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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Apr 11. 2021

배구계를 얼룩지게 하지 마세요

인터넷 초록색 창에서 내가 제일 먼저 확인하는 카테고리는 스포츠이다. 그리고 배구를 클릭하면 배구 뉴스가 주르륵 나열된다. 어떤 팀이 이겼다는 소식이나, 감독 또는 선수의 인터뷰, 누군가 다쳤다는 소식, 모 팀 감독이 바뀐다는 이야기 등 배구에 관련된 소식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그 창을 잘 들여다보지 않게 되었다. 올해 초 불거진 학교 폭력 논란 때문이다. 이다영, 이재영 쌍둥이 선수들의 학교폭력 사태를 시작으로 배구계에서만 몇 명의 선수들이 논란의 중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여자 배구 선수 중에도 알게 모르게 거론되는 선수들이 있었고, 남자 배구 선수인 송명근, 심경섭은 시즌 아웃, 박상하 선수는 은퇴를 선언했다.   


올 시즌은 김연경 선수가 국내 리그로 복귀한다는 소식에 배구계가 꽤 주목을 받았다. 배구 팬들뿐만 아니라 국민 선수가 되어버린 김연경 선수의 플레이를 자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만큼 배구 경기 시청률은 올랐다. 오랜 배구 팬으로서 김연경 선수 효과를 누려 배구계가 더 활성화되길 기도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이다영 선수의 SNS는 배구계를 얼룩지게 만들었다.


이다영 선수는 SNS에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며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듯한 메시지를 남겼다. '강한 자에게만 굽신거리고 약한 이에게는 포악해지는 일, 살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의미심장한 글과 함께 '곧 터지겠지. 터질 거야. 내가 다 터뜨릴 거야' 라는 폭로를 암시하는 글까지 올렸다. 팀 내 갈등이 존재함을 암시하는 글들로 배구계는 분위기가 다운되기 시작했다. 올 시즌이 시작될 때부터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흥국생명의 전력은 막강했다. 김연경, 이재영, 이다영 이 세 명의 선수만 봐도 통합우승은 어렵지 않아 보였는데, 도대체 무슨 내분이 일어난 것인지. 결국 이다영 선수의 SNS는 제 무덤을 판 꼴이 되었다. 그녀의 메시지에 응답한 사람은 학창 시절 이다영, 이재영 자매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였다.


나는 그녀의 심리가 정말 궁금했다. 자신의 과오를 깨끗하게 잊고 타인을 비방하는 것, 그전에 뻔뻔하게 온갖 방송에 얼굴을 보이며 매력을 발산하느라 바빴다는 것, 그보다 훨씬 전에 프로배구 선수로 활약하면서 해맑게 웃고 즐겼다는 것. 매일 밤 그녀는 두 다리를 뻗고 숙면을 취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선후배 간의 폭력, 감독의 폭력이 만연하다고는 하지만 누군가에게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가하고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로 매스컴에서 유명 인사로 활동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그녀들이 프로배구계에 오점을 남긴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녀들 덕분에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모두 색출되는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그녀의 부메랑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았는가 하면, 배구계에서 큰 논란이 되었던 12년 전 박철우 선수의 폭행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와 가해자에 대한 심판이 다시 한번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올 시즌 KB손해보험 감독직을 맡았던 이상열 전 감독은 학교폭력 사태에 대한 인터뷰에서 "저는 경험자이기 때문에... 폭력 가해자가 되면 분명히 대가를 치르게 된다. 저는 선수들에게 사죄하는 느낌으로 한다. 조금 더 배구계 선배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인터뷰는 또 한 번의 반성이 필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경험자'라는 표현에서 배구팬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경험자라고 표현한 것은 2009년 국가대표 코치를 맡고 있었을 때 박철우 선수에게 폭행을 가했던 사건 때문이다. 사실 프로선수가 스포츠계에 만연해 있는 폭력 사태에 대해 입을 연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다. 용기 있는 박철우 선수의 폭로에 배구계는 이상열 전 감독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지만, 3년 만에 징계가 풀려 경기대 배구부 감독으로 역임했다. 그리고 올 시즌 KB손해보험 감독이 되었다.


이상열 전 감독의 인터뷰를 본 박철우 선수는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라며 포문을 열었고, 경기 후 인터뷰를 자청해 이상열 전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박철우는 같은 리그에서 다른 팀이지만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고, 이상열 전 감독이 대학 지도자 시절에도 선수들에게 변함없이 폭력을 행사하며 '박철우 때문에 넌 안 맞는 줄 알아'라는 말을 했다는 걸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사과받고 싶은 생각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다며 시즌 중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 KB손해보험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프로배구계가 나쁘게 비치는 게 싫지만 이번 기회에 폭력 논란에 대한 부분은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해 나서게 됐다며 명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결국 이상열 감독은 KB손해보험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다사다난했던 시즌이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쌍둥이 자매는 사건이 발생한지 약 두 달 만에 입을 열어 학교폭력 피해자 진술의 일부는 잘못된 내용이라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피해자의 요구에 의해 반성문을 쓰게 됐다는 말을 함으로써 그녀들이 쓴 반성문은 사건 무마용 서류일 뿐, 진심은 전혀 담겨있지 않은 의미 없는 글이라는 걸 알게 됐다. 체육시민연대는 2차 가해를 즉시 멈추라고 했다. 두 달간 그녀들이 입을 다물고 있기에 깊이 반성하고 있는 줄 알았던 배구 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청하옵건대, 쌍둥이 자매여. 제발 배구계를 얼룩지게 하지 마시고, 조용히 반성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시길 부탁드리옵니다. 배구 팬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행보가 부디 옳은 길로 나아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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