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상가 J Mar 20. 2022

2년 3개월, 코로나에게 항복했다.

아홉수니, 삼재니, 이런 말을 극도로 싫어한다. 크리스천이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기운을 내포하는 그런 말들을 굳이 싸매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올해의 나는 아홉수이자, 삼재다. 남들이 보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갈길 가겠다며, 두어 달을 무시하고 살았다. 


무시를 하기는 했는데 올해가 시작되면서부터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아홉수에 삼재인가. 심지어 다이어트를 한다고 식사를 급격하게 줄인 탓인지 면역력이 심각하게 떨어져 목에 염증이 생기기도 했다. 항생제를 욱여넣으며 앞으로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은 했지만, 다이어트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결국 사달이 났다.


"양성입니다."


코로나 유행이 시작된 지 2년 3개월 정도가 지났다. 작년 말까지도 내 주변에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올해 초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늘어난 확진자 추세에 맞춰 주변에서 하나 둘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얼마나 아픈지, 격리를 하는 동안 어려움은 무엇인지,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 등등 어쩐지 이번 유행은 피해 갈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스쳐갔다.


조금만 감기 기운이 있어도 의심했다. 장염 때문에 고생을 할 때도 혹시나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비바람을 뚫고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PCR을 받기도 했다. 확진자가 넘쳐나면서 PCR이 제한되자 이제는 자가 키트를 사들였다. 면봉 끝이 코끝을 향하고 있음을 확신할 때쯤 면봉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들이 찌르는 거에 비하면 입구에서 깔짝대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 자가 키트는 언제나 음성이었고, 키트 위에 두 줄을 새기는 게 가능한 일이긴 한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목이 칼칼하고 간지러웠다. 목감기 약을 먹자 바로 나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약이나 받을 겸 이비인후과로 직행했다. 대수롭지 않게 대기실에 앉아 기다릴 때쯤 의사가 나를 불렀다. 의자에 엉덩이가 닿기도 전에 '양성, 두줄입니다.'라고 말한다. 


"저 안 아픈데요? 열도 안 나는데요?"

"다행이네요. 안 아픈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코로나로 사고 회로가 엉망이 된 건지 거기서 왜 낯선 의사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는지 모르겠다. 의사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를 위한 안내문을 전했고, 5일 치 약을 지어주었다. 확진자라서 그런지 진료비는 저렴했고, 약국에서는 1원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코로나에 걸렸으면서 뭐가 그렇게 감사한지.


나는 2년 3개월 만에 코로나에게 항복했다. 

항복을 했다기보다 당한 쪽에 가깝지만 어쨌든 당첨. 


어디서, 누구에게 걸렸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다양한 장소를 들락날락거렸다. 최대한 실내보다는 실외에서 밥이나 차를 마시려 노력했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확진자와 밥을 먹어도 걸리지 않는 걸 보면 이제 코로나에게 굴복당하는 건 운에 맡겨야 하는 문제인 듯싶다. 


나는 서둘러 확진 소식을 전했다. 가장 먼저 가족에게, 그리고 최근 5일 내에 나를 만났던 사람들에게. 그다음 절친한 지인들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특히, 코로나에 먼저 걸렸던 일명 '코로나 선배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유행을 피해 가고 싶지 않았어."

"아프냐? 나는 아프다."

"코로나에 걸린다는 건 이런 거구나."

"국가가 지정한 일주일 백수 라이프를 시작합니다."


별다른 증상도 없던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내 방으로 직행했다. 집은 고요했지만 나는 국가가 시키는 대로 방문을 닫았다. 이제 이 문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가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친구들이 독립하라고 할 때 독립할 걸. 

이 좁디좁은 방에서 일주일을 어떻게 지냅니까!? 

왜 내 방에는 화장실이 붙어있지 않은 겁니까!?

낮에도 해가 들어오지 않는 이 방에서 비타민D를 어떻게 섭취합니까!?


울분을 토해봤자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렇게 벌써 4일 차를 맞이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고, 어느새 나에게는 패턴이 생겼다. 화장실을 갈 때는 비장하게 두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94 마스크를 끼고, 어깨에는 개인용 수건을 걸친 뒤, 소독약을 챙긴다. 변기부터 세면대를 닦는 것은 물론 나의 존재만으로 화장실에 바이러스 균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두려워 소독약을 미친 듯이 뿌려댄다. 그리고는 다시 내 방으로 호다닥 달려간다. 하루에 2L 넘게 물을 마시던 내가 화장실 가는 게 눈치 보여 1L의 물도 겨우 먹는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 물을 많이 마시라는 국가의 지침은 1인 가구 또는 가족이 다 같이 걸린 경우에 해당된다. 그게 아니라면 가족과 함께 사는데 혼자 걸린 확진자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직원이 내린 결정일 것이다. 이렇게 눈치를 봐야 했다면 나는 애초에 격리 호텔을 알아봤을 것이다. 


앞으로 3일만 참으면 따뜻한 봄바람을 만끽하며 거리를 걸을 수 있다. 물론 일주일 후에도 균이 남아있을 수 있으니 최대한 조심해야겠지만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거리를 걸을 수 있고,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행복하다.


갑자기 이런 두서없는 후기를 남기는 이유는... 


아직도 코로나를 두려워하시는 분들에게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흐르고, 의외로 아프지 않은 사람도 있으며, 언제 걸릴지 모르니 자신의 방 어딘가에 비상용 간식 식량을 구비해두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이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걸리는지 알 수 없다. 내가 그랬다. 2년 3개월을 잘 피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코로나에게 항복했다. 남의 일이 아니라 이제는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될 때다.





그렇지만 끝까지 걸리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디, 아프지 마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넌 언제나 나를 찾아줬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