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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ul 20. 2020

부부싸움을 밤에 해야 하는 이유

그저께는 영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의 눈을 보면 내 모든 서러움과 서운함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내 모든 감정의 이름과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정리되지 않은 채 벌려 놓으면 다시 주워 담다가 나도 그도 지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저 눈만 마주치지 않은 채 똑같은 일상을 살았다. 눈만 마주치지 않고 밥을 먹었고 그릇을 정리했고 간단한 대화도 나누었다. 눈만 마주치지 않고 상처 난 그의 발에 약을 발라주었고 같은 이불을 덮었다.

 아침이 되었고 다행히 새로운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기분이 보충되었다.

 “오늘 저녁에 김치찌개 해 먹을까?”

 눈 뜨고 가장 먼저 했던 말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우리 마주 앉아 네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자는 것이었다. 재료를 준비하는 동안, 음식을 만드는 동안,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한 두 시간 정도) 어제의 소란스러웠던 마음을 정리했다. 맛있는 음식에, 맛있게 먹는 모습에 네거티브에서 제로가 되었던 감정선이 포지티브로 오르기 시작했다. 설거지는 미뤘다. 내일 치울 때 괴롭지 않을 만큼만 아주 적당하게 물에 담가 두었다.

 지난 며칠간 내 기분을 헤아려 줄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분주했던 그와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이제는 차곡차곡 정리를 마쳤기에 차례대로 깔끔하게 꺼낼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며칠을 참았던 나 자신이 기특했고 그도 기특하다 여길 줄 알았다.

 “나는 너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이지?”
 반강제였지만 진심이리라 확신하는 긍정의 대답을 얻어내고 첫째는, 둘째는, 하면서 내가 왜 너를 쳐다볼 수 없었는지를, 왜 너의 말과 행동이 소화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했다.

 그랬냐, 힘들었겠다, 미안하다 같은 말을 들으면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겠지만 내 말을 들은 영은 한동안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 말도 없어서 내가 말하는데 자는 거냐며 버럭 하려는데 그가 입을 뗐다. 차라리 잠들었으면 더 나았을까. 그는 그건 이래서였고, 이건 저래서였다는 설명을 이어갔다. 거기에 반박, 그 반박에 또 반박, 그렇게 반대의 말을 쌓아가다가 잠이 달아났고 결국 다시 등 돌려 누웠다. 오늘은 일단 자자, 휴전을 선언했다.

 아침이 되었고 평소보다 더 많이 잔 탓인지 새로운 하루를 꽤 너그럽게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오늘은 자주 가는 카페의 쿠폰 스탬프를 다 찍었으니 공짜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어제 남은 김치찌개에 라면 사리까지 넣어서 어제보다 더 맛있게 먹었다. 어제까지의 문제는 이제 문제가 아니었고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다짐했다.

 (나라는) 사람이 하루만 살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루를 매일 살 수 있어서, 내일을 다시 살 수 있어서. 오늘 밤 자고 나면 내일 아침 다시 새로운 기분이 태어나는 그 신비가 나에게 소중하다. 새 마음으로 새 하루를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마운 이유는 등 돌려보니 내 뒤통수를 보고 모로 누워있던 사람의 여전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주기 때문인지도.

또 같은 문제로 넘어지고 다시 부딪쳐도 괜찮을 기분이다. 우리에겐 밤이 있고 다시 아침이 있으니까.

어느 날의 밤과 아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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