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경이었습니다. 오른쪽 발목 골절로 인해 장모님은 동탄에서 저희 집까지 매주 한 번씩 올라오셔야 했습니다. 저는 몸은 집에 있지만 다리를 다쳐 꼼짝할 수 없는 잉여인간이었고 아내는 용인과 서울의 학교에 강의를 나가니 초6, 초 4 두 아이를 보는 것 모두 장모님의 몫이었습니다.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근 두 달간 장모님과 함께 지내는 동안 저는 이상하게도 장모님이 "0 서방, 자네는~~~" 이렇게 말씀하실 때가 가장 무서웠습니다. 화를 내시는 것도 아니고 제 부족한 점을 평소의 목소리 톤으로 말씀하실 뿐인데 마치 사슴이 호랑이의 포효에 얼어붙듯이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장모님의 말씀이 틀린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내의 잔소리는 어찌어찌 개겨볼 수라도 있지만 장모님의 "자네는 ~~" 이 시작되면 저는 그저 한 마리 순한 양이 될 뿐이었습니다.
AVN(audio, video, navigation)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장모님의 "0 서방, 자네 ~~" 말씀이 시작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장모님께서 퇴근하고 온 아내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마주쳤는데 헤드라이트가 예전 할로겐 램프여서 밤늦게 운전하는 아내가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얘기였습니다. 전 그 말을 듣는 즉시 장모님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2018년에 산 아내의 차(티볼리)를 살 때 제 판단 실수로 옵션이 조금만 들어간 중간트림을 선택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티볼리에는 LED 헤드램프 대신 할로겐 램프가 달려 있어 요새 나오는 차들에 비해 저녁에는 가시거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최신 AVN(audio, video, navigation)을 옵션으로 고르지 않아 차 구입비용을 줄인 대신 따로 카센터에 가서 후방카메라와 카메라 화면을 띄우는 5인치 모니터를 달았습니다. 그래서 아내 차를 후진할 때면 차 중앙의 AVN에서 후방카메라 화면이 나오는 대신 앞유리 왼쪽의 5인치 모니터에서 후방카메라 화면이 나왔습니다. 제 실수였습니다, 그냥 풀옵션으로 할 것을 차 뽑고 나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그 실수를 바탕으로 2019년에 산 QM6(제 차)는 풀옵션으로 계약을 해서 후방카메라, AVN이 다 있고 LED 헤드램프도 있어 아내가 운전하는 티볼리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장모님은 이런 점을 감안해 아내의 차를 조금 손봐서 업그레이드하라는 주문을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장모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당연히 제가 해야 될 일이었습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하지만 먼저 우리 집 경제권을 쥐고 있는 아내의 결재를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 아내는 강의가 마무리되는 11월 말까지는 꽤 바빴습니다. 마침 강의가 끝날 때쯤 티볼리의 타이어 4짝과 엔진오일 교환이 맞물려 있을 때라 모두 처리하기에는 월급 사정상 조금 버거웠습니다. 손품을 팔아 찾은 타이어 가게에서 타이어 4개(금호 TA51) 교환 & 얼라인먼트 & 브레이크 패드(앞) 비용 총 47만 원, 공임나라 엔진오일 세트 교환비용(엔진오일, 오일필터, 에어필터, 공임 모두 포함) 5.4만 원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11월 말에 50만 원 정도의 수리비가 드니 LED 램프 교환은 내년에 하자고 했습니다. 한두 번 더 권했지만 결재권자의 의중이 그러니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경제권을 아내가 쥐고 있으니 편하긴 했습니다. 돈 문제는 신경 써도 되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음 해 7월 말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아내에게 슬쩍 얘기했습니다. 램프 교환 그거 할 때 되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신경 쓸 게 많았던 아내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저는 아내 차를 볼 때마다 생각났었는데...). 드디어 결재가 떨어졌습니다. 진작 알아봤던 카센터(비용은 싼데 좀 멀어요, 집에서 27km 거리)에 예약 전화를 했습니다. 티볼리 브라비오 H7 LED 램프 교환 14만 원, 룸미러 후방카메라 모니터 10만 원이었습니다.
1. 브라비오 LED 램프 2. 룸미러 후방카메라 모니터
제가 차 관리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마이클 어플에 꾸준히 차계부(엔진오일, 부품 정비, 주유 내역 등을 가계부처럼 쓰는 것)를 쓰는 것과 에어컨 필터 및 배터리 교환뿐입니다. 헤드램프 교환은 쉽다고들 하는데 똥손인 저는 아직 엄두가 나질 않아서 그냥 업체에 맡기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LED 램프 교환은 단 5분 만에 끝났고 차의 기본 부품이 아니니 차량 등록증에 인증스티커를 붙이고 인터넷으로 그 등록을 마쳐야 했습니다. 물론 카센터 사장님이 모두 해주셨습니다. 이젠 룸미러 모니터를 교환할 차례였습니다. 전부터 거슬렸던 티볼리에 달려 있던 5인치 모니터를 떼어내고 기어를 R에 놓을 때마다 룸미러에서 후방카메라 화면이 나오도록 할 예정이었습니다. 5인치 모니터와 룸미러 모니터의 배선이 같아(3.5파이) 따로 배선 작업은 하지 않고 5인치 모니터의 배선 단자에 그대로 룸미러를 연결해 3~40분 만에 모든 작업이 끝났습니다.
