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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슈슈 Apr 01. 2016

귀촌 단행(5)

퇴사, 이후의 삶

오전 10시나 11시쯤 기상 후, 점심을 먹고 씻는다. 침실에서 안방으로 출근해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오후 다섯 시쯤 저녁을 먹고 산책에 나선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씻고, 인터넷을 하면서 논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몇 일과가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거의 2년간 내 삶의 패턴은 위와 비슷하게 흘러갔다.
나는 이 무위한 삶이 좋았다. 24시간을 온전히 날 위해서만 쓰는 이 시간, 달리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 학교에 다니고부터는 잊고 살았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바로 이 시간이야말로, 내가 귀촌을 선택한 진정한 이유였다. 남들은 텃밭을 가꾸고, 집안 시설도 손수 수리하면서 부지런한 삶을 꿈꿀지 몰라도 나는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지향했다.


물론 대가는 있었다. 무위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생활비를 줄여야만 했다. 처음 내 목표는 한 달에 30만 원으로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오자마자 이발비를 아껴보겠다는 생각에 바리깡부터 구매했다. 태어나서 처음해 본 삭발.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나쁘기는커녕, 삭발만으로도 인간이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출근하기 위해 매일 아침 머리를 감는 일이 어찌나 곤욕이었는지... 나는 지금도 머리 감기와 면도, 이 두 가지를
내 인생을 좀먹던 것들 투 탑으로 꼽는다. 그래서 이참에 수염도 한번 길러 보기로 했다.


음식은 대체로 직접 해먹었다. 평소에 요리를 곧잘 하는 편이 아니어서 매끼 손수 밥을 챙겨 먹는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한동안은 라면으로 주식을 때웠다. 하도 먹어서 라면이 지겨울 즈음 비로소 인터넷을 뒤적이며 반찬 만드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외식을 하거나 배달 음식을 먹고 싶어도, 주변에 파는 곳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남을 의지하는 습관을 끝내 고치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엔 된장국을 시작으로, 미역국과 순두부찌개 등 요리 가지 수가 점차 늘어나더니, 급기야 스테이크와 무를 갈아 넣은 메밀 국수, 그리고 나시고랭과 미고랭까지 그 폭도 다양해졌다.


결정적으로  생활비를 아낄 수 있었던 것은 불필요한 약속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덕분이었다. 친구를 만나서 술을 마시거나, 여기저기 다니면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었다. 함께 퇴사했던 동료들은 이참에 영어 학원도 다니고, 헬스도 끊고, 해외도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6개월도 채 안 돼서 속속들이 생활전선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어학원도, 헬스장도 이 근처에선 찾아볼 수 없는 것들. 남들은 외롭지 않냐고 자주 묻는데, 난 이 고립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친구들이 가까이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건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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