님께 배운 말씀을 이야기할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주간에 당신이 묵상한 같은 말씀에 대해 간증해 줄 수도 있다.     


우리 교회는 공동체의 방향을 함께 나누기 위해 기도 제목 카드를 만들어 나누었다. 말씀을 묵상할 때, 무엇보다 먼저 공동의 기도 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새벽기도회도 이 공동기도로 시작한다. 매일 같은 기도를 하는 것 외에도, 절기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공동기도를 나누기도 한다. 올해는 사순절 기간에 온 교회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상칠언 목회 기도’를 영상으로 제작하여 교회의 홈페이지와 유튜브, 페이스북에 게시했고 동시에, 문자를 통해 전교인과 함께 나누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같은 기도 제목으로 기도하고, 공동체의 방향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교회는 교제를 위해 미디어를 적극 사용하고 있다. 요즘은 많은 교회가 SNS와 그룹통화, 영상회의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소그룹과 신앙교육을 하고 있다. 우리 교회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우리 교회는 어떤 한 프로그램을 지정하기보다, 각 소그룹과 부서가 이용하기 편리한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자발적으로 모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부 속회와 교회학교는 그날의 묵상을 모든 구성원이 매일 문자로 그룹에 올리고 서로 교제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또 다른 모임들은 시간을 정하여 그룹 통화를 통해 목소리로만 소그룹 나눔을 하고 있고, 또 다른 모임들은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얼굴을 마주 보면서 소그룹을 하고 있다. 매주 소그룹 모임에 대한 보고를 받았는데, 자유로운 방법으로 소그룹 모임을 하도록 했더니 불가피한 비대면 모임 상황에서도 거의 모든 소그룹이 모이고 있었다.     


신앙교육에도 어려움은 많았다. 갑자기 어린이 예배를 영상으로 송출해야 하는 문제, 분반공부나 성경학교를 비대면으로 해야 하는 문제 등이 생겼다. 그러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인해 오히려 어린이들을 위한 영상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었고, 분반공부와 성경학교를 영상과 가정 활동으로 전환하면서, 그동안 구호에 불과했던 ‘교회와 가정이 함께하는 신앙 양육’을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런 사역들이 갑자기 쏟아지면서 사역자들의 창의력이 향상된 것도 매우 긍정적인 일이 아닌가 싶다.     


떡을 떼며 교제하는 일은 참 어려웠다. 교회 안의 모든 식사가 중단되었고, 사회적인 불안감 때문에, 속회나 심방 등의 여타 모임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더불어 식사나 간식을 함께 하는 소소한 나눔도 못하고 있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식탁 교제를 고민하다가, ‘성도의 교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성만찬을 하기로 했다. 함께 모여 예배당에서 성만찬 예식을 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워서, 성만찬의 전반부는 교회에서 목회자들과 함께 시작했다. 축사한 후 분병할 때 성만찬 식탁에 올려진 떡과 포도주를 가정별로 나누어 각자의 집으로 가지고 가서, 준비된 성찬기에 가장이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도록 했다. 성만찬 예식의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가정에서 영상을 따라 함께 성만찬 예식을 마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성만찬을 하면, 여러 사람의 손이 오가는 데서 오는 위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한 떡과 한 포도주를 나눈다는 성만찬의 의미도 퇴색되지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안수받은 목회자가 성례를 인도하게 됨으로써 신학적인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도 종이 주보를 스마트 주보로 전환하면서, 주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생의 문제, 과도하게 종이를 사용함으로써 생기는 환경의 문제, 코로나로 인해 생긴 재정의 문제에도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다시 다윗과 골리앗     



우리는 지금 엘라 골짜기의 이스라엘 군대처럼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 앞에 서 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청동 갑옷은 골리앗이 들고 있는, 손잡이조차 베틀 채 같은 철기로 된 창에 그냥 뚫려버리는 연약한 것이다. 코로나가 만든 비대면 사회를 생각하면 우리는 크게 열세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2천 년, 교회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가 얻은 보석 같은 신앙의 가치는 대부분 우리가 열세에 몰렸을 때 생겨났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만났을 때, 믿음의 사람들은 그 상황에 맞서 아름다운 신앙과 위대한 간증을 만들어 냈다. 시대의 거인 앞에서 믿음으로 취한, 슬기로운 태도와 행동을 통해, 교회는 신앙의 가치가 무엇인지 세상에 보여주었다. 우리가 본질에 집중한다면, 교회마다 상황이 다르고 대처 방법이 다 다르겠지만, 방법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신앙의 후배들에게 아름다운 신앙과 위대한 간증을 물려주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믿는다.   




  

참고

의정부제일교회 홈페이지 https://first.kmc.church/

카카오톡과 홈페이지 연결 및 스마트 주보 : 디자인아레테 https://daworks.io/

가정용 성찬기 : 인클레이 https://smartstore.naver.com/sant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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