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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보다 더 중요한 것, 라이딩을 결정하는 숨은 설계도

프레임 지오메트리가 만들어내는 로드 자전거의 감각

by STUDIO 명랑


1. 나는 도대체 무슨 선택을 한거지?


로드자전거를 손에 넣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자전거 샵에서 인수하던 순간, 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직원이 해주는 설명도 대충 흘려들었습니다. 눈앞의 날렵한 프레임과 얇은 타이어만이 제 시선을 사로잡았지요. 마치 첫 차를 인도받던 순간처럼,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다른 세계의 라이더가 된 듯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거실 한켠에 세워두고는, 내일의 라이딩을 머릿속으로 수십 번이나 달려보았습니다.


드디어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았을 때, 처음 몇 분은 황홀감에 가까웠습니다. 바람은 더 가볍게 갈라지고, 타이어의 굴림은 이전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게 바로 로드자전거구나!”라는 흥분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그러나 그 흥분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출발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허리에서 묵직한 통증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리치가 길고 스택이 낮은 포지션은 그저 멋져 보였을 뿐, 제 상체를 끝없이 숙이게 만들고, 곧바로 어깨와 손목을 압박하는 함정이라는 것을.


페달링에 집중하기보다 손끝의 저림과 허리의 불편함을 견디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했고, 속도의 쾌감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결국 안장에서 내려선 순간, “나는 도대체 무슨 선택을 한거지?”라는 회의감만 남았습니다.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하이브리드 자전거가 떠올랐습니다. 늘 편안하게 출퇴근길을 함께해 준, 아무런 투정도 부리지 않던 그 자전거. 왜 나는 굳이 편안함을 버리고 이 불편함을 택했을까? 비싼 돈을 주고 오히려 고생을 자처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문은 좀처럼 내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나 불편함에 몸이 익숙해지고 나서야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오메트리를 고른다는 것은 단순히 성능을 택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 몸의 태도와 집중 방식을 바꾸는 선택이었습니다. 긴 리치와 낮은 스택은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고, 오히려 내면의 리듬에 몰입하게 했습니다. 불편함 속에서 새로운 집중이 생겨났고, 그것은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자세까지 건드리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자전거를 바꾼 게 아니라, 자전거가 나를 바꾸고 있었던 것이죠.





2. 눈에 띄는 스펙보다 중요한, 라이딩을 결정하는 프레임 지오메트리(Geomerty)라는 설계 언어


우리가 자전거를 고를 때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언제나 눈에 잘 띄는 것들입니다. 프레임에 붙은 브랜드 로고, 구동계의 등급, 휠셋의 무게, 그리고 가격표에 붙은 할인율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것들은 쉽게 비교할 수 있고, 빠르게 판단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더 좋은 성능, 더 가벼운 부품, 더 낮은 가격—이런 요소들은 우리의 욕망을 설득하고, 선택을 재촉하는 데 아주 능숙합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고른다는 일은 종종 ‘부품과 가격표를 비교하는 일’로 단순화되곤 합니다.


반면, 프레임 설계의 지오메트리(Geometry)라는 영역은 그와 다릅니다. 리치(Reach)와 스택(Stack), 휠베이스(Wheelbase), 헤드튜브(Head tube) 각도, 바텀 브라켓(Bottom bracket)의 높이 같은 수치들은 표면적으로는 감정을 자극하지 않습니다. 그 숫자들은 이해를 요구하고, 비교가 어렵고, 정답이 명확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주 1]


그래서 우리는 자주,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뒤로 미룹니다. 눈에 보이는 성능과 가격이 ‘감정의 언어’라면, 지오메트리는 ‘이성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감정은 항상 이성보다 빨리 반응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오해가 숨어 있습니다. 프레임의 지오메트리는 자전거의 성능과는 별개의 요소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성능이 어떻게 ‘나에게’ 전달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본질적인 구조입니다. 아무리 고성능 부품으로 조합된 자전거라도, 그 프레임이 나의 몸과 맞지 않고, 내가 원하는 자세와 다른 태도를 강요한다면, 그 성능은 온전히 나에게 도달하지 못합니다. 자전거는 언제나 ‘몸을 매개로 한 기계’이며, 그 몸의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바로 지오메트리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동안 낯설고 어려워 보였던 이 지오메트리라는 언어를 하나하나 해독해보고자 합니다. 숫자 뒤에 숨겨진 감각, 구조 뒤에 담긴 철학,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자전거 위의 당신의 자세와 집중,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성능과 가격이 중요한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앞서, 자전거의 형상을 결정짓는 ‘프레임의 지오메트리’야말로 이해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그 숨겨진 출발선에서, 진짜 선택이 시작됩니다.



[1] 프레임 지오메트리(Geometry)는 자전거 프레임을 구성하는 각 부위의 길이, 각도, 높이, 간격 등을 수치화한 구조적 설계도를 말합니다. 주로 리치(reach), 스택(stack), 휠베이스(wheelbase), 헤드튜브 각도(head tube angle), 시트튜브 각도(seat tube angle), 바텀 브라켓 높이(BB height) 등이 포함되며, 이들의 조합은 자전거의 자세, 조향감, 반응성, 안정성, 편안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지오메트리는 단지 프레임의 형태를 설명하는 수치의 집합이 아니라, 자전거가 어떤 움직임을 유도하고, 라이더가 어떤 자세로 탈 것인지, 어떤 감각으로 페달을 밟게 되는지를 미리 설계해 놓은 기하학적 언어입니다. 예컨대, 리치가 길고 스택이 낮으면 상체를 깊게 숙이는 공격적인 자세가 나오고, 반대로 짧은 리치와 높은 스택은 편안한 자세와 넓은 시야를 유도합니다.


