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초 안에 미쳐야 이긴다
배구 경기는 서브로 시작된다. 경기를 시작할 때 양 팀의 주장이 나와서 심판과 함께 동전 앞, 뒷면으로 공수를 결정하면 먼저 서브를 넣는 팀이 결정된다. 그리고 경기를 하는 과정에서는 점수를 낸 팀이 다음 서브권을 가져가게 된다.
서브라는 건 단순히 공을 띄우는 행위가 아니다. 배구를 할 때 득점을 내는 방법 중 하나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기술이다. 과거에는 서브가 서비스 개념이었지만, 공격 방법 중 하나로 급부상하면서 선수들은 범실을 감수하더라도 강한 서브 또는 기술이 들어간 서브를 구사하게 되었다.
모든 감독들이 서브로 승부수를 띄우는 이유는 뭘까?
서브로 득점을 내는 것은 짧은 시간 내에 강력한 한방으로 1점을 가져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같다. 물론 로또는 큰 노력 없이 얻어지는 횡재수이고, 서브에이스는 엄청난 노력 끝에 얻어지는 행운의 점수이지만 한방을 노린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 않을까? 각 팀에는 서브가 주특기인 선수들이 있다. 일명 원 포인트 서버라고 불리는 선수들인데, 그들은 역전의 기회를 노리거나 앞서가는 상황에서 점수 차를 벌려야 할 때 투입이 된다. 서브 컨디션이 좋을 때는 원 포인트 서버의 활약으로 5점 이상의 득점을 내는 경우도 있다. 배구는 5점 이상 차이가 나면 그 점수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에 원 포인트 서버를 기용하는 것은 엄청난 전술이 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각 팀의 원포인트 서버로 활동하는 선수들은 8초의 승부를 위해 매일 450배의 시간을 들여 연습을 한다.
서브는 상대의 공격을 어렵게 만든다. 서브에이스로 한방에 득점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공을 받는 리시버들이 제대로 공을 받지 못해 다음 공격을 실패로 이어지게 하는 경우도 있다. 팬들은 이런 상황을 한 번에 꽂히지는 않았지만 서브에이스나 다름없는 득점이라고 한다. 리시버들이 흔들리면 결국 그다음 공격 패턴은 단순해지고, 공격 패턴이 단순해진다는 말은 곧 상대팀 블로커들이 미리 준비할 시간을 준다는 의미이다. 뻔한 공격 루트가 확인되면 3인의 블로커들이 이미 그 루트 앞에 서서 블로킹을 준비한다. 3인의 블로커를 따돌리는 일은 쳐내거나 뚫는 방법 두 가지 뿐인데, 이 때 심리적으로 부담을 갖는 쪽은 공격을 하는 쪽이기 때문에 블로커들이 더 유리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서브는 심리전으로 이용될 수 있다. 외국인 선수를 용병이라고 부르는데, 용병의 경우 웬만하면 강한 스파이크 서브로 상대 선수를 두렵게 만든다. 최근 남자 프로배구팀인 한국전력 빅스톰의 러셀 선수는 정규리그에서 36경기 연속 서브에이스를 성공시키며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웠는데, 이처럼 원 포인트 서버가 아니라도 강한 서브를 넣거나, 받기 힘든 서브를 치는 걸로 유명한 선수의 차례가 오면 리시버들은 긴장부터 하게 된다. 그리고 한번, 두 번 서브를 받아내지 못하면 말 그대로 멘탈이 털리게 된다. 때리는 자와 받아내야 하는 자의 싸움. 무너지는 리시버들을 지켜보며 차분하게 작전 타임 버튼을 누르는 감독들이 정말 많다.
공중에서 강렬하게 내려치는 스파이크 서브를 받아내는 것이 가장 힘든 건 사실이지만, 경기를 볼수록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서브의 종류는 플로트 서브이다. 플로트 서브는 공을 가격할 때 손목을 고정시켜 순간적으로 끊어치는 방식인데, 일명 '무회전 서브'라고 불린다. 공의 중앙을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치기 때문에 공이 코트로 떨어질 때 갑자기 상하, 좌우로 움직여서 리시버들에게는 가장 까다로운 공이라고 한다. 리시버 시선에서 슬로우비디오로 플로트 서브 장면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저걸 어떻게 받아?'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8초 안에 띄우는 승부수. 강력한 서브 한방이 한 팀의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다. 범실을 감수하고 강한 서브를 넣어 서브에이스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23 VS 24로 지고 있는 것과 같은 절벽 끝 상황에서 서브에 승부수를 띄우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팀에서는 그런 '미친' 상황들이 종종 발생한다. 팬들의 가슴은 졸리지만, 그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질 경우 그것만큼 짜릿한 순간이 또 없다. 팬들도 그런 마음인데 그 공을 친 선수 본인은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