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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Oct 11. 2020

거늬의 모험

2020학년도 후평중학교 2-5반 릴레이 소설

지금부터 우리 반 학생들이 참여한 릴레이 소설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본 소설은 코로나 19로 인해 축제를 할 수 없게 된 본교 학생안전부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아무거나 챌린지'의 일환으로 탄생된 작품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릴레이 소설의 틀만 가져와 가볍게 시작한 활동이었지만, 서사를 발전시키고 진행하기 위해 담임인 내가 깊게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주어진 소재에 곁가지를 붙이는 것은 곧잘 했지만(이를테면 발목을 다친 주인공의 다른 신체부위를 추가적으로 부러뜨린다거나), 새로운 플롯을 도입하여 이야기에 새로운 분기점과 활력을 불어넣는 일에 있어서는 어려움을 보였다. 결국 10명 정도 진행해 본 결과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아이들에게는 이야기의 커다란 전개 방향 정도와 넣고 싶은 디테일만 제시하게 하고, 나는 아이들의 전개 방식을 따르되 새로운 소재나 모티프를 계속해서 집어넣어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형성하도록 유도했다. 아이들이 예상과는 다르게 지침을 주어서 난감할 때가 많았지만, 어떻게든 스토리의 결말을 아름답게(?) 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아래와 같다. 여학생들의 흥미를 위해 실제 아이돌의 사례를 끌어와 픽션으로 가공하였으며, 남학생들의 흥미를 위해 판타지적 요소와 운동부 학생들이 많은 학교의 특성을 적절히 혼합하였다. 나는 특정 아이돌에 대한 호오나 편견을 유도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재미로 봐주셨으면 한다.


참여한 아이들의 실명은 초성 처리하였으며,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실제 모델이 된 학생들의 이름을 약간 변형한 것이다. 유명인들의 명칭은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되 악인으로 등장하는 방시혁은 '방쉬혁'으로 개명하였다.


담임

유거늬에게는 남에게는 말 못 할 고민이 하나 있다.


ㅇㄱㅎ

그것은 거늬가 매우 잘 생겼다는 사실이다.


ㅇㅇㅊ

그러던 어느 날 거늬의 코가 갑자기 무럭무럭 자라더니 30cm까지 길어졌다.


ㅇㅌㅇ

그 이유는 거늬가 거짓말을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해왔던 것이다.


ㅇㅂㅁ

결국 거짓말이 들통난 거늬는 선생님에게 불려 가서 혼이 났다.


ㅇㅅㅎ

혼쭐이 나서 슬퍼진 거늬는 집으로 돌아가 하루 종일 재존이와 함께 롤을 했다.


ㅇㅅㅁ

롤을 실컷 하고 더 할 것이 없어진 거늬는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ㅇㅎㅇ

방탄소년단의 DNA 뮤직비디오를 본 거늬는 춤이 너무 멋있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ㅇㄱㅇ

춤을 따라 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거늬는 DNA 춤 영상을 보고 따라서 추다가 넘어져서 발목이 부러졌다.


ㅇㄹㅇ

발목이 부러진 거늬는 아프다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ㅇㅎㅈ

거늬는 울다 지쳐 과로사하여 저승으로 불려 가 하정우와 주지훈, 김향기와 같이 재판을 하러 가게 되었다.


ㅈㅈㅎ

재판을 받은 거늬는 나태지옥에서 패소해서 형벌로 100년 동안 썩게 되었다.


ㅈㅁㄱ

나태지옥에 갇혀 지낸 지 어언 30년, 갇혀 있느라 흰머리와 흰 수염이 자라난 거늬를 딱하게 여긴 요정이 찾아와서 말했다.


ㅈㅁㅈ

(요정) "안녕, 자칭 잘생긴 친구? 혹시 여기서 나가고 싶니?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여기서 나갈 수 있게 해 줄게."


ㅈㅅㅇ

(유거늬) "훗~ 난 나보다 못생긴 녀석의 말은 듣지 않는다."


ㅊㅅㅎ

요정이 품에서 거울을 하나 꺼내 들어 거늬에게 비춘다.


(요정) "너는 오랫동안 나태지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네가 알던 모습과는 많이 바뀌었어. 네 모습을 보고 뭔가 느끼는 게 없니?


충격을 받은 거늬는 차츰 현실을 받아들인다.


(유거늬) "윽... 오랜 세월 내가 왕자병에 걸려 있던 것이었던가... 반성하고 있으면 나태지옥에서 나를 꺼내 줄 거야?"


ㄱㅎㅅ

요정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거늬를 몰래 나태지옥에서 꺼내 줄 테니 이승에 도착하면 깊은 산속에 살고 있는 드래곤 미뇽 도사를 찾으라고 알려준다.


ㄱㄱㅈ

요정의 손길에 이끌려 나가려는 찰나, 누군가가 거늬의 왼쪽 어깨를 꽉 붙잡는다.


(리쑤현) "날 데려가시게."


고개를 돌린 거늬의 시선은 덩치 좋은 한 사내와 마주한다.


(유거늬) "당신은 누구지?"


