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nowlove Oct 13. 2017

#21 불가리아 와인이 맛있다고?

내 생에 잊을 수 없는 와인은 페트병에 담아주던 와인이었다.




11월 2일


소피아에 온지 3일만에 날씨가 맑아졌다.

기분좋게 체크아웃을 하고 리셉션에 짐을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어찌나 가을 햇살이 쨍하게 내려쬐는지. 소피아의 모든 창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우중충한 소피아 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날이 좋아서 그런지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사진에서부터 빛의 환함이 느껴진다. 날이 좋아 걷기가 좋았다. 초겨울의 날씨는 다시 늦가을의 날씨로 돌아왔다.


비토샤 거기를 지나, 법원을 지나면 나무들이 매력적으로 둘러있는 어느 건물이 보인다. 이곳의 나무들은 도심의 나무답지 않게 웅장하고 특이하다.


소피아에서 이스탄불로 다시 돌아가는 날. 이스탄불에서 사기 힘든 것들을 사가지고 가기로 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먹을 수 없는 돼지고기와 찾아보기 힘든 와인! 이스탄불로 돌아가서 숙소에서 구워먹기로 했다! 하하. 처음 이스탄불에 왔을 때 머물었던 숙소에서, 불가리아로 간다고 하니 주인오빠가 소피아에 가면 레이디스 마켓을 가보라고 추천해줬다. 불가리아말로는 '쮠쓰끼바자르'라고 하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된발음을 좋아하나보다.


길을 걷다가 어딘지 모르겠어서 사람들에게 레이디스 마켓을 알려달라고 도움을 청했는데 불가리아 말만 해서.. 그냥 발이 닿는 곳으로 가다보니 눈 앞에 시장이 펼쳐졌다.


지나가다가 보니 오크통에 담긴 와인이 보였다. 세상에, 오크통에서 바로 빼먹는 와인이라니. 너무 내 스타일이다. 불가리아 장난아닌데? 소피아 3일 중 가장 신났던 때이다. 신나는 마음에 1L 짜리 와인 2병이랑 500ml 짜리 와인 1병을 샀다. 시음도 할 수 있어서 시음해보고 괜찮은 것들로 골랐는데.. 뭘 샀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페트병에 담아줬던 기억만 있다. 와인와 페트병이라니... 정말 상상해본적도 없는 조합을 불가리아에서 보았다.  1레바에 700원 정도. 1L는 5레바, 500ml는 3레바. 3병사도 만원이 넘지 않았다.


그리고 신이 나서 시장을 둘러보는데 형형색색의 과일과 야채들이 쭉 늘어져있다. 영어도 통하지 않는 이 나라에서 동양인 여자애 혼자 돌아다니니 사람들이 그렇게 쳐다본다.


시장을 둘러보다가 빵도 팔고, 불가리아 전통음료도 파는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신기한 것들이 많아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2L짜리 페트병에 빨갛고 하얀게 들어있었다. 이건 뭐냐고 물었더니 와인이란다. 세상에. 이 나라는 와인을 다 페트병에 담는구나. 맛있다며 먹어보라고 추천을 한다. 이미 와인을 3병이나 샀는데... 가격이나 물어보자는 마음에 얼마냐고 물었더니...!!!!!! 2.5레바 란다........ 2L와인이 2천원도 안한다. 그 때는 신나는 마음에 2병을 샀다. 어떻게 들고 갈 건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채, 쇼핑을 하다보니 내 손에는 2L와인 2병과 1L와인 2병, 500ml와인 1병이 들려있었다...


터키로 와인을 가져가서 먹어본 결과, 오크통에 든 와인보다 2L 페트병에 든 2.5레바 와인이 정말 맛있었다. 입맛은 다르다지만 내 입맛에는 페트병와인이 최고였다. ㅎㅎ

 

와인을 들고 가다가 너무 힘들어서 카페에 앉았다. 시장에 와서 와인만 잔뜩 사다니. 이번 여행에서 붙여진 별명이 요긴하게 쓰인다. 술애...


카페에서 카푸치노 한 잔을 시켰다. 유럽에서는 카푸치노가 왜 이렇게 맛있는 건지. 한국에서는 아메리카노만 먹는데.. 유럽 우유는 뭔가 다른가.


레이디스 마켓을 나와 호텔로 향했다. 도저히 와인 5병을 들고 돌아다닐 자신이 없었다. 사진을 찍을 여유조차 생기지 않아서 현상을 하고 보니 레이디스 마켓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호텔에 와인까지 맡기고 이번에는 돼지고기를 사러 다시 할리로 갔다. 할리는 시장이라는 뜻 같은데.. 건물안에 있는 시장이다. 할리로 향하던 도중 맞은 편 공원에 미네랄 온천수가 나오는 곳이 있다고 해서 짐이 생기기 전에 가기로 했다.


그냥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공중전화가 반가웠다. 공원에는 늦은 오후의 가을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래전, 우리가 스마트폰을 쓰지 않을 때, 휴대폰을 어른들만 가지고 있었을 때 엄마한테 데리러 오라고 공중전화를 많이 이용했었는데...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소피아는 옛것이 많이 남아있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햇살이 가득 내리는 공원을 등지면 바로 미네랄 온천수가 샘솟는 약수터(?)같은 곳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물을 가득 받고 있었다. 왠지 작년에 같던 '에비앙'이 생각나는 곳이었다. 근데 여기는 온천수가 나오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라 정말 크게 되어있었다. 소피아의 시민들은 다 여기서 물을 떠다 먹나보다. 나도 한 입 먹어 봤는데 음. 잘 모르겠다.


