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율 Feb 16. 2022

2화_마침내 찾아낸 나의 악기

비로소 찾아낸 느린 평온과 나아가는 재미를 주는 반려 악기

 어릴 때는 피아노가 너무 싫었다.

선생님이 자로 손등을 탁탁 치는 것도 너무 싫었고, 도에서 도까지 안닿는 내 작은 손이 싫었고,

그 손가락으로 치는 모든 곡이 형편없게 들리는 것도 싫었다.

초등학생 때는 교회에서 반주를 했는데, 일요일 아침만 되면 자주 아프다고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을 하는 내 자신도 싫었다.

(그렇게 신심도 잃었고....ㅎㅎ)

이야기가 없어보이는 가사 없는 클래식도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피아노 뚜껑은 닫힌 채로 십여년간 열리지 않다가 이름모르는 사람에게 헐값에 팔렸다.


 그때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클래식 듣는것을 좋아한다.

이 세계를 몰랐을 시절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수백년전 죽고 사라졌지만, 오로지 악보로 남아 광휘를 뿜어내는 위대한 작곡가들에게 매번 진심으로 감탄한다. 악기들의 세계에 깊고 품위있는 기쁨이 있다는 것도 안다. 기초적인 교육덕에 아직까지도 나는 악보를 읽을 수가 있고,

내게 주어졌던 배움의 기회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다. 말이 없는 음악의 세계는 앞으로 평생의 친구로 삼는다.


세상에는 말하지 않음으로서, 말하지 않아야만 말할 수 있는 크고 넓은 이야기가 아주 많아서,

그 음악은 국경도 넘고 시간도 거스른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시간을 견뎌낸 것들이 주는 깊은 위로와 격려를 언제나 온몸으로 껴안을 준비가 되어있다.

그런것을 음악으로부터 배웠다.


이런 어른이 된 내가 왜 어릴 때는 저렇게까지 악기를 싫어했을까?


우선 나는 그 악기가 내 몸으로 감당안되는 종류의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도에서 도에서 닿지 않는 유독 작은 손을 지녔는데, 이런 손으로는 자연스럽게 옥타브를 오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못하는 음악, 좋지 않은 음악을 계속해서 지속할만큼의 아마추어쉽도 그 나이 욕심많은 어린이에게는 없었다.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피아노 음악을 몹시 사랑하지만, 내가 선택한 반려악기는 플룻이다.

내 덩치도 충분히 감당 가능하고, 메고 다녀도 어깨가 아프지 않다.


나는 이 악기에게 압도되지 않는다.



물론 다른 문제가 있었다. 관악기를 불기에 내 폐활량은 형편이 없었다.

작은 손은 어떤 악기에도 유리한 신체적 특징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 내게는 잘하지 않는 것을 지속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


어른이 되어 찾은 ‘애호가’ 라는 포지션은 잘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그렇다. 나는 자랐다. 그러고보면 나이가 든다는건 가끔은 편안하고 평온한 일인거같아.)


비로소 찾은 이 느린 평온과 나아가는 재미를 주는 악기,

나는 내가 찾아낸 이 악기가 몹시 사랑스럽고 만족스럽다. 조급해 하지 않고 오늘도 삑사리를 내며 연습한다.

어차피 나는 아마추어이고, 다른 사람과 레이스를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저 숨을 불어 소리를 낸다.

그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여기 내가 살아서 숨을 쉬는데, 그 호흡이 소리가 되고 음악까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아주 크게 기쁘다.

숨 쉬는 일을 크게 감각할 수 있어 새롭다.


당신도 그런 악기를 찾기를 바란다고,

곁에 그런 물건들을 들고 앞으로의 계절을 걸어보기 바란다고,

그래서 내가 느낀 근사하고 고요한 기쁨을 함께 느꼈으면 한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1화_ 내 몫의 밥 값으로 살 수 있었던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