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119안전센터(이하 센터로 씁니다)의 경우 전입자는 3개 팀 중 하나로 배정받게 됩니다. 사람을 배치하는 주 기준은 대형차량 운전 가능 여부입니다. 소방차 크기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구급차 <펌프차 <물탱크차 <굴절 또는 고가 사다리차로 나뉩니다(기타 특수차량이 있지만 여기선 제외하겠습니다). 대형차량 운전이 가능하다면 사다리차 운용 자격증 여부, 자격증은 없지만 사다리차 운용 가능 여부에 따라 팀 배치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올해 초부터는 펌뷸런스(펌프차+앰뷸런스, 심폐소생술 등 간단한 응급처치가 가능한 펌프차를 말합니다)에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응급구조사(정확하게 따지면 여러 가지의 자격이 있지만 글 내용과 관련이 없기에 이만 줄입니다)가 타야 한다고 해서 전입 온 대원들을 배치하는 데 조금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어찌 됐건 이번 인사이동에는 우리 센터총 28명 중 10명이 바뀌어서 새로 온 인원과 센터에 남은 잔류 인원 중 몇몇은 기존에 근무하던 팀에서 다른 팀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자기가 근무하던 팀에서 계속 근무하고 싶어 합니다, 하루 일하고 이틀 쉬는 일이다 보니 근무팀이 바뀌면 일정이 꼬입니다). 저 역시도 팀 이동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다리차 운용 자격이 있는 사람을 팀별로 골고루 배치하다 보니 00 팀에서 00 팀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일단 팀이 바뀌면 담당하는 업무도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1. 차량 운전원이냐, 현장에 진입하는 경방대원이냐
2. 차는 기존에 내가 맡았던 차냐, 전혀 모르는 새 차인가(차량별로 크기, 조작법이 다릅니다, 차량별 매뉴얼을 정독해야 합니다)
3. 행정업무는 어느 분야?(서무, 방호, 예방, 식당, 도급, 의소대, 장비 중 한두 가지를 맡게 됩니다, 어려운 건 아니지만 처음 하는 일은 업무 처리 절차를 모르니 일이 손에 익을 때까지는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
4. 출동 대비 주변 지리 파악(매우 중요합니다, 출동 장소가 어디인지 알아야 재빨리, 안전하게 가죠)
이번 인사이동에서 저는 차량 운전원으로 담당하는 차, 행정업무 다 바뀌었지만 전에 해본 거라 크게 변한 건 없었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덤인데 각 차량별로 담당자는 자기가 맡은 차에 대해서는 자기가 제일 잘 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맡은 차를 현장에서 잘 조작하기(펌프차의 경우 화재나 구조 등 현장 상황에 맞게 주차하기, 차를 세우고 PTO(power take off, 동력인출장치)를 돌려 소방 용수를 방수하기 등, 사다리차의 경우 지휘관이 지정하는 장소-아파트 5층에 고립된 사람 구조, 건물에 달린 고드름 제거 등-에 바스켓을 올리고 내리는 일), 차가 움직이는 과정 이해하기(사다리차 주요 구조부 명칭, 차량별 제원, 사다리차 보조엔진 사용법, 차량 점검 요령, 차량 고장 시 대처 요령 등 알아야 될 게 많습니다) 등 센터에서 자기가 맡은 차는 본인이 제일 잘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선배들로부터 그렇게 배웠고 또 후배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저 역시 제가 맡은 소방차(펌프차, 물탱크차, 사다리차, 구급차)의 매뉴얼을 3~5번 정도 정독하고 조작 연습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문제는 새로 팀에 전입 온 6년 후배가 제게 하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배경설명이 필요하니 잠시 설명 들어갑니다. 사다리차 보조엔진(사다리차 유압장비 고장 시 사다리를 접는 용도로만 사용, 뱅가드 35마력 엔진)과 유압 구조장비(유압으로 차 문을 절단하거나 벌리는 기계, 사진 참조)는 연료밸브를 열어 시동을 걸고 난 후 조작이 잘 되는지 확인하고 다시 연료밸브를 잠가 연료라인 사이에 있는 연료를 모두 태워 자동적으로 시동이 꺼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라인 사이에 연료가 고착화되어 나중에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또한 연료밸브를 닫지 않고 시동을 끄는 경우 차량 움직임에 의해 연료가 엔진오일과 섞여 시동이 잘 걸리지 않기도 합니다. 몇년 전 제가 일하는 센터의 사다리차 보조엔진과 펌프차에 실린 유압구조장비의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 수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수리하러 오신 선배님(소방차량과 장비만 전문적으로 고치는 본부 소속의 소방관)께서 알려주신 내용이라 머릿속에 새겨놓았습니다.
펌프차에 있는 유압구조장비를 전에 배운대로 시동점검을 했습니다. 연료밸브를 열어 시동을 걸고 전개기를 시험작동한 후 다시 연료밸브를 닫아 자동으로 시동이 꺼지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연료로 인한 고장이 생기지 않는다고 배웠으니 당연히 그리 해야지요. 그걸 유심히 보던 6년 후배가 제게 와서 하는 말이 가관이었습니다.
