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일하기
하나에 집중했었어야 했을까?
처음 했던 사업은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작은 회사로, 주문이 들어오면 인쇄소에 주문을 넘기고, 인쇄소에서 인쇄와 배송까지 해주는 온라인 그림 판매 회사였다. 아직 수익이라고 해야 세무사 비용이나 충당하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2020년 시작한 이후, 나름 매년 조금씩 성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하나에 집중을 했어야 했던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회사를 하나 세워보니 자신감이 붙었고, 2020년 말, 코로나가 아직 한참일 때, 또 다른 회사를 세웠다. 두 번째 회사는 유한책임회사로 세 명이 출자해서 나는 1/3의 지분을 갖고 시작하게 되었다.
두 번째 회사는 GmbH
GmbH는 한국으로 치면 유한책임회사로 법인의 형태였으므로 겉 보기에는 제법 번듯했다. 하지만 설립 목적이 사실 불순했고 불명확했다. 같이 출자한 두 명중 회사 설립을 주도한 A는 이미 다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회사가 다른 큰 투자 회사에 흡수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사업이 지지 부진하여 그 투자 회사가 이 쪽 사업을 접으려 하던 차에, 회사 설립을 주도했던 A가 나와 함께 새로운 회사를 세우고, 우리 회사로 고객 정보를 이전해서 사업을 계속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던 중 방향이 틀어져버렸다. 그 투자 회사가 사업을 접은 것이 아니라 A의 원래 회사를 그대로 두고 발만 쏙 빼 버린 것이다. 그래서 A는 졸지에 회사가 두 개가 되어 버렸고, 나중에 세운 우리 회사는 살길을 별도로 마련해야 했다. 2021년 봄이었다.
A는 원래 내 보스였다.
나는 2015년 독일에 처음 왔을 때 A의 회사 이커머스 담당으로 처음 일을 시작하여 나름 성과를 내었고, A는 나를 좀 좋게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또는 쉽게 봤던지...) A의 회사는 건강 및 노인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였고, 그쪽 산업에서는 네트워크가 좋았다. A는 아는 제조사를 통해 OEM으로 수면베개를 만들어 팔자고 했고, 동시에 자기 회사의 이커머스팀을 우리 회사에 외주를 주어 돈 들어오는 구멍을 마련해 주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회사의 방향이 정해졌고, 원래 돌아가던 부서일을 맡아, 큰 어려움 없이 부서 매출의 10%, 월 1만 유로 정도를 벌기 시작했다. 시작은 쉬웠고, 회사 경영은 방만했다. 아니, 방만한 줄도 몰랐다. 월급쟁이로 15년 가까이 일하다 보니, 이름만 사장이었지 여전히 월급쟁이 시각으로 내 업무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있으니 OEM 수면 베개 주문과 생산, 마케팅 등을 같이 회사를 설립한 B에게 맡겨두었고, B는 독일어가 능통한 독일 사람이니, 세무사와 연락하거나, 거래처와 연락하는 업무를 맡았고, 나는 원래 했던 일인 고객사의 이커머스팀을 운영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묻혀있던 문제는 A의 회사가 파산 신청을 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2022년 말이었다. 알고 보니 B는 고객사의 편의를 봐준다고 4만 유로가 넘는 비용청구를 미루고 있다가 고객사, 즉 A의 회사가 파산을 해버린 것이다. 큰 투자 회사가 발을 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OEM 생산해서 공장 창고에 쌓여있는 팔리지 않는 베개는 아직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상태이고, 고객사 창고 한편에는 예쁘게 로고까지 찍혀있어 팔 수도 없는 포장 박스가 산처럼 쌓여있어, 당장 새로운 창고도 찾아야 했다. 독일어 때문에 맡겨둔 세무 관련 업무를 B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뤄왔고, 세무 업무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담당 세무사는 독박 쓰기 싫어 다른 세무사를 찾으라고 통보를 해 온 상태였다. 독일에서 세무사 구하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A는 그의 회사가 부도가 나기 직전에 내가 오래 맡아 키워왔던 그 회사의 이커머스 팀, 온라인샵, 도메인을 같이 세운 회사로 넘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판에 그의 회사가 팔리면서 구두로 한 약속도 깨졌고, 2023년 1월 고객사의 주인이 바뀌면서, 나도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했다. A의 회사에 붙어 기생하고 있다가 숙주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흥미를 잃은 B는 지분을 넘기고 나가겠다고 일에서 손을 떼었고, A는 내가 사장이니 회사를 팔던지 계속하던지 명목상 사장이었던 내가 결정하라고 하곤, 회사 정리의 고단함을 핑계로 잠적해 버렸다. A는 어차피 직접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B를 같이 데려왔고, 말만 번지르르하던 B는 구멍만 파놓고 나가고, (ex)삼성전자 대리 과장 마음가짐으로 주어진 일만 책임감 있게 하던 나는 똥더미를 떠안게 된 것이다.
나는 왜 그랬을까?
회사를 그냥 접기는 너무 싫었다. 독일어로 사업을 하는 사람을 Selbstständig라고 한다. 직역하면 "스스로 서는 사람"이라고 번역된다. 스스로 서기를 포기하고 다시 피고용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무모한 오기를 부리기 위해 나를 설득했다.
그 당시 회사 상황을 제대로 알았으면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회사의 방향을 바꾸었다. 수면 베개 브랜드에서 다양한 브랜드와 제품을 파는 건강 관련 제품 Reseller로 방향을 전환하고, 판매 제품의 스펙트럼을 넓히면서 매출을 꾸역꾸역 만들어 내고, 방만하게 운영되던 회사의 불필요한 비용들을 정리했다. 구멍 난 세무 업무는 그림 판매 자영업 회사를 봐주던 세무사에게 부탁을 해 정리하도록 했다. 독일의 세법이나 관련 법규 및 행정 절차 등 모르는 게 너무 많았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었다. 여전히 어려운 독일어지만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늦어진 세무처리로 벌금도 많이 내고, 온갖 관청에 전화하고 제조사 영업 담당자에게 연락하며 문제를 하나씩 풀어갔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Break-even, 손익분기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래 조금만 더 해보자.
2024년 말로 기한을 다시 늘려 잡았다. 내게 작지만 월급을 주고 이제 조금씩 비용이 충당이 된다. 바뀐 것이 그동안 많다.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마음가짐이다. 오롯이 혼자 서는 사람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이다. 문제를 맞닥뜨리면 이제 당황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는다.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찾는다. 방향을 결정하고, 실수를 통해 배운다. 불합리는 따지고, 안 되는 곳에서도 기회를 찾으려 한 번 더 시도한다. 건전한 철학으로 회사를 운영하면 회사는 건전하게 커갈 것임을 안다.
이제 나는 조금 덜 조바심내고, 조금 더 나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