아빠와 함께 물을 뜨던 꼬마아이는 날 보며 계속 싱긋싱긋 웃는다. 그러면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른다. 귀여워 죽겠는데. 웃는 모습은 못찍고 물을 받는 뒷모습만 남겼다. 아빠가 옆에 없어도 혼자 잘해내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하.


사람들의 옷차림은 이미 초겨울이지만, 그 날 따라 빛이 뜨겁게 내렸다. 소피아의 오후, 햇살이 너무 눈부시다. 


이제 더 늦기전에 할리로 가서 돼지고기를 사기로 했다. 이스탄불에서 목살을 구워먹는 상상을 하며 '포크넥' 을 달라고 당당히 말했다. (실제로 목살이 pork neck) 영어를 못하는 아저씨한테 돼지 그림을 보여주며 목을 가리켰다. 하하... 그렇게 포크넥이랑 삼겹살같은 립을 사서 또 호텔로 돌아갔다.


체크아웃 해놓고 계속가 ㅠㅠ 미안해라...  


이제는 짐을 가지고 8시차를 타러 버스터미널로 갔다. 트램타기도, 버스타기도, 지하철타기도 다 귀찮은 마음에 그냥 걸었다. 직진만하면 나오는 것 같아서 끝없이 걸었다. 소피아는 되게 작은 느낌이다. 짐이 많아서 그렇지 금방 걷는다. 



터미널에 와서 8시 차를 타려고 하는데 자리가 없단다... 뭔소리여... 결국 어쩌다보니 더 싼 10시차를 예약했다. 8시차는 50레바, 10시차는 35레바. 35레바 버스회사는 'hunter'


출발시간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근처에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여행사 직원한테 물어보니 오른쪽으로 쭉 가다보면 식당이 있다길래 걸어갔다. 11월의 소피아는 너무 추웠다. 낮에는 날이 좋더니 밤에는 엄청 춥다. 가을 옷만 가지고 왔는데 10월달 여행은 봄,여름,가을,겨울 옷이 다 필요했다. 터키 페티예에서는 여름이었고,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에서는 겨울이었고, 흐바르랑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다시 여름이었다. 추위와 싸우며 걸어가다보니 건너편에 식당하나가 보인다. 감자가.. 엄청 크게 걸려있고.. 통나무로 된 이상한 식당이었다. 들어갔는데 카드가 안 된단다.. 또 한참을 걸어가 돈을 뽑아와서 레바를 다 쓰기위해 이것저것 주문을 했다. 


- 숍스카샐러드

- 머쉬룸포테이토에 치즈

- 크림 싸츠

- 와인 0.25L

- 카푸치노 


한... 2시간30분동안 저걸 다 먹었다. 버스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천천히 많이 먹었다. 내가 얼마나 먹을 수 있을지 시험을 한 건지도 모를 정도로 정말 많이 먹었다. 돼지.. 저렇게 먹고 무려 22레바인가 나왔다. 우리나라 돈으로 15000원 정도. 말이 되나... 저게 15000원이라니... 불가리아 물가가 저렴한건 알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싸다니... 우리나라물가는 진짜 금인가. 파스타 하나만 시켜도 저걸 다 먹은 가격과 같다니. 할말이 없다.


불가리아에 와서 살고 싶었다.


불가리아에서 마지막 저녁을 거하게 먹고 버스타러 룰루랄라 걸어갔다.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무거웠다. 돼지 ㅠㅠ 이번 여행은 먹방여행이었는지 4kg 이나 쪘다...


10시 버스를 탔는데 사람이 3명? 밖에 없었다. 가는 길에 사람을 태우더니 인원이 반정도 찼다. 그래서 승객들은 정말 널널하게 1인2좌석씩 차지하고 누워서 자면서 이스탄불까지 갔다. 히히 메트로는 50레바에 사람 꽉 찼을텐데, hunter는 35레바에 깨끗한 새버스에 널널하게 갔다.


너무 좋았지만... 여전히 야간버스는 힘들었다. 하지만 더 힘든 건 바로 국경이었다. 불가리아에서 터키 국경을 넘는데 무려 2시간이 걸렸다. 정말 끝없는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근데... 짐 x-ray 검사를 한다고 버스기사님이 말해준다... 음...? 돼지고기... 걸리면 어떡하지...? 이슬람 국가에 돼지고기 사가지고 가는 거 걸리면... 나 잡혀갈까...? 혼자 조마조마 했다. 


엇. 걸리지 않고 통과! 이스탄불에서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졌다.  pork neck!!!!!!!!!!!!!!!!!  신나했던 밤이었다. 


내일이면 이스탄불에 도착해있겠지.

다시 터키,

기대된다.




[당신의 순간을 담습니다]


필름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여행한 이야기.

유럽의 여름, 가을, 겨울을 필름으로 담아낸 사진집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필름으로 세상을 담는 것이 즐거웠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했다.

풍경보다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담고 싶었다. 필름은 찍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너무나 달라지는 사진이기에, 여행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겪었던 순간의 감정들을 온전히 담아내려고 했다. 어린 시절 아빠가 찍어주었던 사진처럼, 그리움의 감성이 묻어나는 사진들이 힘든 시간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 알지 못했던 유럽의 매력, 볼 수 없었던 영화같은 순간들, 책에서는 더 많은 필름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 유명해지기 전에 가야 할 여행지, 소피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