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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Apr 11. 2021

프로배구 관람이 취미입니다

소개팅을 나가면 이 질문은 반드시 듣게 된다.


"혹시 취미가 뭐예요?"

"아, 저는 배구 경기 보는 거 좋아해요. 프로배구 관람이 취미입니다."


대답을 들은 남자들은 백이면 백,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덧붙여 '배구 좋아하는 여자'는 처음 봤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실 내 주변에도 배구 경기를 꾸준히 관람하는 팬은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야구, 농구, 축구, 배구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기 종목 중에서도 배구는 인기 종목이라고 할 수 없다. 심지어 야구 시즌과 겹치는 기간에는 챔프전 (결승전)이라도 야구 때문에 주중 대낮에 경기를 하거나, 주말 밤 시간에 경기를 하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느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어쩌다가, 배구에 빠지게 되었을까?


내가 배구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어릴 적 신진식 선수와 김세진 선수의 플레이를 봤을 때였다. '갈색 폭격기'라는 별명의 신진식 선수가 멀리서부터 달려와 점프를 하고, 등을 휘어가며 스매싱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멋있다'라고 말해버렸다. 그렇게 가끔씩 배구 경기를 보다가 한선수 선수가 대한항공에 입단할 때 즈음 본격적으로 배구에 빠져들었다.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한 지 15년 정도가 되었다. 초반에는 TV 중계를 통해 경기를 보았는데, 우연히 나의 설득에 넘어간 절친이 경기장에서 직관을 해보고 싶다는 말에 한두 번 찾아간 것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배구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는 경기장에서 직관을 하는 게 진짜다. 현장에서 응원가를 부르며 경기를 관람하면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 직관은 스트레스를 푸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으면 그것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없지만) 그 맛을 알아버린 나는 결국 프로배구의 프로 직관러가 되었다. '대한항공 점보스'의 팬인 나는 홈팀 경기장인 인천 계양 체육관을 가장 많이 방문하고, 우리 팀 경기가 있으면 어웨이 경기장인 장충, 의정부, 대전, 안산, 수원, 천안까지 달려가는 프로 직관러이다. 몇 년에 걸쳐 모든 경기장을 방문하다 보니 이제는 어떤 경기장의 좌석이 편한지, 화장실은 어디가 좋은지, 매점에서 어떤 음식을 파는지, 입장하는 통로가 어느 쪽인지, 경기장을 가는 방법은 무엇이 가장 편한지 등 웬만한 정보는 꿰고 있다.


배구를 좋아하게 되면서 겨울 시즌 나의 스케줄은 배구 경기 일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보통 10월에 시즌이 시작해서 봄 배구를 하게 되면 3,4월까지도 경기가 이어지게 되는데, 1라운드부터 6라운드까지, 그리고 플레이오프와 챔프전 일정까지 미리 스케줄표에 입력해두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약속을 잡을 때 미리 봐두지 않으면 경기가 있는 걸 깜박하고 외출을 하게 되는데 내가 배구 광팬이라는 걸 아는 지인들은 이제 경기 때문에 약속을 다른 날로 잡는 것에 대해 그러려니 하고 수긍하는 편이다. 배구 메이트인 절친과는 경기가 있는 날은 당연히 만나는 날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그 친구와는 겨울 시즌, 별도의 약속을 잡지 않아도 주 2회 만남이 가능해 절친의 레벨이 더욱 높아졌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는 왜 배구를 좋아하는 걸까?


배구 경기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배구는 한 세트당 25점을 먼저 내는 팀이 그 세트를 가져가게 된다. 총 3세트를 먼저 가져가는 팀이 이기는 게임인데, 참고로 5세트는 15점만 내면 된다. 그리고 24점에서 두 팀이 만나면 듀스 모드로 2점을 먼저 가져오는 팀이 세트를 따내게 된다. 한 세트에서 내야 하는 점수가 25점이나 된다고?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구기 종목보다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종목이라 쉴 틈이 없다. 그래서 응원가도 길지 않다. 빠르게 진행되는 종목이다 보니 집중력도 높아지고, 흥분 지수도 점점 고조되는 것이 사실이다. 성격 급한 나에게 최적의 종목이 아닐 수 없다. 다른 구기종목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개인적으로 축구를 진득하게 보지 못한다. 명확하게 점수가 쑥쑥 오르는 걸 볼 수 있는 종목을 선호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스포츠만 봐도 성격이 나온다. 성격이 급하고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일을 할 때도 나에게 주어진 일을 미루는 걸 정말 싫어한다. 후배에게도 일을 시킬 때 확실하게 데드라인을 주는 편인데, 그 데드라인은 내가 일을 빨리 마무리하기 위한 최적의 시간을 고려한 것이다. 만약 후배가 일을 미루고 미적 지근대면 그 부분만큼은 정확하게 지적하는 편이다. 성실함과 시간 약속은 기본이기에 다른 건 네 마음대로 하되 일을 미루거나 늦어지는 건 용납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런 성격은 친구들과 약속을 정할 때도 나타난다. 모든 일에 있어서 스케줄을 미리 짜야 마음이 놓이는데, 친구들이 약속 시간이나 장소를 최대한 미루려고 하면 내가 나서서 정리를 한다. 이렇게 급한 성격과 눈에 바로바로 보이는 것을 선호하는 나에게 배구 경기는 모든 조건이 완벽한 종목이다.


그럼 이제 워밍업은 마쳤으니, 재밌는 이야기를 시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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