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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Nov 24. 2024

119. 마비키. 에슈티케. 순수한 본질의 파멸.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마비키. 에슈티케. 순수한 존재는 스스로 죽지 않는다.

(경고: 이 글은 소설 원작의 영화 <사탄 탱고>의 스포를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은 소설 <사탄 탱고>의 파트 5 <실타래가 풀리다> 편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다

일본 에도 시대에 극빈자들, 특히 영주들로부터 가혹한 수탈을 당하는 농민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를 밤에 목졸라 죽이는 이른바 “마비키”가 성행했다. 본래 “솎아낸다”는 뜻을 가진 이 마비키는 일본만의 끔찍한 풍속이었던 게 아니라 미국 남부의 흑인 노예들 사이에서도 횡행했던 관습이다. 끔찍한 수탈로 인한 가난에 시달리며 사람이 가축이어야 하는 지옥 같은 현실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부른 참사다.

살아있는 건 몸뚱아리 뿐이다. 이미 혼은 살해당했다. 이제 순수한 자신의 본질을 잃은 그녀에게 남은 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의지 그것뿐이다.

<사탄 탱고>에서 극단적인 가난과 정서적 학대에 노출된 에슈티케는 단지 순진할 뿐 모자란 아이는 아니다. 산타클로스를 믿는다 해서 그 아이를 저능아 취급할 수 없다면 오빠에게 사기당해 돈을 잃는 소녀를 바보 취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받는 학대를 고양이에게 옮기다가 결국 고양이를 죽여버린 후 자신이 사기당한 사실을 깨달은 에슈티케는 마을의 술집에서 사탄탱고를 목격하며 현실을 깨닫는다. 그 시점에서 그녀는 자신의 본질이었던 순수함을 상실한다. 에슈티케가 저능아가 아니라는 사실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진짜 저능아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는 판단을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능력이 없다. 에슈티케는 열 살이 넘은 시점에서 희망없는 현실과 이기적인 가족 특히 엄마와 오빠에 의해 정신적인 “마비키”를 당했다. 그 결과 그녀는 일차적으로 살해당해 순수성을 박탈당한 상태로 각성한다. 순수한 존재가 자신의 본질이었던 순수성을 잃은 후 남은 것은 소멸 즉 죽음뿐이다. 그렇게 해서 일차적으로 정신적인 마비키에 의해 살해당한 소녀는 고양이를 죽이느라 쓰고 남은 쥐약을 먹고 자살한다. 이것은 흑인 노예들이 치사량의 아편을 먹여 갓난아기들을 죽인 것과 같은 방식이다. 에슈티케의 죽음은 세상의 본질을  각성한 후 파괴당한 순수성의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점에서 자살이지만, 그 이전에 그 자살을 야기한 원인,  즉 현실에 의해 이미 ‘마비키’와 다름없는 무자비한 사회적 타살이 있었음을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에슈티케가 자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더 이상 순수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존재들은 언제나 살해당할 뿐 스스로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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