(리쑤현) "리쑤현이라고 하오. 당신의 오래된 벗 재존이와 호각을 다투는 유사 씨름선수였지. 그놈과 경기를 치르다 뇌진탕으로 사망했는데 어머님의 말을 안 듣고 불효한 죄로 나태지옥에 떨어졌다오. 당신과 요정의 얘기를 몰래 들었소."


요정이 흘깃 노려본다.


(요정) "이런, 예정에 없던 원 플러스 원이라니. 지옥 탈출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를 텐데요?"


ㄱㅅㅇ

리쑤현은 포효한다.


(리쑤현) "세상 어느 곳도 이 나태지옥보다는 나을 것이오!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리다."


(요정) "음... 내가 드래곤 미뇽도사와 자주 풍류를 즐기는데… 혹시 손가락 게임 알아요?"


(리쑤현) "손가락 게임? 검지 손가락 하나씩 들고 시작해서 상대방의 손가락의 합을 5로 만들어 없애는 게임 말인가?"


(요정) "맞아요. 나는 항상 드래곤 미뇽도사와 그 게임을 하면 매번 진단 말이에요. 나를 대신해 그와 싸워서 이겨주세요. 어때요?"


갑자기 거늬가 끼어든다.


(유거늬) "오오! 나 그거 잘하는데! 형씨, 내가 한 수 가르쳐 줄 테니 우리 함께 하시죠."


리쑤현이 말한다.


(리쑤현)"좋소. 뭐가 되었든 갑시다!"


ㄱㄱㅎ

이승으로 연결된 터널을 빠져나온 일행은 이미 땅거미가 진 어두운 시골길에 도착했다.


(요정) "이 길로 가면 드래곤 미뇽을 만날 수 있어요."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산속으로 들어가던 일행은 별안간 무시무시한 호랑이와 마주하게 된다.


(슈퍼엠) "어흥어흥. 네 녀석들이 유거늬와 리쑤현이냐!"


(유거늬) "아닛~? 호랑이 주제에 말을 다 하다니?"


(슈퍼엠) "물론이지. 내 이름은 슈퍼엠. 드래곤 미뇽 도사님이 구단주로 계시는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에서 파견 나왔다. 우리 드래곤 미뇽 도사님을 이겨먹으려는 속셈은 이미 간파했다!"


(리쑤현) "흥. 호랑이 녀석. 한 판 해볼 텐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덤빌 거냐, 아니면 강력한 로켓펀치로 싸울 테냐?"


(슈퍼엠) "늬들 바보냐? 요즘같이 코로나가 세상을 지배한 2050년에는 그런 미련한 싸움은 안 한다. 세월의 흐름에 맞게 우리 호랑이들도 진화해서 도구를 쓴다고!"


호랑이는 품에서 빅히트라는 로고가 새겨진 다이너마이트를 끄집어낸다.


(슈퍼엠) "우하하! 내가 이 다이너마이트를 네 손가락에 정확히 명중시켜서 너의 손가락 개수를 줄여주마!"


ㄱㄱㅎ

호랑이는 우아한 몸동작으로 재빠르게 리쑤현의 손가락을 겨냥하여 다이너마이트를 던진다. 손 쓸 겨를도 없이 이대로 당하는가 싶은 아찔한 순간의 찰나, 어디선가 강렬한 킥이 꽂히더니 다이너마이트가 저 멀리 하늘 위로 공중부양한다. 그리고 일행 앞으로 너덜너덜해진 KF94 마스크를 착용한 거구의 인물이 등장한다.


(유거늬, 리쑤현) "아니, 너는?"


(재존) "그래 나야, 재존. 오랫만이군! 하지만 지금은 한가로이 인사 따위를 할 때가 아냐!"


(요정) "...인사 할 거 다 해놓고선."


공중에 떠올랐던 다이너마이트는 유도 기능이 있는지 다시 일행을 정확하게 겨냥해 낙하하기 시작한다.


(유거늬) "안되겠어! 너희들만이라도 드래곤 미뇽 도사를 이기러 먼저 가!"


유거늬는 갑자기 희생정신을 발휘해 온 몸으로 다이너마이트를 받아낸다.


펑. 콰앙!


섬광이 사라진 뒤 나머지 일행은 슬며시 눈을 뜬다. 놀랍게도 거늬는 상처하나 입지 않은 채 멀쩡히 살아있었다. 30년동안 목욕을 하지 않은 거늬의 몸에는 때가 축적되어 온 몸에 방탄 기능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절대 네버 방탄소년단은 아니지만 대신 방탄복의 DNA를 얻게 된 것이다.


ㄱㄱㅇ

(요정) "와아~ 나이스 플레이야!"


슈퍼엠은 자신의 계략이 먹히지 않자 혼란스러워한다.


(슈퍼엠) "제 아무리 지옥에서 살아서 돌아왔다고 해도 방어력이 무적이라니... 믿을 수 없군!"


(유거늬) "나에게 이런 힘이 있다니?! 히히... 슈퍼엠. 이제 우리가 반격할 차례다! 재존! 리쑤현! 한 사람씩 내 양팔을 문질러 줘! 호랑이에게 본 '때'를 보여주자고!"


재존이는 거늬의 왼팔, 리쑤현은 오른팔을 잡고 문지르기 시작한다. 거늬의 때가 분말이 되어 흩날리나 싶더니 슈퍼엠의 코와 입을 정확하게 겨냥한다.


