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마녀의 테마에세이
그러니까 이 사진이 의미하는 게 뭐냐 하면.
내가 만약 벨기에 식민 치하에서의 콩고 땅에서 태어났다면 대여섯 살도 안 되어서 고무 카카오 할당량을 못 채웠다고 손발이 잘려 죽었을 거고, 어린 딸을 잃은 내 아버지는 잘려진 내 손과 발을 이렇게 내려다봤을 거다 뭐 이런 얘기. 이렇게 죽은 콩고인이 무려 천만명으로(천 명 만 명 아니고 천만명 콩고 전체) 추정된다는데.
자, 죽은 “나”(5-7세 추정 콩고 소녀)의 시점에서 해볼 만한 생각들.
1. 내가 이렇게 죽으려고 태어났나.
2. 왜 가해자는 끝까지 가해자이고 피해자는 끝까지 피해자여야 하는가.
3. 돈과 악행에는 정말로 댓가가 없나. 공소시효만 있나.
공소시효 끝나면 없던 일이 되는 건가.
4. 벨기에 초콜렛 (프랄린 고디바) 맛있게 먹을 때 내 얘기 알고 먹는 걸까.
등등.
#끝없는분노 #역사의공소시효 #악행의댓가
자, 광복절이 다음 주니까. 얘기 좀 해 보자.
같은 말 쓰는 한민족을 이념 프레임으로 둘로 갈라놓고 외세의 권력에 편승해 잘먹고 잘산 사람들 말고, 우리 얘기. 존함도 다 못 외우는 순국선열들의 희생에 빨대 꽂아서 어쨌든 손발목 안 잘려도 되는 나라에서 밤잠 편하게 자는 우리들 얘기. 우리는 순국선열들의 희생에 아닌 말로 “빨대 꽂아서” 어쨌든 덕분에 편히 사는데, 세상에 공짜가 있다 없다? 은행에서 돈 빌려 봤으면 알 거잖아. 얼마나 야무지게 따박따박 이자 챙겨가는지. 하물며 은행빚도 그런데, 순국선열들의 희생으로 팔자 편하게 살면서 이자 플러스 원금상환 독촉받는 그 날이 안 올 거라 생각했다면? #너희가중국을믿느냐 #너희가일본을믿느냐 #너희가자본주의를믿느냐 #너희가공산주의를믿느냐
그러니까, 보통 빚 못 갚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게 일상인 세상에서, 그 극단적인 선택의 일환으로 우리 세대는 미래의 학도병, 미래의 성노예, 미래의 손발잘릴 노동자를 양산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고. 민족반역자들이나 그들의 후손에 대해 딱히 거론하지 않는 건, 그들도 인간일진대, 능히 천지신명도 집어삼킬 자본주의의 마수가 그들을 비껴가는 것도 한계는 있을 듯하여. 언제나 빚독촉 청구서는 가장 방심한 순간에 도착하는 법. 방심하고 있다보면 권력에 취해 있다보면 청구서는 도착하겠지.
사람은 죄를 잊어도 하늘은 벌을 잊는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