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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Apr 11. 2021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고 들었습니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응원하는 팀이 있고, 좋아하는 선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내가 좋아하는 선수는 '한선수 선수'이다. 처음 한선수 선수를 보았을 때는 운동선수가 아이돌처럼 하얗고 예쁘게 생겨서 놀랐다. 엄청난 미남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외모에 먼저 반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점점 성장하는 그를 보면서 실력을 겸비한 한선수 선수에게 제대로 빠져버렸다.


한선수 선수의 포지션은 세터다. 배구를 세 박자로 나누어 볼 때, '공을 받고 - 공을 올리고 - 공을 때린다'가 기본 코스인데 그중 한선수 선수의 포지션인 세터는 공을 올리는 역할을 한다. '그냥 공만 올리는 건데 어려울 거 있겠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배구를 보면 볼수록 세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세터가 공을 올린다는 건 말 그대로 공중에 띄워놓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팀 진영에서 블로킹을 준비하는 선수를 확인한 뒤, 우리 팀 선수 중 누구에게 어떤 공격 루트로 공을 때릴 수 있도록 할지 고민해야 한다. 확인할 것도, 생각할 것도 많지만 정말 찰나의 순간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공을 때리는 선수도 여러 명이고, 공격 루트도 다양해서 세터의 머릿속은 엄청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한다.


세터는 순간의 판단력으로 공격수들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공을 너무 높이 올려주면 공격수가 정확한 공격을 할 수 없고, 공이 너무 낮으면 블로커의 손에 막힐 게 뻔하다. 공을 올리는 속도 또한 중요한데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느려도 공격수의 스텝과 맞지 않아 범실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세터의 손끝에서 떨어지는 공이 어떤 속도와 방향으로 올려지는지에 따라 범실이냐 득점이냐가 결정되는데, 이 판단을 해야 하는 세터는 정말 머리가 좋아야 한다. 체력이 따라줘야 하는 것도 맞지만, 세터는 코트 안에 있는 그 누구보다 두뇌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는 포지션이다. 지난 몇 년간 남자팀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받는 선수가 모두 세터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대한항공 한선수 세터가 연봉킹이었으나, 현재는 KB 손해보험 황택의 세터가 연봉킹이다.)


한선수 선수의 토스는 놀라울 때가 많다. 순간적으로 상대 팀 블로커들을 따돌리는가 하면, 완벽한 합을 이루어 공격수들에게 최고의 공을 올려줄 때가 많다. 물론 한선수 선수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하거나 멘탈이 무너질 때도 많다. 배구를 자주 보는 이들은 알겠지만 한선수 선수는 가끔 엄청난 고집을 부린다. 공격에 실패한 선수에게 성공을 할 때까지 공을 올려주는 걸로 유명하다. 가끔 '왜 저렇게까지 고집을 부리지? 다른 사람한테 줘도 됐잖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모 해설자의 말에 따르면 공격수가 성공을 할 때까지 공을 올려주는 것이 공격에 실패한 선수의 멘탈과 세터 본인의 멘탈 모두를 회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대한항공에게 가장 큰 위기가 왔던 시즌이 있었다. 2013-2014 시즌으로 기억되는데, 삼성화재와 시즌 개막 경기를 치른 후 한선수 선수는 군에 입대했다. 한동안 코트 위에서 한선수 선수를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속상한 마음도 잠시 대한항공은 한선수 선수라는 주전 세터를 잃고 5명의 세터들이 고생을 해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3위라는 기록으로 씁쓸하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 시즌에 함께 뛰었던 용병이 마이클 산체스였는데, 산체스는 대한민국 최고의 세터(한선수 선수)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왔다가 개막 경기 이후부터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선수 선수가 돌아오는 시즌에는 산체스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선고받았다. 이 시즌 때 정말 많은 걸 느꼈지만, 세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다.


지난 시즌 대한항공에는 유광우 선수가 들어왔다. 한선수 선수와 동갑내기이며 대학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 유광우 선수는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많은 감독들이 탐을 낼 정도로 유능한 선수였다. 삼성화재에서 주전 세터로 꾸준히 뛰다가 우리카드를 거쳐 대한항공으로 넘어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한선수 선수와 유광우 선수가 한 팀에 있는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한선수 선수의 이름 뒤에는 언제나 대한항공이 있었듯, 유광우 선수의 이름 뒤에는 반드시 삼성화재가 붙어있을 것만 같았기에. 동갑내기이자 라이벌로 자주 거론되던 두 사람이 한 팀에서 뛰다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대한항공에는 한선수 선수라는 주전 세터가 버티고 있는데 유광우 선수가 설 자리가 있을까, 라는 걱정도 앞섰다. 하지만 지난 시즌 한선수 선수가 부상을 당해 큰 위기에 놓였을 때, 유광우 선수가 존재했기에 대한항공은 악몽의 2013-2014 시즌을 다시 겪지 않았다. 2020-2021 시즌에는 황승빈 선수까지 제대해 대한항공의 세터 라인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하다. 


(약간의 팬심을 덧대어 보자면) 한선수 선수라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세터가 있는 한 대한항공은 언제나 우승 후보로 거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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