(슈퍼엠) "우웃! 웃음이 멈추질 않아! 꺄하하흐하하학! 호랑이 살려! 와하하핫!"


슈퍼엠은 미친 듯이 웃으면서 발작과 함께 뒹군다. 결국 지칠 때까지 웃음을 멈출 수 없던 호랑이는 죽고 만다.


(요정) "예전에 드래곤 미뇽 도사에게 들었어요. 슈퍼엠은 3개의 집념이 한데 모여 호랑이의 형상을 갖추게 된 영물이라고. 충성스러운 부하이지만 가끔 제멋대로라서 힘들다는 얘기를 했었죠. 이제 각 집념이 있어야 할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서 편히 영면하길..."


요정은 요술봉을 휘둘러 슈퍼엠의 시신을 이세계로 수습한다.


(요정) "자, 이제 가요. 이제 아무것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을 거예요."


ㄱㅁㅈ

일행은 오랜 시간을 걷고 또 걸은 끝에 산속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마을을 발견했다. 마을 중심에는 대규모의 축구경기장이 있었고, 사방에는 높다란 신식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어서 낮은 건물을 거의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마을의 규모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최근 자연재해를 입은 듯 축구경기장의 조명과 일부 높은 건물들의 유리창 곳곳이 파손되어 있었다.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재해 현장을 수습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피곤에 찌든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일단 일행은 드래곤 미뇽 도사가 있을 것이라 짐작되는 축구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축구장의 외벽에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에스엠 엔터테인먼트 로고는 직격으로 폭풍을 맞은 듯 네온사인이 반쯤 박살나 있었고, 바로 그곳에 푸르스름한 오라의 기운을 내뿜는 소년이 부지런히 네온사인의 파편을 주워 담고 있었다. 문득, 거늬는 그 소년이 입고 있는 셔츠의 뒷면에 '구단장'이라는 글씨가 쓰여있다는 걸 발견한다.


(유거늬) "요정아, 혹시 저 소년이...?"


(요정) "맞아. 저분이 바로 드래곤 미뇽 도사야."


(재존) "우와... 구단장인데 몸소 피해 복구 현장에 나와서 수습을 한단 말이야? 대단한 걸!"


리쑤현이 말없이 드래곤 미뇽의 손가락이 어떻게 생겼는지 뚫어지게 관찰하고 있는 사이, 유거늬는 침착하게 드래곤 미뇽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다.


ㄱㅇㅅ

(유거늬) "저기... 안녕? 나는 요정의 소개를 받고 이 곳에 온 유거늬라고 해. 네가 드래곤 미뇽 도사니?"


드래곤 미뇽은 일하느라 정신이 없는 듯 간단히 대꾸한다.


(드미뇽) "ㅇㅇ."


유거늬는 성의 없는 드래곤 미뇽의 대꾸에 약간 기분이 상한다.


(유거늬) "주변 상황이 온통 엉망이네. 혹시 네가 그런 거야?"


유거늬의 도발에 드래곤 미뇽은 고개를 들고 유거늬 일행과 시선을 맞춘다.


(드미뇽) "네가 가까이 올 때부터 멍청한 자의 기운을 느꼈는데 역시 예상대로 멍청한 말을 하는군. 나는 절대로 자연과 내가 지은 마을을 해치지 않아. 이 주변은 최근 기상 이변으로 인해 태풍이 연속으로 휩쓸고 지나가서 보다시피 엉망이야. 피해규모가 워낙 커서 나까지 나서서 피해 복구에 앞장서야 한다고. 내가 가장 아끼는 네온사인도 박살이 나서 내가 직접 치우다가 방금 손가락도 크게 다쳤어."


드래곤 미뇽은 이어 리쑤현에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드미뇽) "자네, 아까부터 내 손가락을 유심히 보고 있던데. 혹시 요정의 부탁을 받아 손가락 게임이라도 하러 온 건가? 지금은 상황도 안 좋고 손가락을 다쳐서 별로 게임을 하고픈 기분이 아니야. 안 됐지만 이번에는 그냥 돌아가."


ㄱㅈㅇ

(리쑤현)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나태지옥에서 고통받다가 요정의 도움으로 이승으로 간신히 돌아왔다오. 내겐 어떻게 해서라도 요정의 은혜를 갚아야 할 의무가 있소. 어떻게든 안 되겠소?"


(재존) "나 역시 부탁하오. 사고로 인해 리쑤현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난 뒤에 죄책감으로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았소. 다시 살아서 온 친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뭐든 해 드리리다."


(유거늬) "그래. 상황이 이러니 혹시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 게임은 나중으로 미뤄도 되니 말이야. 그렇지 요정쿤?"


(요정) "흥, 나 남자 아니고 여자거든? ...어쨌든 드래곤 미뇽 도사님. 저는 처음에 가볍게 손가락 게임을 내걸고 이들이 은혜를 갚는 참된 인간인지를 보고자 했어요. 여기까지 오면서 슈퍼엠도 만나고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힘을 합해 서로를 위하는 모습을 보니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히 드래곤 미뇽 도사님께서 이들이 이승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한 속죄의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ㄱㅌㅇ

(드미뇽) "흠... 귀찮은데. 그럼 시간이 많지 않으니 속전속결 단판승부로 간다. 불만 없겠지."


