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슈슈 Mar 27. 2016

귀촌 단행(4)

퇴사, 이후의 삶

귀촌 후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삶의 변화는 '잠의 질'이다. 인간은 온종일 잠만 잘 수 있는 동물이구나, 하고 스스로 놀랄 만큼 게으른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물론 처음엔 몸에 밴 습관이 고쳐지지 않아 고생을 좀 했다. 핸드폰에 저장된 알람 타이머는 진작에 삭제했건만 여전히 아침 8시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이번 기회에 이 못된(?) 버릇을 고쳐보고자 특단의 조치를 강구했다. 새벽 늦게까지 깨어있기. 유독 잠이 많은 내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마음 독하게 먹고 밤을 새워보기로 했다. 그렇게 뜬 눈으로 새벽을 보내면서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 그것은 창문 밖으로 생각보다 다양한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부엉이와 뻐꾸기의 우는 소리는 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재주가 있었다. “신성하다! 새벽 공기 속엔 마법이 있다.”고 베토벤이 말했던가? 자동차 소음만 단조롭게 오가던 서울에선 느낄 수 없는 자극이었다.
이런 피나는(?) 노력 덕분에 얼마 뒤부턴 늦잠을 푹 잘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잠의 질이 높아짐에 따라 내 인생도 덩달아 풍요로워졌다.

그나저나 왜 모든 회사는 9시 출근을 고수하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늘 회사 생활이 고달팠다. 연봉이나 복지가 아니라 탄력적 근무제를 시행하느냐 아니냐로 이직 여부를 결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아서, 탄력적 근무제를 실시하는 회사보다 지각할 때마다 연차를 깎는 회사가 훨씬 많았다. 그렇게 깎인 연차는 야근을 한다고 해서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 정말 불합리하지 않은가? 몇 번이나 이런 문제를 따지고 들어봤지만 결국은 내 개인 문제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모든 사람이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날 순 없는 법. 규칙이란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여러 사람을 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하는데, 대부분은 사람마다 편의를 봐줄 수 없다는 이유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조직은 있어도 조직원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회사를 떠나 귀촌을 결심한 이유도 개인으로서 온전히 남아있고 싶은 욕구가 컸기 때문이었다.

여담이지만, 가장 최근에 다녔던 회사에선 월급을 줄여도 좋으니 퇴근 시간을 앞당겨 달라고 요구했다.  경영진은 난색을 표했다. 보통은 반대로 요구하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난 이런 논리로 내 주장을 밀어붙였다. “우리가 9시 출근을 고수하면서 열심히 사는 이유는 과거의 역사 때문이다, 19세기 당시 유럽의 제국주의 출신 탐험가들은 아시아와 아메리카 등지의 원주민들을 하나같이 ‘게으르다’고 평했다, 그렇게 식민지배를 합리화했지만, 과연 지금은 어떤가? 당시 제국주의 국가였던 영국, 프랑스 등의 평균 근무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짧지 않은가? 100 년의 세월 동안 그 사람들은 깨달은 거다, 근무 시간과 성과는 비례하지 않는단 사실을, 우리는 제국주의적 시선으로 스스로를 재단하는 폭력을 멈춰야 한다.”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귀촌 단행(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