같은 부품이라도 지오메트리에 따라 완전히 다른 주행 경험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전거를 고르는 데 있어 프레임의 지오메트리는 핵심적인 기준 중 하나입니다. 숫자를 읽는 것은 곧 ‘몸을 설계하는 것’이며, 이는 성능과 가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라이딩의 질적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3. 자전거 지오메트리가 만들어내는 로드, 산악, 시티 자전거의 감각


자전거 위에서의 몸은 단순히 안장에 앉고 핸들을 쥐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자세는 프레임 지오메트리에 따라 정교하게 조율되며, 특히 리치(Reach)와 스택(Stack), 휠베이스(Wheelbase), 그리고 BB(Bottom bracket) 드롭은 몸의 태도와 지향하는 움직임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구조를 이루게 됩니다. 이 네 가지 요소는 라이더가 얼마나 숙이고 펴는가, 중심은 얼마나 낮게 유지되는가, 반응성과 안정성은 어떤 균형을 갖는가를 구체적으로 설계하며, 결국 자전거가 만들어내는 ‘몸의 형상’을 결정합니다. 먼저 이 네 수치가 각각 어떤 신체적 감각을 만들고 어떤 라이딩 태도를 유도하는지를 살펴본 뒤, 조향성과 직진 안정성을 조절하는 헤드튜브 각도와 핸들바(Handle bar)에 대해서는 별도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전거의 지오메트리(Geometry) [써벨로 홈페이지에서 인용]


먼저 리치(Reach)와 스택(Stack)은 자전거 위에서의 몸의 자세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리치(Reach)는 페달 축에서 핸들까지의 수평 거리, 스택(Stack)은 같은 지점에서 핸들까지의 수직 거리를 의미하며, 이 두 수치의 조합은 라이더가 자전거 위에서 얼마나 몸을 숙이고, 어디까지 팔을 뻗어야 하는지를 결정합니다. 결국 이는 자세의 기울기, 무게중심의 위치, 그리고 감각의 방향까지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입니다.


그리고, 휠베이스(wheelbase)와 BB 드롭(BB drop)은 자전거의 앞뒤 균형과 상하 중심을 동시에 조율하는 중요한 지오메트리 요소입니다. 휠베이스는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의 거리로, 이 거리가 길면 직진 안정성이 높아지고 중심이 넓게 퍼지지만 회전 반응은 둔하게 되며, 짧을수록 민첩한 조향과 빠른 반응이 가능하지만 고속에서의 흔들림이 커질 수 있습니다. BB 드롭은 프레임의 중심축, 즉 크랭크축이 지면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뜻하며, 무게 중심과 페달과 지면 사이의 간섭 가능성 모두에 영향을 줍니다. [주 2]


"로드 자전거는 일반적으로 긴 리치와 낮은 스택을 조합해 상체를 깊게 숙이고 척추를 앞으로 접게 만듭니다."

로드 자전거는 일반적으로 긴 리치와 낮은 스택을 조합해 상체를 깊게 숙이고 척추를 앞으로 접게 만듭니다. 이로써 어깨는 날카롭게 정렬되고, 팔은 길게 뻗으며, 몸 전체가 공기 저항을 줄이는 유선형 구조로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자세는 에너지가 손실 없이 페달에서 바퀴로 직선으로 흐르도록 도우며, ‘펼쳐진 몸’이 아니라 ‘접힌 몸’을 지향합니다. 긴장과 효율을 극대화한 구조입니다.


그리고, 로드 자전거는 짧은 휠베이스와 낮은 BB 드롭을 조합하여 반응성과 리듬감을 우선시합니다. 이는 민첩한 코너링, 빠른 가속, 안정된 출력 전달에 유리하지만, 낮은 중심과 짧은 축간거리는 도심이나 험로보다는 평탄하고 속도 중심의 환경에 적합합니다.


반면 산악 자전거는 리치와 스택 모두에 여유를 두어 상체가 낮게 눕지 않도록 하고, 팔과 어깨가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공간을 남깁니다.

반면 산악(MTV) 자전거는 리치와 스택 모두에 여유를 두어 상체가 낮게 눕지 않도록 하고, 팔과 어깨가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공간을 남깁니다. 이는 빠른 조향과 체중 이동, 그리고 순간적인 균형 회복에 유리하며, 지면과의 상호작용이 많은 환경에서 몸을 고정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조정하며 움직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말하자면 산악 자전거는 고정된 자세가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에 반응하기 위한 자세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산악 자전거는 긴 휠베이스와 높은 BB 드롭을 통해 급경사의 내리막에서도 무게 중심을 잃지 않게 하며, 뿌리나 바위와 같은 장애물을 넘는 동안에도 페달이 지면에 걸리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런 조합은 지형에 대응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데 탁월하지만, 도심의 정적인 노면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야외 환경에 적합합니다.


"시티자전거는 짧은 리치와 매우 높은 스택을 통해 상체를 거의 수직에 가깝게 세우게 만듭니다."