(리쑤현) "좋... 좋아! 한 번 붙어 봅세."


드래곤 미뇽 도사는 손을 합장한 채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운다. 그러자 파편에 찔려서 피가 묻어있던 손가락 주변으로 푸르스름한 오라가 모이더니 이내 놀라운 속도로 손가락을 재생시키기 시작한다. 어느덧 그의 손은 멀쩡한 상태가 되었고 그는 검지 손가락만 남겨둔 채 양손을 가볍게 말아 쥔다.


그것은 실로 치열한 광경이었다. 드래곤 미뇽 도사의 거침 없는 공격에 리쑤현이 조금 밀리는 모양새였지만 리쑤현은 한 손만 남게 되면 끊임없이 분열을 시도하며 생명을 연장해 나갔다. 하지만 손가락 게임의 달인인 드래곤 미뇽 도사는 상대방의 열 수를 미리 내다보는 양 리쑤현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결국 리쑤현은 패배했다.


(리쑤현) "윽...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내가 패배하다니."


다급해진 일행은 서로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드래곤 미뇽 도사에게 아부를 떨기 시작한다.


(유거늬, 특유의 혀 짧은 목소리로) "아잉~~♡ 우리 위대하신 드래곤 미뇽 도사님~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아~"


(재존, 먹을 것을 앞에 둔 강아지의 똘망똘망하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드래곤 미뇽 도사를 쳐다보며) "우리 도사님께서 이 두 녀석을 이승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저 역시 쓸데없는 짓 안 하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리쑤현, 특유의 재존이와의 콤비 연타 플레이로) "그럼 그으러엄~ 우리 드래곤 미뇽 도사님은 마음이 넓으셔서 우리를 이승에 남도록 허락해 주실 거야~"


느글느글하고 닭살스러운 것에 약한 것일까, 아니면 가증스러운 모습에 화가 난 것일까. 드래곤 미뇽 도사는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한다.


(드미뇽)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절대로 나를 상대로 손가락 게임을 이길 수 없지. 요정도 그걸 이미 알고 있음에도 너희들을 시험하기 위해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걸 거야. 그럼 제안을 하나 하지. 유거늬 자네의 머리카락과 수염의 풍채로 보건대 30년 동안 나태지옥에 썩고 있었던 모양이군. 그럼 자네들은 30일 동안 여기에 머무르면서 피해 현장 복구를 돕지 않겠나? 30일이면 30년에 비해서 정말 싸게 먹히는 거라고 생각하네만."


ㄱㅎㅂ

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승에서의 삶을 누릴 수 있게 해 준다는데 망설일 게 무엇이랴. 유거늬 일행은 모두 이에 동의하고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드래곤 미뇽 도사가 지시한 대로 유거늬 일행은 구단 본관 건물 앞에 위치한 도로에 도착했다. 슬쩍 보며 지나갔던 아까와는 달리 현장을 자세히 살펴본 일행은 생각했던 것보다 마을의 피해가 크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곳에는 유소년 축구부원으로 짐작되는 아이들이 작업모를 착용하고 깨진 유리를 치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다칠까 봐 조심하느라 속도가 매우 더뎠다.


(리쑤현) "저런... 저 어린아이들까지 동원해서 일을 해야 하다니. 쯧쯧. 그나저나 아이들이 다칠까 봐 불안한데."


(재존) "혹시 거늬, 자네는 방탄복 DNA를 지니고 있으니까 유리에 베일 염려가 없을 것 같은데 아이들을 도와주는 게 어때?"


(유거늬) "맞아... 다이너마이트도 막았는데 유리 파편쯤에는 끄떡없을 것 같군. (우렁찬 목소리로) 얘들아, 이 형이 도와줄까?"


아이들은 고개를 들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로 수군거린다.


(아이A) "저기... 형이 아니라 할아버지인 것 같은데요... 어쨌든 도와주시면야 저흰 감사하죠."


(유거늬) "앗쿵. 맞다. 내 잃어버린 30년..."


유거늬는 성큼성큼 다가가 맨 손으로 유리를 쓸어 담는다. 아무렇지 않게 찰흙처럼 유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음에도 전혀 다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리쑤현) "우리도 도와줄 곳을 찾아볼까?"


리쑤현과 재존은 도로 너머에 강둑의 물이 불어나 잠길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다리를 발견한다. 그곳 역시 어린아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매서운 폭풍이 다리의 아치형 와이어에 손상을 가해 자칫하면 다리의 지지기반이 약해질 수도 있는 위기였다.


(재존) "아니, 왜 여기는 아이들밖에 없는 거야? 리쑤현, 내가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서 망가진 부분을 손 좀 볼 테니 자네는 아래에서 와이어가 풀리지 않도록 꼭 붙들어 주시게."


(리쑤현) "유사 씨름선수에게 뭔가를 꽉 붙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 맡겨달라고!"


유거늬 일행의 활약 덕분에 마을은 조금이나마 더 빠르게 복구되어간다. 하루하루가 고된 노동이었지만 일행은 보람된 일을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으며 작업에 임했다. 댕청미 넘치는 유거늬는 마을의 아이들을 보며 그저 아이들의 젊음이 부럽다고만 생각했지만, 리쑤현과 재존은 이 마을에 구단장인 드래곤 미뇽 도사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어린 소년소녀 밖에 없다는 것에 의문이 생겼다.