1. 5인치 모니터 2. 5인치 모니터에 티볼리에 설치된 모습과 비슷한 사진
작업을 마치고 사장님과 최종 확인을 했습니다. 기어를 후진 위치에 놓을 때마다 룸미러 모니터에 화면이 잘 나왔습니다. 새로 바꾼 LED 램프도 오렌지색 빛에서 흰색 빛으로 전보다 훨씬 더 밝아졌습니다. 이젠 아내가 밤 운전을 해도 장모님께서 안심하실 터였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차를 후진해 카센터에서 나왔습니다. 집으로 가기 위해 티맵에 목적지를 입력하려고 차를 세웠습니다. 차를 세우며 일부러 기어를 R에 놓고 룸미러를 봤습니다. 갑자기 느낌이 이상합니다. 룸미러 모니터에 후방카메라 화면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라, 왜 그러지?" 다시 해보니 잘 들어옵니다. 다시 카센터로 가서 말을 해볼까 하다 그냥 쓰기로 했습니다. 다만 마음 한 구석이 조금 찜찜했습니다. 집에 도착해 주차장에서 후진을 여러 차례 하며 시험했지만 룸미러 모니터는 별 이상 없이 잘 작동됐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24시간 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내의 타박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내 : 자기, 어제 교환한 그거 있잖아, 그거 잘 안 된다. 내가 교회에서 주차하다 후방 카메라 화면이 안 나오는 바람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나 : 어, 그게 왜 안 돼? 어쩌다 그랬는데
아내 : 주차하려고 후진할 때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각도를 맞추잖아, 그런데 화면이 안 나오더라고
나 :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네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카센터를 나서며 시험했을 때 화면이 나오지 않은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가서 살펴볼게, 차 어디에 있어?
아내 : 지하 2층에
지하로 내려가 차를 이리저리 운전해 보며 룸미러 모니터의 작동 상태를 살펴봤습니다. 이런, 전에 5인치 모니터를 썼을 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이번 제품은 기어를 후진으로 옮기면 10번 중에 1번은 모니터에 화면이 안 나왔습니다. 카센터 사장님께 전화했습니다. 사정을 얘기하니 제품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고 티볼리 차량 결함으로 그런 것 같다며 화제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티볼리는 센서 오류로 인해 가끔 후진등이 들어오지 않으며 그때 후방카메라 화면도 먹통이 된다는 문제가 갑자기 튀어나왔습니다. 차량 문제로 몰고 가는 것 같아 언짢았지만 좋게 물었습니다. 후진 기어를 놓았을 때 후진등이 안 들어오면 차량 문제지만 후진등이 들어올 땐 어찌 되는 거냐고 물으니 두루뭉술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확인 후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후진 기어를 놨을 때 차에는 후진등이 잘 들어왔습니다. 차량 문제는 아니었습니다.그런데 이젠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룸미러 모니터가 한 번씩 먹통이 될 때면 시동을 끄고 다시 켜야 제대로 작동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룸미러 모니터의 불량 또는 제품의 배선 문제 같았습니다. 다시 카센터 사장님께 전화해 이 상황을 말하니 그제야 제가 원하는 답이 나왔습니다. "기존에 있던 5인치 모니터로 복원하고 환불해 드릴게요."아마도 룸미러 모니터로 교환 후 문제가 없지는 않았나 봅니다. 카센터 사장님은 티볼리의 5인치 모니터를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습니다. 룸미러 모니터를 설치한 지 하루 만에 문제를 발견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안 그랬다면 환불은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30km 가까운 거리를 다시 왕복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환불받고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으니 기꺼이 갈 만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싹싹하게 작업을 해준 사장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길에 1.5리터 음료 한 병을 샀습니다. 얼마 되진 않지만 한 번 더 작업을 해준 것에 대한 제 나름의 보답이었습니다. 다행히 원상 복원 작업도 그리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한 10분 정도 걸렸을까요? 전에 결제한 카드전표를 취소하고 다시 계산을 마무리하며 음료를 건넸습니다. "사장님, 저 때문에 작업 한 번 더 하셨네요, 감사합니다. 더울 때 드시라고 하나 사 왔어요, 드세요." 얼떨떨한 얼굴로 음료를 받는 사장님을 뒤로하고 카센터를 나섰습니다. 모니터 화면이 나오지 않아 전화할 때 차량 결함으로 몰고 가는 사장님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서로 다투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제 성격상 웬만하면 갈등은 피하는 편이라 환불은 못 받겠거니 했는데 환불까지 받게 되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짜증 났지만 그때마다 꾹 참고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궁금한 게 있어 전화드렸는데요"란 말을 먼저 건넸던 게 카센터 사장님이 원상 복원과 환불 얘기를 먼저 꺼낼 수 있는 밑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말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