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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하 May 15. 2018

진짜, 서울식 해장국

해장국 기행(서울 3-동대문 을지로 5가ㅣ대화정 해장국

사람이 많이 몰리고 그래서 시끌벅적한 곳을 따지자면 시장 만한 데가 더 있을까? 오일장뿐만 아니라 상설시장 역시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서울 동대문 일대는 말 그대로 다양한 시장으로 형성된 ‘난장’ 판 이다. 동대문 종합시장을 비롯하여 평화시장, 광장시장이 있고 최근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패션 빌딩, 청계천 건너편으로 방산시장, 중부시장, 신당동 중앙시장까지 광범위하게 시장이 펼쳐져 있다.


쌀쌀한 새벽녘에 어쩔 수 없이 도심을 배회해야만 한 적이 있다. 얼마 전의 일이다. 한국을 여행 온 말레이시아 친구들과 10여 일가량 전국을 여행한 후 마지막으로 서울 동대문 인근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다. 체크인하고 말레이시아 친구들은 동대문 쇼핑센터로 흩어지고 나는 짬을 내어 열흘간이나 비워뒀던 사무실에 들러 미뤘던 업무 처리를 하고 다시 동대문으로 갔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은 호텔 도착 후였다.

내 룸메이트는 칠순이 넘은 말레이시아 친구(?)였는데, 연로하신 친구는 잠들면서 세이프 가드를 걸어놓고 잠이 들어버렸던 거다.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깊은 잠에 빠진 룸메이트는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해도 반응이 없다. 아,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오갈 데 없는 나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처지가 돼버렸다.


호텔 로비를 벗어나 거리로 일단 나왔다. 동대문 밤거리는 여전히 낮보다 더 휘황찬란하였고 이렇게 된 김에 허기진 배와 소주한잔 곁들여 남은 시간을 보내려는 요량으로 불 켜진 해장국집으로 들어섰다. 들어간 곳은 ‘대화정’이라는 30년 넘은 해장국 노포 식당이었다. 대화정이라는 상호보다 진짜 해장국이라는 이름으로 동대문 상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라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이 집 해장국을 보니 큼지막한 소뼈와 선지, 그리고 우거지가 듬뿍 들어간 서울식 해장국이었다. 서울식 해장국의 특징은 맵거나 짜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끓여낸 사골국물 육수에 된장을 풀어 간을 맞추고 우거지를 듬뿍 넣어 달짝지근한 맛을 내게 한다. 거기에 선지를 넣으면 서울식 해장국이 된다.


대화정 해장국이 바로 정통 방식으로 끓여내는 서울식 해장국이었다. 해장국 재료로 선지를 많이 사용하는데, 의외로 선지는 다루기가 만만치 않은 식재료다. 신선하지 않으면 잡내가 나고 제대로 삶아내지 않으면 식감이 형편없어진다. 그래서 선지를 잘 다루는 식당 음식은 기본 이상은 한다고 보면 된다. 대화정 해장국 선지는 적당히 삶아져 누린내 없이 부드러우며 식감이 살아있다. 더욱 이 집에서는 화학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재료 천연의 맛을 끌어내어 조리한다 하니 그 맛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




그렇게 끓여낸 세월이 사십여 년, 대화정 해장국은 동대문 부근 상인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오래전부터 한몫을 해왔다고 한다. 특히 지역 특성상 새벽시장에 나오는 상인들을 위해 개업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4시간 가게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한다.


곁들여 시킨 소주 한 병을 해장국과 함께 천천히 나눠 마셨다. 우거지나 선지나 국물 한 숟갈이면 소주 뒷맛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천천히 먹었는데도 그렇게 뚝배기 한 그릇은 밑을 보이고 말았다. 해장국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어슴푸레한 밤기운이 여전하였지만, 속이 든든하니 동틀 때까지 거뜬히 밤을 새워낼 수 있었다.


룸메이트는 아침에 sorry를 연발한다. 문을 잠그고 자는 습관이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세이프가드를 채워버렸다고. 어처구니없이 하룻밤 노숙자 신세가 돼버렸었지만, 덕분에 따듯한 해장국 한 그릇 먹을 수 있었으니 그로써 위안이 충분히 되었다. 다음에는 자극적인 해장국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들러야겠다. 이들에게 부드럽게 속 풀어내는 해장국도 있다는 것을 맛보여주려는 속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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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정 해장국은 시장이 밀집한 을지로 5가 인근에 있다.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으며 재료 본연의 맛으로 서울식 해장국을 끓여내는 몇 안되는 노포식당이다.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24시간 문을 열어놓고 있으며 양 또한 푸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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