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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스키 Aug 01. 2021

냉정과 열정사이

현타의 가치 - 20년 전 영화, 변하지 않는 것들


사람이 머물 곳은 누군가의 마음 속이다


다섯 살의 기억은 어렴풋한 이미지만 남거나, 사라져 버린다. 다만 그때 받은 감정의 기억은 남는다. 자세히 떠올리지 못할지라도. 아이가 평생 품고 살아가는 엄마 아빠의 따뜻한 사랑처럼. 


오래전에 본 영화 속 이야기는 희미해진다. 다만 영화에서 받은 느낌의 기억은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대개 조작된다. 마치 내가 그 주인공이었던 것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의 풍경 속에는 늘 사람과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 조작된 기억 속에 내가 있다. 그 공간에 음악도 흐르니, 영화 속 어떤 사랑은 진짜보다 더 가슴에 사무친다. 


20년 전 영화「냉정과 열정사이」는 피렌체를 가슴에 사무치게 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오래된 성당 벽에 일본어 낙서가 가득하게 했다. 소설이 원작인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보다도, 영화 OST와 피렌체의 풍경이 더 유명하다. 서른 살 생일에 두오모에서 만나자는, 주인공 쥰세이와 아오이의 약속 때문이었다. 90년대 스마트폰도 없이 서로가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모르는 남이 된 남녀. 둘은 10년도 더 지난 스무 살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 오른다. 


모든 것이 빠른 지금으로선 고전 소설 같은 사랑이야기다. 촌스러운 사랑 방식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는 가보지도 않은 피렌체를 그리워한다.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여운을 남기는 것은 변하지 않는 감정 때문이다. 사랑과 그리움 같은 건, 인간이 만들 이야기의 영원한 주제일 것이다. 논리를 찾을 수 없는, 이해가 중요하지 않은 공감의 영역.


 "사람이 머무를 곳은 누군가의 가슴속 밖에 없어"


영화에서 아오이가 이 말을 듣고 쥰세이와의 약속을 지키기로 한다. 그리움이 사무치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머물 그 마음속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 사람의 마음 속일까, 그 사람의 마음에 산다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일까? 


냉정하게는, 그 마음에 머무는 것은 상대방이 아닌 나의 위안을 위한 것이다. 나의 자아가 머문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의 주인과 합의한 머묾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다'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마음의 주인이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방향은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 


나의 머묾이 진정 바라는 머묾이었다면, 그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게 행복하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제야 사랑하는 모든 인간은 비로소 자유를 찾는다. 사랑은 진짜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게 해준다.

20년이 더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피렌체


변하지 않는 것들에 진심인가


일본 청년들이 유학 중인 1990년대의 이탈리아 피렌체. 오래된 유럽 도시들 중에서도 엄청난 예술 작품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 영화에 등장하는 피렌체는 1400년대 탄생한 천재들과 그 후예들이 남겨놓은 유산으로 호흡하는 도시다. 


피렌체에서는 과거의 작품들을 복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지난 시간을 통해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다. 마음은 과거에 살고 있는 주인공과 닮았다. 그들은 스무 살 사랑의 약속에 머물러 있었다.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삶이 흑백 사진인 것은 아니다. 미래지향적인 회색 건물보다 오래된 골목길에 담긴 이야기가 더 깊은 감동을 준다. 미래를 위해 사는 사람이나 과거를 이용해 살아가는 사람이나 모두 현재를 산다. 진심을 다해 사는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누군가의 진심을 담은 삶을 누가 감히 평가할 수 있을까.  


과거의 기억, 오래된 사랑에 침착된 삶이 한심해 보일 수 있다. 왜 지금을 살지 않고, 지난 기억 때문에 힘들어하는가. 그런데 자신을 돌아보면, 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을 살고 있는가. 20년 후의 나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진심을 담아 사랑하는가. 변할 것들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는가.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진심인가.


두오모 성당 위에서


지금을 낭비해도 괜찮다


우리가 기억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너와 나, 지켜보는 사람 모두에게 중요한 건 사랑이었고, 모든 시간은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들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 길게 느껴졌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는 10년이나 걸렸다. 오래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왜 저렇게 어렵고 힘들게 사랑할까. 그렇게 그리워하면서 왜 여러 번 스쳐가기만 했나. 결국 다시 만날 거면서, 왜 용기 내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할까.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들은 관객이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을 종종 한다.


사랑 이야기가 주제가 아니라도, 내 삶을 영화로 만들어 보고 있다면 어떨까. 지금을 너무 낭비한 시간이었더라고 할 것인가. 그래도 진심을 다해 살았던 시절이어서 참 좋았더라고 추억할 것인가. 그러고 보면, 영화 속 이상한 선택의 이유가 이해된다. 우리는 모두 멀리서 보면 이해되지 않는 선택들을 참 많이 한다. 단지 지금은, 정답을 알더라도 믿지 못해 조급해하고 두려워하며 산다. 내가 나오는 이 영화의 끝을 아등바등 찾아보려고.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선택과 질문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그 시간이 바로 영화 자체였음을. 영화의 분량을 채우는 데는 낭비된 시간 이야기 만한 게 없다. 영화를 보고 나면 현타가 올 것이다. 뭐 그리 더 대단한 게 되겠다고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그리 괴로워했나. 그러니 지금을 낭비해도 괜찮다. 과거에 머물러도 괜찮다. 진심을 다해.


어떤 마음들처럼, 변하지 않을 풍경 -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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