ㄴㄷㅇ

하지만 이 곳의 일상이 워낙 바쁜데다 불필요한 행동으로 드래곤 미뇽 도사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리쑤현과 재존은 일단 호기심을 억누르고 함구한다.


시간이 흘러 29일째 오후가 되었고, 이제는 괜찮겠다 싶었던 리쑤현과 재존은 함께 일하고 있는 한 무리의 아이들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리쑤현, 재존) "얘들아, 이 마을은 아무리 봐도 너희들 또래밖에 없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그러자 아이들이 대답한다.


(아이 A) "그게... 이야기하자면 조금 길어요. 30년 전에 코로나와 함께 유명세를 떨쳤던 방탄소년단 기억하시죠?"


(재존) "알다마다. 중학생 때 반 여자애들 몇 명이 광적인 아미였지."


(아이 B) "그럼 2020년 이후로 방탄소년단이 군 복무를 위해 돌연 자취를 감추었던 것도 기억하실 테지요."


(리쑤현) "아미들이 몇 날 며칠을 울고불고 난리였지. 지금도 그 땔 생각 하면 아직도 내 귀청이 얼얼한 것 같아."


(아이 A) "대중들은 방탄소년단은 군 복무를 위해 사라졌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세상을 정복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가담하기 위해 사라졌던 거였어요. 빅히트의 수장인 방쉬혁은 군수업체를 하나 둘 인수하여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한 살상 무기를 대량으로 보유하기 시작했고 올해에는 그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악마와의 계약거래에 성공했답니다.


(리쑤현, 재존) "뭐, 뭣이라?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있단 말인가!"


(아이 B) "악마와의 계약을 따낸 방쉬혁은 절대성형술을 손에 넣었어요. 그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미모를 저세상 어나더 레벨로 만들었지요. 멤버들은 너무 눈이 부실 정도의 미모를 지녀서 그 휘황찬란한 밝기가 세상에 서너 개의 태양이 동시에 뜬 것과 같은 위력을 갖게 되었지요. 결국 예측 불가능한 기상 이변이 초래되었고 방쉬혁은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오랜 라이벌이자 철천지 원수였던 우리 드래곤 미뇽 도사님에게 기상이변을 매개로 한 초대형 태풍을 여러 개 보냈어요.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


(아이 A) "우리 마을 사람들은 손흥민의 기상을 이어받은 선택받은 자손들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없는 마력을 지니고 있어요. 예상에 없었던 초대형 태풍이 여러 개가 불어닥치자 저희들은 지하 대피소로 대피하고 드래곤 미뇽 도사님과 어른들은 지상에 남아 이 마을을 지키기 위한 결계를 쳤지요. 하지만 태풍의 힘이 워낙 강력하여 어른들은 전부 사망하고, 우리 마을을 이끄는 드래곤 미뇽 도사님마저 마력을 거의 소모하여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퇴행한 채로 겨우 살아남으셨답니다.

(*TMI: 손흥민은 강원도 춘천시 출신으로 유년시절 초등학교 졸업 후 후평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아이 B) "드래곤 미뇽 도사님이 계셨기에 그나마 마을이 이 정도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거지, 그분이 아니셨다면 우리들도 우리 마을도 전부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거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유거늬) "흐흑... 그런 거였구나. 너희들... 참 많이 힘들었지? 흐엉엉. 내가 더 도울 수 있는 게 없을까?"


리쑤현과 재존이는 유거늬의 오지랖에 일을 더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심장이 콩닥콩닥 쫄깃해지기 시작한다. 그때, 묵묵히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드래곤 미뇽 도사가 슬쩍 나타나서 말을 한다.


(드미뇽) "유거늬,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기는 하지."


(유거늬) "미뇽 도사! 그게 뭔데? 제발 알려줘. 뭐든지 할 테니까."


드래곤 미뇽 도사는 깊이 한숨을 내쉰다.


(드미뇽) "자네의 사인(죽음의 원인)은 DNA를 추다가 발목이 부러졌고, 그로 인한 피로 누적으로 인한 과로사였지. 지금까지 자네를 굳건히 지켜준 방탄복에 준하는 때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DNA를 추다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라네. 자네보다 더 오랫동안 지옥에 갇혀 있었던 이들도 자네와 같은 방어력이 생기는 것이 결코 아니라네.


(유거늬) "내 방탄복 스킬이... DNA를 추다가 사망하였기 때문이라니..."


ㅁㅅㅎ

(드미뇽) "지금까지는 그 방탄복 스킬이 자네를 구해준 은인이었지만, 그 말은 자네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방쉬혁의 꼭두각시이기도 하다는 것이지. 다시 말해... 자네는 우리의 희망이라네!"


역설적인 드래곤 미뇽 도사의 화법에 일행은 약간 떨떠름해한다.

(요정) "드... 드래곤 미뇽 도사님?"


(리쑤현) "미 도사. 방금 당신은 유거늬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꼭두각시라고 했잖소. 거늬가 당신의 철천지 원수와 한 패라면 그를 제거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째서...?"


