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은 익어가고 있나요. 썩어가고 있나요
숙성과 부패. 숙성은 효소나 환경에 의해 맛과 질감이 향상되는 변화라고 한다. 부패는 미생물에 의해 단백질 등이 분해되며 상하는 변화라고 한다.
최근 제일 힘든 관계로 안 좋은 감정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오게 만드는 상대방이 있다. 참 묘하게도 좋은 사람이고 존경하는 사람이고 만나기 힘든 사람이란 걸 안다. 그런데 나의 감정 스폿을 자극하는 건 오래된 관계에서 나오는 미묘함이 쌓여있어서였다. 현재 흘러가는 관계망에 소통하다가 튀어나오는 과거 에피소드가 있다. 무의식 속에 '아, 그렇게 나를 어려워하고 신뢰하지 않았던 에피소드가 있었지!'
순간 상대방에게 차가워져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상처받았던 경험은 단절되어 부패하였다. 물이 고이면 썩어버리듯 내 무의식에 고여 썩어버렸다. 썩은 냄새는 가끔씩 상대방과 소통하다 안 좋은 방식으로 튀어나온다. 결국 기억의 상처가 강박으로 튀어나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과 어색해지고 어려워진다. 거리를 두는 것은 그것대로 상처받고, 가까이서 소통하는 건 소통하는 대로 또 상처받는다. 결국 진솔하고 솔직하지 못한 소통이 쌓여 오해와 편견이 생기고 난 숙성시키고 싶은 관계를 단절하고 썩혀가고 있다.
내 성격의 안 좋은 단점이 있다.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이는 찰나에 상처받으면 그걸 오래도록 쉽게 못 떨쳐낸다. 사회생활하기 힘든 타입이다. 상대방이 행한 말과 행동. 그 안에 '상대방은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를 진행형으로 계속 끌고 온다. 물고 늘어진다. 그런 점이 상대방이 나를 소소하게 챙겨준 걸 기억하는 장점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면에서 나를 자해한다고 느낄 때까 많다.
이제 일 끝나고 가는 길 멀찍이 나와 떨어져 걷는 상대의 기류를 인식하고 이 관계는 부패로 치닫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내 마음의 그릇을 잘 닦고 닦아서 잘 숙성시킨 김치 한 포기 담을만한 맛스러운 성숙한 마음을 담고 싶었는데 그른 것 같다. 이미 오래된, 낡아버린 마음은 결단하고 다른 소중한 관계라도 숙성시키기 위한 성숙한 대화를 시도하자고 다짐한다.
<김치 한 포기>
처음엔 심심했다.
하얗고 눈길이 안 가는 싱그러운 배추였다
소금으로 숨을 죽이고
시간을 부어버린다.
손으로 한 잎 한 잎 정성도 한 바가지 붓는다.
고춧가루도 쌓이고 맛스러운 재료들이 양념으로 범벅되어
새로운 탄생을 만들어 간다.
겉모습뿐만이 아니야,
그 안에도 무언가 익어가고 있다.
겉으로 치장한 노력이 속까지 스며가고 있다.
비린내 나는 부패가 되지 않기 위해
가끔 뚜껑을 열고, 숨을 털어내고,
바람을 쐬어야 하는 일이야
그걸 몰랐네, 서운함은 밀봉되었고
말하지 못한 마음을 뚜껑 닫은 채
깊은 냉장고 속에 넣어두었지
그래서 조금씩 상해갔고 찾지 않을 만큼
지독하게 신맛으로 무장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