한편 시티자전거는 짧은 리치와 매우 높은 스택을 통해 상체를 거의 수직에 가깝게 세우게 만듭니다. 허리와 손목의 부담은 줄어들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전방과 주변으로 열리며, 도심 속에서 잦은 출발과 정지를 반복하는 라이딩 상황에 알맞은 편안한 자세가 만들어집니다. 시티자전거의 지오메트리는 '달리는 몸'이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몸'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이동 그 자체보다는 그 안의 여유와 관찰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몸을 배치합니다.


시티자전거는 휠베이스가 로드와 산악의 중간 지점에 위치합니다. 비교적 긴 휠베이스는 좌우 흔들림을 줄이고 정지 상태에서의 안정감을 높이며, 평균 이상 수준의 BB 드롭은 연석이나 방지턱을 넘기 위한 여유를 확보합니다. 동시에 페달링 간섭을 줄이면서도 탑승과 하차, 정차와 출발이 잦은 도심 속에서 편안하고 안전한 자세를 유지하게 해줍니다.



"BB (바텀 브래킷, Bottom Bracket)은 자전거 프레임에서 크랭크 암이 회전하는 중심축이자, 페달링 힘이 처음으로 전달되는 구조적 중심점이다."

[2] BB (바텀 브래킷, Bottom Bracket)은 자전거 프레임에서 크랭크 암이 회전하는 중심축이자, 페달링 힘이 처음으로 전달되는 구조적 중심점입니다. 보통 BB 셸이라 불리는 프레임 하단의 원통형 구조 안에 장착되며, 내부에는 베어링과 스핀들이 내장되어 있어 크랭크가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회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BB는 자전거의 무게 중심에 가장 가까운 부위이기도 하며, 라이더가 발을 통해 전달하는 모든 힘이 가장 먼저 통과하는 관문입니다. 따라서 이 부위의 높이(BB drop)는 지면과의 거리, 즉 무게 중심의 고도를 결정하며, 자전거의 조향 감각, 코너링 안정성, 장애물 통과 능력에 직결됩니다.


BB 규격은 자전거의 종류와 프레임 설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나뉘며, 나사식(Threaded), 프레스핏(Press-fit), 외부 베어링 시스템 등으로 구분됩니다. 최근 고성능 자전거에서는 회전 저항을 줄이기 위해 세라믹 베어링을 채택한 BB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바텀 브래킷은 단순한 축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자전거의 추진력을 구성하는 기계적 심장부이자, 페달링의 감각과 효율성을 결정짓는 동력의 관절입니다.





"흥미롭게도 요즘 도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동칵보드 역시 이 헤드튜브 각도의 영향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4. 조향 감각을 설계하는 각도, 헤드튜브의 세계


로드자전거의 헤드튜브 각도는 앞바퀴의 조향축과 지면 사이의 각도를 의미하며, 이 각도가 얼마나 기울어졌는지에 따라 자전거의 조향 감각이 전혀 다르게 됩니다. 각도가 날카롭게 기울어질수록 조향은 민첩하고 반응이 빠르며, 반대로 각도가 서 있을수록 조향은 느리지만 직진 안정성은 높습니다.


흥미롭게도 요즘 도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동 킥보드 역시 이 헤드튜브 각도의 영향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전동 킥보드는 대부분 바퀴 지름이 작고, 조향축이 거의 수직에 가까운 매우 서 있는 각도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직진 시에는 안정적일 수 있으나, 조향 반응은 둔하고 커브에서 꺾임이 갑작스러우며 균형을 잃기 쉽습니다. 특히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방향을 틀면 중심이 무너지는 듯한 불안정함을 경험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할리데이비슨과 같은 크루저 모터사이클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헤드튜브 각도를 활용합니다."

반대로, 할리데이비슨과 같은 크루저(Cruiser) 모터사이클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헤드튜브 각도를 활용합니다. 할리는 일반적으로 30도 이상의 매우 누운 헤드튜브 각도를 갖는데, 이로 인해 조향은 매우 느리고 무겁지만 직진 안정성은 극도로 높습니다. [주 3]


