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칠마루 May 01. 2024

3. 16개월 걸린 소방설비기사(전기)

2019. 5월 시작 ~ 2020. 9월 끝

소방설비기사 자격증은 기계와 전기 두 종류가 있습니다. 기계는 기계장치와 관련된 유체역학 등 계산문제가 많이 나옵니다. 문과인 내가 유체역학 말만 들었지, 이런 걸 실제로 계산하면서 문제를 풀 줄이야, 내가 기계과 출신도 아니고 힘들었습니다. 22년 필기시험에 붙었지만 실기시험을 준비하다 보니 필기처럼 계산 문제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수학을 싫어하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깔끔하게 포기했습니다.   

   

소방에서는 소방설비기사 전기, 기계 두 개가 있으면 쌍기사라고 부릅니다. 업무능력 향상도 좋지만 내가 보기엔 소방설비기사(기계)는 수학실력 향상엔 확실히 도움이 될 듯 싶었지만 나와는 관련없는 걸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원래는 20년에 합격한 전기에 이어 기계까지 합격해 쌍기사를 한 번 해보고 싶었으나 세상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는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소방설비기사(전기) 시험을 치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는(30%) 일을 하다 보면 새로 생긴 건물에 가서 소방설비가 제대로 완공되어 있는지 확인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관련 분야에 대해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신축건물의 사용승인이 난 후 소방시설을 확인하는 출장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소방펌프의 전원이 꺼져 있거나  펌프의 기동스위치도 AUTO에 있지 않고 수동에 놓여 있는 등 건물주나 관계인이 소방시설에 대해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사용승인이 난 건물은 365일 24시간 소방설비가 작동해야 하는데 건물주 등 관계인은 그것도 모른 채 아직 새 건물이라 부족한 점이 많다며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때 관련 지식을 모르면 건물주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고 그 소방시설은 유사시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게 자명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몇 차례 겪다 보니 자연스레 관련 자격증(소방설비기사)을 따거나 내근 소방특별조사팀에 들어가서 직접 몸으로 겪으며 배우는 방식을 골라야 할 텐데 아무래도 현장근무가 좋았던 는 자격증 취득 공부를 통해 관련 능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골랐습니다.  

   

두 번째 이유(70%)로는 자격증을 따면 승진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유가 내 마음속에서 훨씬 가중치가 높겠네요. 기사자격증 하나에 가산점 0.3점이었습니다. 2019년만 해도 소방위(경위와 같음, 당시 내 계급은 소방장=경찰의 경사) 승진 시험을 치를 생각이라 가산점을 마련하는 데 여유시간을 다 썼습니다. 여기에 쓰지 않겠지만 2019년만 해도 워드프로세서를 따고 그 시험이 끝나자마자 2회 차 소방설비기사(전기) 필기에 응시했습니다. 모든 시험은 가산점을 꽉 채우고 치러야 그게 시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사실 가산점을 꽉 채우고 시험을 치르지 않아 충분히 붙을 수 있는 중요한 시험에 떨어진 경험이 두 번이나 있습니다, 차후 생각나면 글로 남길 수도 있어요).     

 

제가 시험을 준비하는 스타일은 기출문제집과 이론 요약집을 보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공하성의 소방설비기사 필기 기출 7개년을 골랐습니다. 앞부분에 약 100쪽에 걸쳐 이론 요약 부분이 나오고 나머지는 기출 7년 치 문제와 해설이 나와 있습니다. 외울 문제는 머릿속에 구겨 넣고 계산 문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으나 그냥 풀이과정을 보고 따라 했습니다. 문과인 제가 공학용 계산기를 쓰다니, 공부는 필요해서 해야 진짜 공부라는 말이 맞나 봅니다. 소방관인 저와 겹치는 부분(시험과목 4과목 중 2과목이 친숙한 과목-소방원론, 소방관계법규)이 있어서 부담 없이 하루 4시간씩 2주 공부하고 필기는 가뿐하게 붙었습니다.      


원래는 2회 차 필기 붙고 나서 바로 4회 차 실기 시험을 치를 생각이었습니다만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원래 기사 시험은 1, 2, 4회차 1년에 3번만 치릅니다. 코로나 때는 1년에 4번 본 적도 있습니다) 실기 시험공부를 하다보면 답답하니 잠시 쉬게 되고 다시 마음을 잡고 책을 봤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서 또 막히고 험난한 장애물이 곳곳에 널려 있었습니다.


