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을 찾는 세 가지 질문
10년 전일이다. 필자는 대학교 모교에서 운영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동문멘토로 참가한 적이 있다. 4학년 졸업반 대학생들에게 인생진로상담을 하는 세션에서 그들의 질문에 흠칫 놀랐다.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나요?"
그들에게서 들을 물음은 아니었다. 필자가 그 나이 때는 그럴만했다. 필자는 획일적인 공부강요의 시대를 살아서 개인적인 관심사는 사치였다.
그러나 요즘은 소위 자기주도형 학습시대다. 개인적인 관심사 탐구도 권장되는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서 나름 엘리트로 인정받으며 성장한 그들이다. 더구나 대학교 4학년이면 20대 중반이다. 그 나이가 되도록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것이 다소 의외였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부모도 같은 질문을 한다. 20대 중반의 자녀를 둔 50대 후반의 부모가 희망퇴직당해 집으로 돌아와서 갑자기 깨닫는 것은 그것이다. '내가 뭘 좋아하지?'
부모나 자식이나 마찬가지 처지가 된 것은 우리 교육의 문제일까, 아니면 방향보다 속도에 목숨 건 사회환경의 문제일까.
조선시대 남이장군의 시를 한 소절 가져와 본다.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남아이십미평국이면 후세수칭대장부호아! (20세에 나라를 태평하게 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겠는가) 젊은이의 시야와 기개가 조선시대보다 한참 모자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
최인아책방의 최대표에게 젊은이들이 물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책방을 열었다고 하시는데 좋아하는 일은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 최대표가 답했다. "남이 대신 찾아줄 수 없어요.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필자는 면접관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왜 이 직무를 선택했는지 자신있게 답하지 못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그래서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연구했다. 나름의 권고를 할 정도는 되었다.
좋아하는 일은 '찾는' 것이 아니다. '발견하는' 것이다. 찾으려 하면 논리적으로 따지게 되어 어색해진다. 자기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위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라. 뜻밖에 스스로 크게 의식하지 못했던 어떤 행위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해봤는데 없었다고? 찾으려 드니까 안 보이는 것이다. 인간은 하루 24시간 중 상당 부분을 무의식적인 활동에 할애하고 있다.
'좋아하기만' 하는 일은 찾지 마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일이어야 한다. 당신의 True North는 흥미로운 일에서 출발한다. 흥미=재미+호기심이다.
좋아하기만 하는 일은 직업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당신이 찾지 못하는 것이다. 흥미로우면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는다. 취미는 에너지가 고갈된다.
흥미는 호기심을 동반하여 잘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 일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이기도 하면 돈 버는 직업이 된다.
필자가 취업면접 컨설팅을 할 때 가장 공감을 얻은 질문 세 가지를 소개한다. 여러분에게도 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디 인생직업을 찾는 출발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
금방 싫증 나거나 정말 하기 싫은 행위는 무엇인가요, 그 행위를 하는 자기 자신을 상상해 보세요. 기분이 나빠질 겁니다. 바로 그 순간 혹시 마음속에 떠오르는 즐거운 상상이 있나요, 그 상상을 쫓아가보세요.
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일이 있나요, 지인들에게서 "너 또 그 짓을 하고 있구나" 핀잔을 듣는 행위는 무엇인가요, 시간만 나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가는 그 짓거리가 바탕이 되는 일을 나열해 보세요.
셋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평생 돈 걱정이 없으니 이제부터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가요, 그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돕는 일이기도 한 그 일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