고속 크루징 상황에서 핸들이 흔들리거나 노면의 작은 충격에 반응하는 일이 없으며, 마치 철로를 따라 달리는 기차처럼 묵직하고 일직선의 진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신 저속에서 방향을 틀거나 유턴을 하려면 큰 회전 반경과 많은 힘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빠르게 반응하는 핸들’이 아니라 ‘직선을 지키는 핸들’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헤드튜브 각도가 조향 감각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체험할 수 있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할리데이비슨 이야기가 나오니 문득 한 편의 영화가 떠오릅니다. 사실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 이 거대한 크루저를 타고 전국일주를 떠나고 싶다는 낭만을 품고 있지 않을까요. 단순히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수단이 아니라, 묵직한 엔진의 리듬에 몸을 싣고 낯선 풍경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자유의 상징 말입니다. 그 순간, 길 위에 선 라이더의 뒷모습은 기계와 하나가 된 듯 강인하게 빛나고, 묵직한 실루엣에서는 남성적인 매력마저 흘러나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터미네이터 2(1991)>의 한 장면은 유독 강렬하게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어린 존 코너를 지키기 위해 처음 모습을 드러내던 T-800,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첫 출발은 다름 아닌 할리데이비슨 위에서 시작되었지요. 화면 속 그 묵직한 출현은 단순한 등장이라기보다, 새로운 보호자가 길 위에 태어났음을 알리는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검은 가죽 재킷과 묵직한 크루저의 조합은 ‘기계’와 ‘인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고, 그 순간부터 팻보이는 더 이상 영화 속 소품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모터사이클 마니아들의 마음속에 특별한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그 팻보이는 영화가 나오기 불과 1년 전인 1990년에 세상에 나온 따끈한 신모델이었습니다. 1340cc 엔진이 내뿜는 묵직한 토크와 특유의 박동감은, 화면 속 아놀드의 무표정한 얼굴과 검은 가죽, 그리고 금속 같은 체격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그 낮고 깊은 리듬이 스크린을 넘어 관객의 가슴까지 울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추격전. 굉음과 함께 질주하던 팻보이는 단순한 오토바이가 아니라, 스토리 자체를 끌고 가는 또 다른 주인공이었습니다. 지금도 팻보이를 떠올리면 단순히 한 대의 크루저가 아니라, ‘지켜야 할 존재를 위해 달리는 기계적 수호자’의 이미지가 먼저 스칩니다. 그때의 울림은 오래전 스크린 속 장면을 넘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 느끼는 고요한 리듬과는 전혀 다른, 금속과 엔진이 전해주는 진동의 황홀함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할리데이비슨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로드 자전거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크루저 모터사이클만의 매력이 다시금 마음속에서 살아납니다.


이와 달리 로드 자전거의 헤드튜브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줍니다. 로드 자전거의 헤드튜브는 일반적으로 72도에서 74도 사이의 날카로운 헤드튜브 각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구조는 고속 주행에서도 방향 전환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며, 손끝의 움직임 하나로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날렵한 조향감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그만큼 노면의 진동이나 손의 떨림도 그대로 전달되기에, 정밀한 컨트롤이 요구됩니다. 반면 산악 자전거는 대체로 64도에서 67도 사이의 느슨한 각도를 채택합니다.


이는 급경사의 내리막을 안정적으로 내려오고, 뿌리나 바위 같은 장애물을 부드럽게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조입니다. 조향 반응은 느리지만 중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주며, 마치 댐퍼처럼 움직임을 완충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산악 자전거의 헤드튜브 각도는 지형에 반응하면서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합니다. 한편 시티자전거는 중립적인 70도에서 73도 사이의 각도를 유지합니다. 이 각도는 조향이 민첩하지도 과도하지도 않은, 예측 가능한 안정감을 중심으로 설계됩니다. 방향 전환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며, 초보자도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는 직관적인 조향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시 환경처럼 복잡한 조건에서도 무리 없이 반응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각도는 라이더의 불안감을 최소화하면서도 일상적인 사용에는 충분한 민첩성을 갖게됩니다.



[3]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은 1903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설립된 대표적인 크루저(Cruiser) 스타일의 모터사이클 브랜드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상징적인 오토바이 제조사 중 하나입니다. 할리의 모터사이클은 무게감 있는 프레임, 대배기량 V트윈 엔진, 낮고 긴 차체, 그리고 독특한 배기음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미국식 자유, 개성, 장거리 여행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이들은 이 기체의 엔진 소리는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금속과 연료가 만들어내는 물리적 진동을 넘어서,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직선 도로와 광활한 지평선, 그리고 그 위를 달려온 수많은 자유의 서사들이 응축된 일종의 음향적 상징입니다. 깊고 낮게 깔리는 “팝…팝…팝…” 하는 리듬은 속도를 재촉하기보다는, 순간을 늘리고 여운을 남깁니다. 엔진 회전수는 높지 않지만, 그 박자는 심장 박동처럼 느껴집니다. 그 소리는 라이더에게 ‘이제 출발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고 속삭이죠. 할리데이비슨은 전 세계적으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도 인식되며, 라이더에게는 기계 그 이상의 정체성과 문화를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 프레임의 설계 역시 기능과 감성을 동시에 반영한 독특한 언어라 할 수 있습니다.





5. 상체의 감각과 리듬, 그리고 집중의 방향을 설계하는 핸들바


자전거에서 핸들의 폭과 손의 위치는 단순한 조향을 넘어, 몸의 균형, 상체의 개방도, 반응성과 안정감의 정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핸들바는 상체의 감각과 리듬, 그리고 집중의 방향을 설계합니다. 특히 로드 자전거, 산악 자전거, 시티바이크는 각각의 목적과 환경에 따라 핸들 폭과 손의 위치가 확연히 다르게 설정되어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상체 구조와 조향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로드 자전거의 핸들바는 대체로 어깨 너비와 같거나 조금 좁은 38~42cm 폭으로 설정됩니다."

로드 자전거의 핸들바는 대체로 어깨 너비와 같거나 조금 좁은 38~42cm 폭으로 설정됩니다. 이는 상체를 안쪽으로 모으고 팔꿈치를 살짝 굽혀, 전방을 향해 몸 전체를 유선형으로 정렬하기 위한 구성입니다. 손의 위치는 드롭바형태에서 상단(후드), 하단(드롭), 플랫 구간 등 다양한 포지션을 오가며, 자세와 목적에 따라 세밀한 조절이 가능합니다. [주 4]


특히 장거리 또는 고속 주행 시에는 손을 후드나 드롭에 두어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고, 페달링에 더 많은 힘을 집중시킬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핸들 구조는 조향 반응이 날카롭고, 민감하게 작동하며, 속도 중심의 라이딩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대신 상체는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므로, 어깨와 손목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산악(MTV) 자전거의 핸들바는 폭이 넓고 일자형에 가까운 플랫바 구조를 가집니다."