책도 3번이나 바꿨습니다. 2019년 공하성 실기 기출, 2020년 시대고시 실기 기출, 다시 2020년 공하성 실기 기출 이렇게 3권의 책을 샀고 공하성 책으로만 공부했습니다. 당시 소방관 9년 차였지만 배경지식이 없는 부분(전기 기초이론, 시퀀스, 배선도 등)을 그냥 마구잡이로 외우려 하니 진도가 나가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잠시 쉬다 보니 해가 바뀌고 다시 바뀐 해의 절반이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같은 팀에 근무하는 동기(동기랑 같이 근무하기 쉽지 않은데 기사 시험을 준비하며 그 동기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는 소방설비기사(전기)와 소방설비산업기사(기계)를 같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암튼 그 친구 덕에 다시 마음을 잡고 20년 3회 차 실기시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역시 기사 시험의 관건은 실기 시험이었습니다. 필기와는 문제 자체가 달랐습니다. 내겐 너무나도 생소한 전기 기초이론이었던 불대수 정리, 가닥 수 문제, 시퀀스는 거의 컴퓨터활용능력의 엑셀 프로시저나 액세스를 다시 몸에 익히는 과정 같았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책을 던지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숨을 내쉬며 커피 한잔 마시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실기 시험에는 단답형 문제도 나오지만 대부분 배점이 낮았고 가닥수나 시퀀스는 문제 수는 얼마 안 되지만 배점이 높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자칫 시퀀스와 가닥수 문제를 포기하고 단답형만 외우다가는 닭 쫓는 개 지붕 쳐다보는 것처럼 실기 시험에 떨어질 판이었습니다.      


가닥 수 문제 1, 2
논리 회로도, 시퀀스 선 긋는 문제


시퀀스, 전기 기초이론 부분은 동기가 자격증을 준비하다 구매한 인터넷 강의를 그 부분만 발췌해서 들었습니다. 이해가 100%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실기시험 책을 읽으면 어렴풋하게 알아듣는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강의 듣기 전만 해도 검은 것은 글씨요, 하얀 건 종이였는데 이 정도면 많이 좋아졌습니다. 가닥 수 문제는 그냥 문제와 해설을 외웠습니다. 한 문제 보는데 30분이 걸릴 때도 있었습니다. 오늘 봐야 할 범위는 80쪽인데 한 문제에 30분씩 걸릴 때는 답답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단답형은 책을 외우기도 하고 따로 인터넷에서 단답형 문제만 골라놓은 분들의 자료를 받아 외웠습니다. 혹시 모르니 단답형도, 배점이 높은 가닥수와 시퀀스 문제도 놓칠 수 없었습니다. 기출문제 10년치를 외우는 실기시험 준비과정은 나와의 인내력 싸움이었습니다.      


그렇게 1달 반을 공부하고 실기 시험을 치르는 날, 단답형 문제 비중은 40%, 나머지는 가닥 수, 시퀀스, 불대수 정리, 계산 문제, 논리 회로 그리기 등 여러 가지가 나왔습니다. 나름 준비한 것, 생각나는 걸 모조리 쓰고 나왔습니다. 시험지를 제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실수한 여러 가지가 생각나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가채점을 해보니 비관적으로는 57점, 부분 점수를 잘 받으면 70점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합격자 발표일까지는 2주 넘게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기억하기로는 발표일이 월요일 아침 9시인데 큐넷에서 영문 합격판은 월요일 00시에 발표한다는 사실을 동기가 알려줬습니다. 참, 그 친구 재주도 좋습니다.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아내는 건지. 큐넷 홈페이지에서 영어로 된 합격증을 볼 수 있으면 합격이라는데 마침 발표 전날이 근무 중이어서 동기와 함께 00시가 되자마자 머리를 맞대고 시험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두둥~! 동기는 기사, 산업기사 2개 다 합격, 저 역시도 합격이었습니다. 첫 기사 자격증이었습니다. 승진시험의 가산점(70%), 업무능력 향상(30%)이라는 목적이었지만 합격하고 나니 그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기사 자격증이 생겼습니다!!(산업기사가 아니고 기사입니다. 둘은 시험 난이도 등 확실히 다릅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제목 배경 사진은 실기 시험 후 집 앞 노을 사진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 1년간 도망다녔던 위험물산업기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