(드미뇽) "처음 유거늬를 보았을 때 나는 그의 멍청한 기운에 심한 불호를 느꼈네. 그래서 30일간의 유예를 통해 기회를 주기는 했지만 여차하면 남들이 모르는 사이에 제거해 버릴 수도 있었어. 하지만 나는 보았다네. 유거늬의 멍청할 정도의 순수함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마음씨는 이전의 왕자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한 것이라네. 그래서 나는 유거늬를 없애는 대신 우리 팀의 스파이로서 활약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어. 이제 이해가 되셨는지?"


(재존) "하긴... 우리도 유거늬와 의형제를 맺게 된 과정도 그와 똑같았지요. 우하하!"


(유거늬) "아앗 뻘쭘 머쓱! (부리부리한 눈을 번쩍이며) 그럼 미뇽 도사.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드래곤 미뇽 도사는 마을 뒤편에 우뚝 솟은 높은 산을 가리킨다.


(드미뇽) "저기 저 산이 보이는가? 저 산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는 후평봉이라고 불리는 곳이라네. 후평봉은 자신과 같은 파동을 지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지. 우리가 이 곳에 터를 잡은 것도 전국 곳곳에 흩어진 손흥민의 선택받은 자손들을 찾아내 소통하고 그들을 모으기 위해서였다네. 자네는 빅히트의 파동을 지녔기 때문에 파동을 다루는 수련을 거친다면 분명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 거야."


(유거늬) "그렇군. 그런데 방금 수련이라고 말한 것 같은 데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지?"


(드미뇽) "자네는 아직 방탄복 스킬을 제외하면 그냥 코가 기다란 괴상한 노인일 뿐이라네. 나의 밑에서 일정 기간 수련을 거처야만 네가 원하는 대로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거야."


(유거늬) "좋아, 나는 남겠어. 잘 부탁해, 미뇽 도사!"


(요정) "드래곤 미뇽 도사님, 이 두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드미뇽) "리쑤현, 재존 자네는 다음 날 자정이 되면 이 곳에서의 노동 의무가 끝나네. 별 문제가 없으면 나는 자네들을 이승에 머무르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할 생각이라네. 이제 어떻게 할지는 자네들 손에 달렸어."


ㅅㅈㅈ

(재존) "그렇다면 우리도 거늬의 곁을 지키며 마을의 재건이 끝날 때까지 이 곳에 남아서 힘껏 돕겠소. 다만..."


(드미뇽) "다만?"


(재존, 군침을 다시며) "야식으로 치킨을 대접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리쑤현) "치~이~키~인! 지옥에 떨어진 이후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소. 자네의 말을 들으니 내 군침이 싹 동하는 구려. 치킨을 먹으면 몇 십배는 더 힘낼 수 있을 것 같소. 가능하오?"


(드미뇽) "허허허... 씨름선수들 치고는 소원이 소박하구려. 좋소, 내 약속해 드리리다. 그리고 마을이 안정을 되찾으면 축구뿐만 아니라 자네들과 같은 씨름선수들도 육성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도록 하지."


(요정) "이 사람들을 여기에 데리고 온 보람이 있네요. 저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드미뇽) "자네는 후평봉의 생태계를 돌보아 주시게. 이번 태풍으로 인해 많은 아름드리나무들이 뿌리째 뽑혔어. 파장이 더욱 잘 퍼질 수 있도록 자네가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게나."


(요정) "네, 맡겨만 주세요."


약속한 30일이 지났지만 유거늬 일행은 여전히 에스엠 엔터테인먼트 마을에 남아 각자가 맡은 일들을 해나간다. 유거늬는 매일 아침 일찍 기상하여 요정과 드래곤 미뇽 도사와 함께 후평봉에 올라가 도사의 호된 가르침 아래 기운을 모으고 파장을 보내는 수련을 하였다. 고된 훈련이었지만 태어난 이래 가장 뚜렷한 삶의 명분을 얻은 거늬는 좀처럼 지치는 기색이 없이 수련에 임했고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리쑤현과 재존 역시 낮에는 마을의 재건을 위해 낮에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후에 어김없이 치킨을 뜯으며 흡족해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유거늬는 드디어 파장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로 쏘아 보낼 수 있을 만큼의 기운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ㅇㅁㅇ

(드미뇽) "요정, 준비는 다 되었는가?"


(요정) "네 도사님. 삼림 복원 작업이 이제 막 끝나서 정상적으로 파장을 쏘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미뇽) "알았네. 유거늬. 파장에 어떤 메시지를 담아 보낼지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겠지?"


(유거늬) "물론이지. 그럼 이제 한 번 해 보자고!"


(리쑤현, 재존) "거늬, 자네만 믿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혼쭐내고 세상에 찾아온 기후위기에 평안을 찾아 주게나!"


(유거늬,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아아아아아압!"


유거늬는 가슴이 활 모양이 될 정도까지 고개를 뒤로 힘껏 젖히더니 반동을 이용하여 두 팔을 위로 튕기어 나란히 내민다. 양 손바닥에는 거무튀튀한 때 같은 색깔의 기운이 구체를 이루어 모이더니 이윽고 바위 덩어리처럼 커다랗게 부풀어 총알처럼 튕겨나가더니 어느 시점엔가 종적도 없이 사라진다.


(유거늬) "서, 성공한 건가?"