반면, 산악(MTV) 자전거의 핸들바는 폭이 넓고 일자형에 가까운 플랫바 구조를 가집니다. 일반적으로 700mm에서 800mm에 이르는 넓은 핸들 폭은, 지형의 불규칙성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손의 레버리지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됩니다. 손의 위치는 어깨보다 한참 넓게 벌어지며, 팔은 지면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유지됩니다.


이렇게 넓은 포지션은 조향 반응의 정밀함보다는 무게 중심의 즉각적인 이동과 충격에 대한 완충 작용, 그리고 급경사 하강이나 점프 후 착지 등 복합적인 동작의 안정성 확보에 초점을 맞춥니다. 결과적으로 핸들은 조향을 위한 도구를 넘어서 상체 전체를 사용하는 균형의 축으로 작용합니다.


시티바이크의 핸들은 보통 컴팩트한 라이저바 또는 크루저형 핸들바가 적용되며, 폭은 약 580~660mm로 설계됩니다

시티바이크의 핸들은 보통 컴팩트한 라이저바 또는 크루저형 핸들바가 적용되며, 폭은 약 580~660mm로 설계됩니다. 이는 어깨 너비보다 약간 넓은 정도로, 장시간의 속도 유지보다는 짧은 거리와 잦은 정지-출발 상황에 적합한 구조입니다. 손의 위치는 팔을 거의 펴고, 어깨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상태에서 손잡이에 닿도록 설계되어 있어, 등과 손목, 어깨에 가해지는 부담을 최소화합니다.


상체는 수직에 가깝게 세워지고, 시선은 전방과 주변을 폭넓게 확보할 수 있어 도심 속 시인성과 주행 안정성에 유리합니다. 조향 반응은 날카롭기보다는 예측 가능하게 조절되며, 일상적인 사용 환경에 최적화된 구조를 갖춥니다.


핸들바는 자전거의 전방 조향을 담당하는 부품이지만, 실상은 상체의 감각을 지면과 연결하는 가장 직접적인 구조입니다. 어떤 자전거를 선택하든, 손이 닿는 위치는 단지 조향이 아니라 집중의 방향, 감각의 깊이, 긴장과 여유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됩니다.



"드롭바(Drop Bar)는 로드 자전거에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핸들바 형태로, 양 끝이 아래로 굽어 있는 곡선형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4] 드롭바(Drop Bar)는 로드 자전거에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핸들바 형태로, 양 끝이 아래로 굽어 있는 곡선형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 디자인은 단순한 조향 장치가 아니라, 라이딩 중 다양한 손 위치를 가능하게 하여 공기저항 감소, 자세 조절, 효율적인 힘 분산 등을 돕는 다기능적 요소입니다.

드롭바는 크게 세 가지 주요 포지션으로 나뉩니다.

탑(Top): 핸들바 상단의 평평한 구간으로,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어 저속 주행이나 휴식 시 사용됩니다.

후드(Hood): 브레이크와 변속 레버가 달린 부분으로, 대부분의 로드 라이더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포지션입니다. 리치가 적당하고 손목의 각도가 자연스러워, 장거리 주행 시 안정성과 제어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드롭(Drop): 가장 아래쪽 곡선 구간으로, 상체를 깊게 숙여 최소한의 공기 저항으로 고속 주행을 할 때 사용됩니다. 레이스나 스프린트, 다운힐 시 자주 활용됩니다.


드롭바의 구조는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속도, 효율, 다양한 자세 전환이 중요한 로드 자전거 특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드롭바는 단지 핸들바의 형태가 아니라, 공격적인 주행 성향과 유선형 자세를 가능케 하는 로드 자전거의 핵심적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어로바(Aero Bar) 는 로드 자전거, 특히 타임트라이얼(Time Trial)이나 트라이애슬론에서 사용되는 특수한 핸들바 입니다"

반면, 에어로바(Aero Bar) 는 로드 자전거, 특히 타임트라이얼(Time Trial)이나 트라이애슬론에서 사용되는 특수한 핸들바 구성으로, 팔꿈치를 받치고 손을 중앙 앞으로 모은 유선형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비입니다. 일반적인 드롭바 위에 부착하는 형태로 많이 사용되며, 핸들의 중앙에서 수평으로 앞으로 뻗은 두 개의 바와 팔꿈치 패드로 구성됩니다.


에어로바의 가장 큰 목적은 공기저항 최소화입니다. 라이더는 상체를 깊이 숙이고 팔을 일직선으로 뻗은 상태에서, 최소한의 전면 면적으로 최대의 속도를 내는 데 집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조향 범위와 반응성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직선 고속 주행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일반 도로 상황에서는 사용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요약하자면, 에어로바는 속도를 위한 자세를 극단적으로 세팅할 수 있게 해주는 ‘공기저항 절감 장치’이며, 주행의 효율성과 성능을 극대화하는 데 목적이 있는 라이딩 보조 장비입니다.





