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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onuk song Oct 27. 2022

독일에서 사장으로 살기

독일에서 일하기

나의 선택이었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릴 수 없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좀 멀리 왔다. 다시 직원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형편없는 수익을 보면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8년 전 삼성전자 본사 마케팅실에서 과장 진급을 하면서 퇴사 했다. 가족과 함께 독일로 왔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작은 성공도 맛보았고, 조금 더 큰 회사로 이직도 큰 어려움 없이 했다. 그런데 문제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재미가 점점 떨어져 간다는 것이었다. 누가 재미로 일을 하나 싶긴 하지만, 삼성전자에서 느끼던 감정과는 조금 달랐다. 그곳은 워낙 거대한 조직이었기 때문에 할 일은 항상 있었고, 새로운 목표가 쉴 틈 없이 주어졌다. 그 안에서 경쟁이었기 때문에 바깥으로 눈을 돌릴 만한 정신과 시간이 많이 없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고과 0.2점을 더 받겠다고 상사 눈치 보면서 할 말도 못 하고, 뭐 그땐 그랬다. 그러다 조금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것도 내 나라도 아닌 곳에서, 독일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하지 못하니 조직 내에서 한계도 보였고, 건방져졌는지 대충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내가 직접 한 번 해보자 하던 생각을 실행에 옮겨 버리게 되었다. 코로나가 막 시작하던 시기에 말이다. 참 우연히도 독일에 처음 왔을 때 했던 다짐처럼 독일 생활 5년 만에 사장이 되었다. 


사업은 시기와 운이 잘 맞아야 한다. 거대한 조직과 자금으로 나를 보호할 수도 없기 때문에 돌아가는 상황을 항상 잘 살피고,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똑같은 사업을 해도 몇 년 전에 시작한 것과 지금 시작하는 것은 마치 다른 사업처럼 차이가 꽤나 클 수 있다. 아이템이 같더라도 경제 상황이 다르고, 시장 상황, 경쟁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액셀을 밟아야 할 때 브레이크를 밟는다거나,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액셀을 밟아버리면 레이스에서 훅 하고 뒤쳐져버리는 건 한 순간이다. 그래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기회는 언젠가는 또 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장의 길로 들어서고 3년 사이에 두 회사의 오너가 되었다. 경영을 잘해서가 결코 아니라 조금 더 많은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다. 몇 달 잘 될 때도 있었지만, 지금 내 손에 떨어지는 건 편의점 알바 수준도 안 된다. 그냥 있었으면 삼성전자 차장 연봉을 받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잠자리에 들 때마다 든다. 연 초만 해도 올해 말까지만 한 번 더 해보고 안 되면 다른 직장을 알아보자 했는데, 올해도 이제 몇 달 남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보면 직장에서 자리를 잘 잡고 무난히 생활하고 있으며, 임원이 된 친구들도 제법 있다. 다시 직원이 되어 회사로 돌아가면 경쟁에서는 이미 늦었다. 그러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도 나는 이미 사장인걸!  


나는 온라인에서 서비스와 물건을 판다. 이커머스팀을 대신 운영해주고 있던 고객사가 하나 있는데, 최근 매출실적도 좋지 않거니와, 다른 부서들의 지원이 마뜩치 않아 접고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는데 고객사의 사장과 미팅이 잡혔다. 잔뜩 쏘아붙이려 미팅 준비를 해 갔는데, 회사 문을 닫을 거라고 한다. 꽤 튼튼한 회사였는데 머리속이 멍해왔다. 코로나에 이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독일 경제는 타격이 크다. 그런데 이게 왠 걸, 내가 운영하고 있던 이커머스팀을 나에게 주겠단다. 오래 공들였던 팀이긴 했지만, 워낙 문제가 많았던 팀이라,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래도 며칠 곰곰이 득실을 따져보니 잘 살리면 기회가 분명했다. 월 1억 매출도 하던 팀이다. 이제 온갖 비용도 고스란히 내 것이지만 말이다.


Employee는 들이는 시간을 대가로 회사에서 돈을 받는다. 대신 Employer는 직원들의 시간을 사서 돈을 만든다. Employee는 내 시간을 팔아 내 수준에 맞는 대가를 받지만, Employer는 내 시간을 들여 돈을 만드는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구축하고, 돈이 돈을 계속해서 만들 수 있다.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에 올 듯 말 듯 오지 않던 기회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날아들었다. 사장의 길을 접으려던 차에 마지막 불씨가 살아오를 수 있을까? 듬성듬성 두어둔 포석들이 바둑 시합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연결되어 서로에게 힘을 주리라 믿는다. 사업에는 경제상황도, 시장 상황도, 기회도 운도 중요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잘 되리라는 믿음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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