잠시 후, 상공에서 여성 목소리의 기계음이 울려 퍼진다.


(기계음) "Nuclear Launch Detected(핵무기 발사 감지됨). 1 Hour Left(1시간 남음). "


(드미뇽) "이... 이럴 수가! 우리는 그저 안부만 물었을 뿐인데! 어떻게 일언반구도 없이 최종병기를 꺼내 들 수 있는 거지? 이봐, 유거늬! 뭐라고 메시지를 보낸 거야?"


(유거늬) "어? 미뇽 도사가 시키는 대로 했어... 단지 맨 끝에 나도 빅히트의 일원이라면 나에게도 절대성형술을 시켜달라고 아주 조금 소망을 보탰을 뿐이야."


(드미뇽, 들고 있던 지팡이를 내던지고 괴로운 듯이 얼굴을 감싸 쥐며) "망했군... 이젠 우린 틀렸어."


(리쑤현, 재존) "안 돼!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거늘... 아직 포기하지 마시오 미 도사! 분명 방법이 있을 게야!"


(요정) "도사님! 후평봉 뒤에 있는 온천의 포털을 개방해요! 거기에 핵미사일을 유도시킬 수 있다면 역으로 빅히트의 본진에 미사일을 투하할 수 있을 거예요!"


(드미뇽) "포털? 거기는 우리 선조들이 마지막으로 '100'년 전에 사용한 이후로 사용한 적이 없는 곳이야! 나도 아주 어릴 적에 어르신들의 경험담을 통해 듣기만 했을 뿐 실제로 사용한 적이 없단 말일세!"


(유거늬) "미뇽 도사! 미안해. 어떻게든 도울 테니 방법을 떠올려 봐!"


(드미뇽) "그때 선조들은 주문으로 어떤 노래의 후렴구를 흥얼거려서 포털을 개방한다고 했어. 그런데 그 노래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단 말일세!"


(리쑤현, 재존) "일단 온천으로 다들 가 봅세!"


일행은 황급히 온천에 도달한다. 으리으리한 규모에 절경의 산수를 내다볼 수 있는 아름다운 온천이지만, 지금의 일행에게는 그런 운치를 감상하고 있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일행은 도달하자마자 다시 한번 상공에 울려 퍼지는 기계음과 마주하게 된다.


(기계음) "Nuclear Launch Detected. 15 Minutes Left(15분 남음)."


(유거늬) "자... 침착. 침착해요 모두들! 미뇽 도사, 여기에 주문이 무언지 알 수 있는 숨겨진 미스터리 같은 건 없어?"


(드미뇽) "글쎄...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온천 입구에 새겨진 문양이 전부일세."


일행의 시선은 온천 입구의 벽면에 음각과 양각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문양을 쳐다본다. 거기에는 우람한 덩치의 호랑이가 포효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요정) "이 호랑이... 설마 슈퍼엠 아닌가요?"


(드미뇽) "음? 그럴 수도 있겠다마는... 우리 에스엠 엔터테인먼트 마을에 살았던 호랑이가 꼭 슈퍼엠 녀석만 있던 건 아니라서."


(리쑤현) "미 도사. 그럼 여기 아래 새겨져 있는 작대기와 동그라미는 뭐요?"


호랑이 조각 아래로는 세로로 그어진 작대기 하나와 동그란 원 2개가 연이어 새겨져 있다.


(재존) "그냥 봤을 때는 숫자 100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드미뇽) "숫자 100... 100? 맞아! 이건 선조들이 슈퍼엠과 사냥 몰이 할 때 불렀다던 슈퍼엠의 100이란 노래야! 요정! 이 노래의 후렴구를 검색해 봐!"


(요정) "아앗... 넵!"


요정은 요술봉을 휘둘러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우더니 '슈퍼엠 100'이라고 입력한다.


(홀로그램)

We go 100!

We go 100!

We go, we go, we go, we go

We go 100!

Can’t slow down, can’t slow down,

We go 100!

We going all out

We go, we go, we go, we go


(요정) "이거예요! 드래곤 미뇽 도사님과 거늬는 함께 힘을 합해 파장을 끌어모아 포털을 개방하고 우리는 모두 후렴구를 함께 외쳐서 포털의 효력을 유지되도록 돕는 거예요!"


지체할 겨를 없이 일행은 자리를 잡은 뒤 일제히 슈퍼엠의 사냥 몰이 노래인 '100'의 후렴구를 외치기 시작한다. 이윽고 온천의 바위들이 서서히 움직이며 뒤섞이기 시작하더니 온천 상공의 중앙에 자그마한 포털이 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포털은 금방 그 크기가 커지지 않고 아주 서서히 크기가 늘어났다. 이대로라면 빅히트의 핵무기 미사일을 제 때 삼킬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유거늬는 제 때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목소리의 크기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왼팔을 살짝 온천물에 담갔다 빼낸 다음 오른손으로 맹렬하게 문지르기 시작한다. 왼팔에서 때의 국수가 뽑아져 나오는가 싶더니 놀랍게도 때의 국수 한 가닥 한 가닥이 서서히 불어나 유거늬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상황의 다급함이 유거늬를 본능적으로 분신술을 터득하게 만든 것이다. 떼로 모인 유거늬의 분신들은 힘을 모아 유거늬와 함께 후렴구를 외쳤다. 포털이 커지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미사일에 필적할 수 있을 정도의 대규모의 크기가 되었다.