6. 엔듀런스, 업힐, 레이스 — 세 가지 설계 철학이 만든 로드 자전거의 서로 다른 감각


앞서 설명한 로드 자전거, 산악 자전거, 그리고 시티 자전거의 지오메트리를 이해했다면, 로드 자전거의 세 가지 주요 범주—엔듀런스, 업힐, 레이스—역시 이미 많은 부분을 직관적으로 이해한 셈입니다. 이 세 가지 로드 자전거는 각각 지속 가능한 장거리 주행을 위한 엔듀런스, 오르막길을 빠르게 오르는 데 최적화된 업힐, 최대한 빠르게 달려 승부를 겨루기 위한 레이스라는 뚜렷한 용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지오메트리 역시 섬세하게 차별화되어 있습니다. 엔듀런스, 업힐, 레이스 자전거는 모두 로드 자전거라는 이름 아래 있지만, 프레임의 구조는 물론, 라이딩의 집중 방식과 페달을 밟는 태도까지 서로 완전히 다른 세 가지의 몸을 만들어냅니다.


엔듀런스 자전거는 상대적으로 짧은 리치와 높은 스택을 기반으로 상체를 일으킨 자세를 유도하며, 이는 허리와 어깨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고 장시간 동안 지치지 않도록 도와 줍니다. 포크와 시트스테이는 진동 흡수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넓은 타이어 클리어런스를 통해 부드럽고 안정적인 주행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자전거는 도착보다 여정에 집중하는 몸을 만들게 됩니다. 페달을 밟는 태도는 효율보다 지속 가능성에 맞춰지고, 집중은 외부 환경을 조율하는 데 사용됩니다. [주 5]


반면 업힐 자전거는 경량성과 반응성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짧은 휠베이스와 높은 강성, 완만한 리치와 스택 조합은 등판 중에도 중심을 잃지 않도록 돕고, 최대한의 힘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도록 설계됩니다. 이때의 집중은 단순하면서도 절박합니다. 오로지 경사와의 싸움에 몰입하며, 태도는 한 발 한 발의 페달링에 무게를 실어 ‘올라간다’는 의지에 집중됩니다.


레이스 바이크는 그보다 더 날카롭고 극단적인 몸을 요구합니다. 낮은 스택과 긴 리치, 뾰족한 헤드튜브 각도는 상체를 깊게 숙이고, 유선형 자세를 극대화해 공기저항을 줄이며, 페달에서 바퀴까지의 에너지 흐름을 가장 짧고 정밀하게 만듭니다. 짧은 휠베이스와 낮은 BB 하이트는 고속 코너링과 스프린트에서 압도적인 반응성을 제공하지만, 편안함은 거의 고려되지 않습니다. 이 자전거는 철저히 승부에 집중합니다. 몸은 쉴 틈 없이 정렬되고, 태도는 속도와 반응에 최적화됩니다.


결국 로드 자전거의 세가지 —엔듀런스, 업힐, 레이스— 자전거는 모두 페달을 밟고 있지만, 하나는 멀리까지 함께 가는 방식에, 하나는 오르막의 끝을 향한 절박함에, 다른 하나는 한 치 앞의 경쟁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곧 자전거가 부여한 ‘몸의 구조’와 ‘집중의 방향’에서 비롯됩니다. 실제로 시장에서도 이러한 성격의 차이는 제품군 구성과 판매 비중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2020년대 중반 기준, 글로벌 로드 자전거 시장에서 엔듀런스 자전거는 약 45~50%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가장 넓은 사용자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편안한 자세, 장거리 적합성, 다양한 가격대 덕분에 입문자부터 숙련자까지 폭넓은 수요를 이끌고 있죠. 레이스 자전거는 약 35~40%의 비중을 차지하며, 스피드를 중요시하는 라이더나 동호회, 대회 중심의 소비자층을 타깃으로 브랜드의 기술력과 상징성이 집중되는 대표 모델군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반면 업힐 자전거(클라이밍 바이크)는 약 10~15% 수준으로 비교적 비중은 작지만, 가벼운 프레임과 민첩한 반응성을 중시하는 고급 소비자층, 특히 산악 지형이 많은 지역에서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브랜드별 전략도 다릅니다. 예를 들어 스페셜라이즈드(Specialized)는 ‘Roubaix(루베)’와 같은 엔듀런스 모델과 ‘Tarmac(타막)’ 같은 레이스 모델을 균형 있게 전개하며, 캐니언(Canyon)은 경쟁력 있는 레이스 바이크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반면 트렉(Trek)과 자이언트(Giant)는 엔듀런스 및 입문용 중심의 포트폴리오에 강점을 보입니다. 결국 이 세 가지 자전거 유형은 단순한 제품 분류가 아니라, 각기 다른 라이딩의 목적과 몸의 철학이 어떻게 시장 안에서 구체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5] 엔듀런스 자전거(Endurance Bike)는 ‘지속 가능한 장거리 주행’을 목표로 설계된 로드 자전거의 한 유형으로, 편안함과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프레임 지오메트리를 특징으로 합니다. 일반적으로 짧은 리치(Reach)와 높은 스택(Stack) 구조를 통해 상체를 비교적 세운 자세로 만들며, 이는 허리, 어깨, 손목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고 장시간 주행 시 피로를 최소화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프레임 구조는 노면 진동을 흡수할 수 있도록 설계되며, 시트스테이(seat stay)와 포크(fork)에 진동 완화 기술(Flex Zone, 댐퍼 등)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넓은 타이어 클리어런스(30~35c 이상)를 제공하여, 더 넓고 부드러운 타이어를 장착할 수 있어 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서도 안정감 있게 주행할 수 있습니다.


