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와 쉴레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아 빈

by 신지명

밤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너무나 쾌적하고 포근한 밤을 보냈다. 아침 일찍 먹거리를 좀 사러 나섰는데 심지어 마트도 지척이었다. 게다가 식재료가 어찌나 저렴한지 과일이며 맥주 따위의 부식을 잔뜩 사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성 바실리 성당에서 사 온 CD를 틀어 감동스러운 음악까지 곁들이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나는 빈에 대해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의 빈은 초록빛 공원으로 뒤덮여있고 주변에는 뾰족한 고딕 양식의 고성들이 즐비하며 반짝이는 다뉴브강을 따라 난 산책길에서 음악가들의 동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3박 4일이나 머물기로 한 이유도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고단함을 풀고 호젓하게 며칠 산책이나 하며 유럽을 느낄 작정이었다. 보통은 여행 갈 곳을 샅샅이 파헤쳐 몇 번이고 다녀온 듯이 공부를 해서 가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바쁜 일정에 쫓겨 길만 겨우 그려온 탓에 갖게 된 어처구니없는 상상이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어처구니없었다. 빈은 현대식 건물이 가득한 일반적인 도시였고 다뉴브강은... 내가 처음 파리의 센 강을 봤던 것처럼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물론 도시 전체가 매우 조용하고 깨끗한 데다가 너무나 아름다운 꽃을 파는 꽃집이 많았다는 것은 인상적이었지만 '목가'를 대표하는 오스트리아의 모습을 기대한 나로서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인생은 주거니 받거니 언제나 평온한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고 모스크바의 난민촌과 빈의 천사의 집 대비가 다시 한 번 그 믿음을 강화시킨 터였다. 그런 나에게서 빈은 목가적인 환상을 앗아가고 클림트를 안겨주었으니 계산은 제법 정확했다.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트리아의 천재 화가. 게다가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 내 심장을 주물렀던 에곤 쉴레의 그림까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미처 생각하지도 못 했다. 한때 그들의 작품에 매료되었었다고 말하기에는 나의 무지가 민망한 지경이지만 그들의 작품은 워낙 표현 자체가 강렬하니 모작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원작을 봐야겠다는 열망이 굳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구구절절 변명해볼 따름이다.
신기하고 재미난 물건을 좋아하는 남편이 가고 싶었던 기술 박물관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 그냥 발길을 돌렸고, 백성의 삶과 동떨어진 궁전 같은 것에 이제는 큰 흥미가 없어 광장의 마켓만 둘러본 쉔부른 궁전도 금세 떠났다. 벨베데레 궁전으로 가는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다른 작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전시관의 1층부터 차근히 그림들을 둘러보며 올라갔는데 다리도 좀 아프고 중세의 유사한 그림들에 살짝 시큰둥해지려는 그때, 전시관의 거의 마지막에 다다른 그때!
클림트의 '키스'
드디어 마주 섰다!


캡처.JPG The Kiss. Gustav Klimt. 1907-1908. oil on canvas


모나리자처럼 너무 작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운 것이면 어쩌나, 늘 보던 그런 느낌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클림트에게 큰 실례가 되는 것이었다. '키스'는 원작을 반드시, 반드시 봐야만 하는 작품이었다. 그림의 배치가 너무 높고 조명이 그림에 반사되는 바람에 그림을 온전히 감상하는 데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강렬했다. 두 남녀를 감싸고 있는 황금빛은 사진이나 그림으로는 절대로 표현될 수 없는 진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100년도 더 된 그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선명하고 생생한 빛이 반짝거렸고 남자와 여자의 몸에 그려 넣은 문양들도 하나하나 움직이는 것처럼 황금빛 위에서 일렁였다. 화려하게 빛나는 황금빛에 대비되어 더욱 처참하게 보이는 남녀의 얼굴빛은 그동안 봐왔던 사진이나 모작 따위가 줄 수 없는, 섬뜩하리만큼 처절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남녀의 육체적 관계에 탐닉했던 클림트였지만 그런 인간적인 욕망에 잠식되어가는 것에 대한 자괴감으로 괴로워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러한 욕망으로는 도저히 채워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 끝없는 갈망에 허우적댔던 것일까. 빛을 잃어 송장에 가까운 살빛을 한 남자의 절망감은 황금빛 환상으로 치장되었지만 그에 대비되어 너무도 처참해 보였다. 반면 생명의 기운을 온몸에 휘감고 벼랑 끝까지 내몰린 채 남자의 욕망을 받아내는 여자의 표정은 숭고함에 가까웠다. 욕망으로 다가서는 순간 사라져 버릴 숭고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누를 수 없는 욕망. 그 둘이 뿜어내는 깊은 슬픔에 나는 발길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그림 앞에서 서성거렸다.

에곤 쉴레의 그림도 시선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에곤 쉴레의 그림은 클림트의 영향을 받아 주제에 적나라하게 다가서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클림트가 주제에 대한 정복욕과 무력함을 동시에 품은 채 그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좀 더 '어른스러운', '정갈하게 치장된' 느낌으로 거리를 두어 표현했다면 에곤 쉴레는 훨씬 '날 것의', '도전적'인 느낌으로 주제와 완전히 뒹굴어버린 느낌이 있었다.
그나마 익숙했던 자화상이나 발리의 초상을 볼 수는 없었지만 허버트 라이너 Herbert Rainer라는 소년의 초상화가 제법 눈길을 끌었다.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의 초상화에서 '너희가 감춰놓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 무엇에도 나는 굴복하지 않겠다'는 당돌함이 느껴지다니. 그 소년의 눈빛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분명 작가의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의 거침없는 도전에도 불구하고 정작 삶 안에서는 사랑이나 가족, 죽음과 같은 주제들을 정복하지 못하고 그로부터 전혀 자유롭지도 못했다고 하니 그림이 강렬한 만큼 더 슬프고 착잡한 것도 같았다.
어린 시절엔 에곤 쉴레의 거칠고 강렬한 표현들에 심장이 뛰었었는데 지금은 그 모든 주제를 겸허히, 담담히, 그러나 여전히 역동적으로 고뇌하는 클림트의 어른스러움이 더 진하게 다가오는 것을 보니 어느새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도전보다 더 어려운 일은 인정과 수용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의 그림을 보고 나온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가 잠시 살았다는 집들의 주변만 서성거려도 괜찮았고, 그 풍경이 그들이 떠올렸을 영감을 상상하기엔 너무나 도시적이 되어버렸대도 괜찮았다. 날이 저물어 프로이트 박물관에 들르지 못했어도 나는 그저 행복했다.
빈은 나에게 클림트와 쉴레로 꽉 채워진 도시였다.


소년.JPG Portrait of Herbert Rainer. Egon Schiele. 1910.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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