(기계음) "Nuclear Launch Detected. 10, 9. 8, 7, 6, 5, 4, 3, 2, 1..."


위우우우우우웅. 슈웁.


소리가 도달하기 이전에 포털 너머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 듯한 쇼크웨이브가 포털 너머로 느껴진다. 폭탄이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향해 터져 버린 것이다. 일행이 황급히 주문을 멈추고 드래곤 미뇽 도사와 유거늬가 고개를 들자, 포털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대기를 심란하게 하는 쇼크웨이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뚝 끊긴다.


담임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건이 있은 날 저녁, 밤하늘에는 기존에 없던 별자리가 생겨났다. 겉보기 등급으로 따지면 기존의 1등급인 별들보다도 수십 배는 밝게 빛나는 7개의 별이 알파벳 'B'의 형상을 이루며 등장한 것이다. 사람들은 방탄소년단이 그들의 전설적인 히트곡 '다이너마이트'의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가사인 'Cos ah ah I'm in the stars tonight'처럼 정말로 전설이 되어서 별이 된 것이라고 추측했다. 악마에 영혼을 판 방쉬혁이 이끄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사라지자 지구에 이상 기후 현상이 관측되지 않았고 30년간 지구를 장악하며 기승을 부렸던 코로나 바이러스도 슬며시 모습을 감추었다.


유거늬와 일행들은 세상을 구하였지만, 마을 사람들 이외에는 그들이 어떤 일을 행하였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리쑤현과 재존은 평범한 삶을 선호했기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했다. 재존은 일상으로 돌아가 씨름감독의 일을 계속했으며 가끔씩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와 교류하며 후진양성에 힘을 썼다. 리쑤현은 지옥에서 살아 돌아와 감격해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세계 일주를 하며 효자 노릇을 했다. 요정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있던 지역이 황폐화된 것을 몹시 안타깝게 여기고는 방사능을 제거하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그리고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한 우리 유거늬는 계속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에 남아 멍청하고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유거늬는 계속 아이들의 젊음을 부러워하는 한편 기다란 코가 여전히 일상에 불편함을 끼치고 있었다. 참다못한 유거늬는 드래곤 미뇽 도사에게 부탁을 한다.


(유거늬, 어느새 친해진 미뇽 도사에게) "미뇽아, 나 코가 너무 답답해. 너의 도술로 어떻게 줄여줄 수 없는 거야? 나 이제 더 이상 왕자병도 아니란 말이야."


(드미뇽) "코를 줄이고 싶은 건가? 네 코에 걸려있는 저주도 일종의 마력 간섭이기 때문에 네 코를 원래 크기대로 줄이려면 네 몸에 서려 있는 마력을 역순으로 해제해야만 가능해."


(유거늬) "무슨 말이야 그게? 난 어려운 말은 도통 모르겠어."


(드미뇽) "그러니까, 네가 갖고 있는 방탄복의 DNA을 먼저 해제해야 코에 걸린 저주도 풀 수 있단 뜻이야. 방탄복의 DNA를 해제하면 너는 지금까지 익혔던 금강불괴의 방어력과 분신술도 모두 잃게 된단 뜻이지."


(유거늬) "뭐... 뭐라고? 내가 어떻게 얻은 기술인데..."


(드미뇽) "무엇이 너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일지, 한 번 잘 생각해 봐."


유거늬는 며칠 밤낮을 고민한 끝에 결심을 한다.


(유거늬) "미뇽아, 나 결심했어. 내가 가진 마력을 모두 반납할게. 여기에서는 더 이상 내 마력을 쓸 일이 없으니 마력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드미뇽) "그렇군... 그럼 그 뒤로는 어떻게 할 거지?"


(유거늬) "세상으로 돌아가 내가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글로 쓰겠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글로 남겨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세상 사람들이 나태지옥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어."


(드미뇽) "알겠다. 그럼 나를 따라오너라."


드래곤 미뇽 도사와 유거늬는 후평봉을 오른 뒤 슈퍼엠의 온천에 도착한다.


(드미뇽) "이 온천은 네 인생 동안 쌓은 마력과 업보를 씻어낼 수 있는 특효약이지. 네가 저 안에서 바라는 것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목욕을 하면, 네가 원하는 모습과 장소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유거늬) "알겠어. 미뇽,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유거늬는 드미뇽과 함께 악수와 포옹을 나눈 뒤, 온천에 입수한다.


(유거늬) "나는 30년 전으로 젊어지고 싶다... 나는 코가 원래대로 돌아오길 원한다..."


유거늬는 계속 바라는 바를 되뇌면서 목욕을 한다. 그의 머리카락과 수염에 점점 생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몸이 어려지면서 주름이 펴지고 수염이 점점 옅어진다. 그리고 코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목욕을 하다 정신을 잃은 유거늬가 눈을 뜬 곳은 30년 전 자신의 집이었다. 거울을 본 거늬는 정확히 30년 전 모습으로 돌아온 자신의 모습에 관종답게 막춤을 추며 환호성을 지른다.


(유거늬) "참 좋은 삶이었어... 이제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볼까?"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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