1. 사다리차 보조엔진, 2. 유압구조장비
후배 : 00님, 이 장비 그렇게 안 해도 돼요, 굳이 연료 밸브 닫아서 다 태울 필요 없어요.(마치 본인이 저보다 이 장비에 대해 잘 안다는 듯이 얘기했습니다. 저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데 자랑스레 틀린 답을 말하며 저를 가르치려 하는 후배를 화끈하게 요리할까 생각했지만 참았습니다)
나 : (속으로 이 녀석이 나한테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표정 관리를 하며)
이거 몇 년 전에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 수리받은 거야, 그때 수리하러 오신 00님이 알려주신 방법이야, 사다리차 보조엔진, 유압전개기 등 연료밸브를 열고 점검 후 다시 연료밸브를 닫아 연료를 다 태운 후 자동으로 시동이 꺼지게 하라고 알려주셨어, 난 지금 그 방법을 제대로 쓴 거야. 안 그러면 저번처럼 고장 나거든(일부러 화내지 않고 수리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나도 너처럼 알고 있었지만 수리받은 후 제대로 된 방법을 배워서 네게 알려준다 그런 투로 동네 형이 아는 동생에게 얘기하듯 좋게 말했습니다. 6년 후배라지만 저와는 12살 차이가 나는 후배의 말투나 태도가 살짝 거슬렸으나 자신감이 지나치면 그럴 수 있지라며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후배 : 네
그리고 다시 제가 맡은 차 점검을 시작했습니다. 소방차는 특장업체(전국에 흩어져 있는 각 특장업체에서 현대나 대우, 볼보로부터 차를 받아 자신만의 소방차를 만듭니다. 그래서 차량별로 조작방법이 거의 비슷하지만 간혹 다른 것도 있습니다) 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A센터의 펌프차는 후진할 때 차량 위쪽 등과 아래쪽의 후진등이 같이 켜집니다. 하지만 B센터의 펌프차는 후진할 때는 차량 아래에 달린 후진등만 들어옵니다. 그래서 새로운 센터에 가면 다시 차를 조작해 보고 매뉴얼을 봐야 합니다. 안 그러면 간혹 실수할 때가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후배는 이런 사실을 몰랐나 봅니다. 30분도 채 되지 않아 자신보다 6년 선배인 제게 다시 들이대기 시작했습니다.
후배 : 00님, 이거 후진등 안 들어오는데요(마치 어투가 차량 담당자가 이것도 모르냐 하는 듯이 들렸습니다. 정말 거슬렸습니다, 아니면 후배는 사실만 알려줬으나 몇 분 전의 일로 제가 오해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나 : (짜증이 올라왔지만 참았습니다. 후배가 온 첫날부터 버럭 화내는 선배가 되기 싫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선배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후진등이 안 들어온다고? 어느 부분이 그래?
후배 : 후진할 때 저기 위쪽 등이 안 들어오는데요
나 : (그때 감 잡았습니다. 그 후배는 자신도 차에 대해서 잘 안다 이 점을 제게 강조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데 오자마자 첫날 그것도 왜 대드는 말투로 얘기하는 걸까요? 마치 선배의 잘못을 지적하듯 말입니다, 후배야 너 상대 잘못 골랐다) 아, 그거 내가 시동 걸고 후진할 테니 뒤에서 확인해 봐(저는 시동 걸면 당연히 후진등만 들어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배는 전에 있던 센터에서 자신이 몰던 차만 생각하고는 지금 차와 그 차의 작동방식이 당연히 같다고 여겼나 봅니다) 어때?
후배 : 어, 이제 후진할 때 위쪽 등이 들어오네요
나 : 그거 내가 차체등을 켜놓은 거야(차체등 스위치를 눌러 껐습니다) 어때, 다시 꺼졌지?
후배 : (놀라며) 어, 이젠 꺼졌습니다.
나 : 이 차, 보통 차처럼 후진할 때 후진등만 들어와, 차체등 버튼 눌러야 위쪽 등이 켜지는 거고
후배 : 네
그렇게 두 번을 들이대고 나서야 그 후배는 별 말 안 하더라고요, 왜 후배가 제게 이러쿵저러쿵 간섭했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6년 후배라 그냥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했습니다. 따로 불러 야단칠 일이 아니어서 그냥 내버려 뒀습니다. 다만 저 혼자만의 불쾌한 감정은 남아 있었습니다. 어찌 됐건 우리는 한 팀이고 출동 지령이 떨어지면 힘을 합쳐서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거나 서로 대립하게 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저 때문에 팀에 악영향을 끼치면 안 되니까요. 그렇기에 후배의 말투와 태도가 거슬렸지만 일부러 감정을 빼고 담백하게 사무적으로만 대했습니다. 집에서 아이들에게도 감정을 빼고 부드럽게 얘기하는 아빠가 되면 더 좋으련만 제가 부족해서 집에서는 그게 잘 안됩니다. 사무실에서 화날 때 겨우 담백하게 말하는 게 전부입니다. 많이 반성해야 합니다. 새로 시작한 아침의 교대점검 30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날이었습니다. 후배야, 궁금한 게 있으면 대드는 투로 말하지 말고 좋게 물어보자, 나 그렇게 깐깐한 선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