성능보다는 라이딩의 지속 가능성과 쾌적함, 그리고 일관된 페달링 리듬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레이스보다는 그란폰도, 장거리 투어링, 일상적인 로드라이딩에 적합합니다. 엔듀런스 자전거는 '누구보다 빠르게'가 아니라 '누구보다 오래, 멀리' 달리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여정을 함께하는 자전거입니다.





7. 지오메트리를 읽는다는 것, 곧 나를 설계하는 일


로드 자전거의 지오메트리는 수많은 수치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설계도입니다. 리치와 스택, 휠베이스, 헤드튜브 각도, 바텀 브라켓 높이 등 각각의 숫자는 프레임의 기하학적 구조를 설명하는 데이터일 뿐이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저 낯설고 무의미한 숫자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숫자들은 단순한 수치를 넘어서, 자전거가 어떤 몸을 만들고, 어떤 감각을 유도하며, 어떤 라이딩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결정하는 정교한 언어이자 설계 철학입니다.


지오메트리를 선택하는 일은 단지 자전거의 성능을 고르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은밀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의 집중 방식과 태도를 바꾸는 선택입니다. 상체를 깊게 숙이게 만드는 구조는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내면의 리듬에 몰입하게 하며, 반대로 상체를 세우고 시야를 넓게 확보하게 하는 지오메트리는 주변의 흐름을 인식하고 조율하게 만듭니다.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는 결국 자전거 위에서의 집중의 방향과 라이딩 태도를 결정합니다.


이처럼 지오메트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선택한다는 것은 곧, ‘나에게 어떤 자세가 어울리는가’, ‘나는 어떤 집중과 리듬으로 세상을 헤쳐나가고 싶은가’를 스스로 묻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라이딩 자세의 정확한 측정이 가능한 피팅샵의 도움이 중요합니다. 지오메트리 피팅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몸에 가장 적합한 수치와 각도를 찾는 일은, 단순한 쾌적함을 넘어 성능과 안전, 효율성의 총합을 정밀하게 조율하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수치와 조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타인의 손에 맡긴 ‘맞춤’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그 안에 자신의 목표와 감각, 태도에 대한 자각이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 6]


로드 자전거를 고르는 일은 결국, 자기 몸을 어떤 구조로 세우고, 어떤 감각으로 달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지오메트리를 읽는 눈을 가진다는 것은, 단지 수치를 해석하는 능력이 아니라, 나 자신을 설계할 수 있는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가는 과정이자, 자전거라는 기계를 통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리듬, 집중, 태도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숫자 너머의 의미를 이해하는 순간, 자전거는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내 몸과 삶을 조율하는 가장 정밀한 도구가 됩니다.



[6] 피팅샵(Fitting Shop)은 라이더의 신체 치수, 유연성, 근력, 주행 목적 등을 분석하여 자전거와 몸 사이의 이상적인 조화를 찾아주는 전문 서비스 공간입니다. 단순히 안장 높이나 핸들 위치를 조절하는 수준을 넘어, 자전거의 프레임 지오메트리와 부위별 세팅(안장 위치, 스템 길이, 클리트 위치 등)을 개별 라이더에 맞게 정밀하게 조율합니다.


전문 피팅샵에서는 모션 캡처, 압력 센서, 페달링 분석 시스템 등 첨단 장비를 사용해 정적인 신체 계측뿐 아니라 실제 라이딩 동작에서의 움직임과 출력, 무게 중심 분포까지 측정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효율적 페달링, 부상 예방, 장거리 피로 감소, 퍼포먼스 향상 등의 목적에 맞는 세팅이 이뤄집니다.


특히 로드 자전거처럼 지오메트리에 따라 라이딩 자세와 퍼포먼스가 민감하게 달라지는 경우, 피팅은 단순한 편안함을 넘어서 라이딩 경험 전체를 바꾸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정밀한 피팅은 자전거가 ‘몸에 맞는다’는 단순한 감각을 넘어서, 자신의 라이딩 스타일과 철학에 맞는 기계적 구조를 세팅하는 과정입니다. 요약하자면, 피팅샵은 자전거 위의 ‘자기 자신’을 설계하는 곳입니다. 단순한 조정이 아닌, 지오메트리를 생활의 감각으로 번역해주는 해석자이자 자신만의 자세를 찾아주는 공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8. 함께 바람을 가르며 만들어내는 리듬, 펠로톤


로드 자전거는 지극히 개인적인 운동이면서도, 동시에 함께 달릴 때 가장 깊은 리듬을 만들어내는 종목입니다. 혼자일 때 우리는 자신의 몸과 기술, 집중의 한계에 몰입하지만, 여럿이 모이면 개인의 리듬은 서로의 바람 속에서 섞이고, 하나의 호흡으로 조율됩니다.


가을의 한강은 일 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습니다. 공기는 차갑지만 햇살은 부드럽고, 강 위로 스치는 바람에는 묘한 여유가 깃들어 있죠. 여의도에서 잠실을 거쳐 마포로 이어지는 ‘한강 써클’—도시의 윤곽을 따라 흐르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계절의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친구들과 함께였습니다. 처음엔 각자의 페이스대로 천천히 달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속도가 자연스럽게 맞춰졌습니다.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면 나머지가 뒤를 잇고, 잠시 뒤엔 또 다른 누군가가 앞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앞사람의 바퀴가 만든 흐름을 타며 순서를 바꿔 달리던 우리는, 어느새 한 뼘 남짓한 거리로 밀착해 있었습니다.


그날의 우리는 하나의 리듬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앞사람의 바퀴가 만든 흐름을 타며 순서를 바꿔 달리고, 바람은 일정한 박자로 변했습니다. 누가 먼저라기보다, 모두가 하나의 호흡으로 움직이고 있었죠. 페달의 회전과 심장의 박동이 겹쳐질 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함께 달린다는 건 단순히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요.


이렇게 라이더들이 서로의 바람을 가르며 만들어내는 흐름—이것을 프랑스어로 '펠로톤(peloton)'이라 부릅니다. 공기의 벽을 함께 넘기 위해 서로의 그림자 속에 들어가 달리는,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 같은 존재입니다. 그 질서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단순한 무리가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처럼 느껴졌습니다. 수십 명의 라이더가 하나의 리듬으로 움직이며, 마치 도로 위를 흐르는 집단적 의식처럼 보였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의 펠로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수십 명의 선수들이 각자의 심박과 호흡을 하나의 리듬으로 엮어내며 달립니다."

그날의 나는 그 무형의 조화 속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속도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서로의 에너지가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순간적인 균형이었습니다. 시속 60km를 넘나들던 그 순간, 나는 공기를 뚫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을 미끄러지듯 통과했습니다. 허벅지의 압박이 깊어질수록 리듬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 속도는 물리학이 아니라, 의지의 언어였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의 펠로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수십 명의 선수들이 각자의 심박과 호흡을 하나의 리듬으로 엮어내며 달립니다. 그들의 속도는 내 것과 다르지만, 그 안에 흐르는 감각은 같습니다. 바람을 나누고, 한계를 공유하며, 잠시나마 인간이 아닌 어떤 거대한 존재의 일부가 되는 감각 말입니다.





발칙한 요약: 이것만은 꼭 기억하자

자전거를 살 때 부품 등급이나 무게만 보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몸에 맞는 '설계도', 즉 지오메트리입니다. 아무리 비싼 옷도 사이즈가 안 맞으면 불편하듯, 자전거도 지오메트리가 내 몸과 맞지 않으면 성능을 제대로 쓸 수 없고 오히려 불편하기만 합니다.

내 '자세'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리치(Reach)와 스택(Stack)

다른 건 몰라도 이 두 가지만 알면 절반은 성공입니다.

- 리치 (Reach): 핸들까지 팔을 얼마나 멀리 뻗어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수평 거리입니다.
- 스택 (Stack): 핸들이 얼마나 높이 있는지를 나타내는 수직 거리입니다.

이 둘의 조합으로 라이딩 자세가 결정됩니다.

- 긴 리치 + 낮은 스택 = 레이싱 자세, 상체를 깊게 숙여 공기 저항을 줄이는 공격적인 자세입니다. 빠르지만 허리에 부담이 갈 수 있습니다.
- 짧은 리치 + 높은 스택 = 편안한 자세, 상체가 세워져 허리가 편하고 시야 확보가 좋습니다. 장거리 주행에 유리합니다.

자전거의 '성격'을 결정하는 요소들

- 헤드튜브 각도 (조향각): 자전거가 얼마나 민첩하게 방향을 바꾸는지를 결정합니다. 날카로우면 (레이스용): 조향이 매우 민감하고 빠릅니다. 누워있으면 (산악용) 조향이 둔한 대신 직진할 때 매우 안정적입니
- 휠베이스 (바퀴 사이 거리): 짧으면 (레이스용): 코너링이 날렵하고 반응이 빠릅니다. 길면 (장거리용): 고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안정적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로드 자전거는?

로드 자전거는 지오메트리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나뉩니다. 내가 어떤 라이딩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선택하세요.

로드 자전거의 지오메트리는 크게 세 가지 성격으로 나뉩니다. 먼저 엔듀런스(Endurance) 타입은 짧은 리치와 높은 스택 덕분에 편안한 자세가 나오고 주행이 안정적입니다. 반대로 레이스(Race) 타입은 긴 리치와 낮은 스택으로 공격적인 자세를 만들어주며, 반응성이 빠릅니다. 마지막으로 업힐/올라운드(All-round) 타입은 엔듀런스와 레이스의 중간에 위치합니다.

최고의 자전거는 '내 몸에 딱 맞는' 자전거입니다.

지오메트리 숫자를 전부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내가 편안한 자세를 원하는지, 아니면 빠른 자세를 원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고 자전거를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크게 줄어듭니다. 잘 모르겠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자전거 피팅(Fitting)'을 통해 내 몸에 맞는 자전거를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투자입니다.



지오메트리 피팅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몸에 가장 적합한 수치와 각도를 찾는 일은, 단순한 쾌적함을 넘어 성능과 안전, 효율성의 총합을 정밀하게 조율하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수치와 조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타인의 손에 맡긴 ‘맞춤’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그 안에 자신의 목표와 감각, 태도에 대한 자각이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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