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은 귓등으로 듣자
집을 고치면서 가장 고민을 많이 한 건 역시 구조였다. 아파트처럼 방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용도실과 화장실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만큼 정형화되지 않은 구조를 마음껏 그려볼 수 있었지만, 그래서 더 어려웠다. 일단 집을 다 걷어내고 보니 집 안에 노출되는 기둥만 10개가 넘었다. 게다가 옆으로 길게 뻗은 일자형 구조여서 여기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공간을 구성해야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몇 번 구조 그림을 그려보다 깨달았다. 아파트는 정말 대단한 발명품이구나...!
집에 넣고 싶은 건 많았는데 공간은 한없이 부족했다. 30평 면적이 나온다는데 공간 쓰는 게 너무 어려웠다. 아파트 30평대에는 방 3개에, 화장실도 2개 들어가고, 거기에 다용도실까지 나오는데, 이 시골집은 영 내 마음 같지 않았다. 매일 밤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결국 우선순위를 정했다. (뭔가 잘 안 풀릴 때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1. 가장 중요한 공간, 주방
이리저리 우리의 삶을 생각하니 우리는 주방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을 마시고, 커피를 내리고, 도시락을 싼다. 도시에서도 그랬는데 귀촌 이후에는 외식이나 배달은 거의 불가능할 테니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더더욱 많아질 것이었다. 넓고, 두 사람이 들어가도 북적이지 않는 주방 공간이 중요했다. 더이상 주방은 단순히 요리만 하는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고양이들 간식을 챙기고, 물과 밥그릇을 닦아주고, 물을 마시고, 도시락을 싸고, 텃밭 채소를 다듬고, 요리를 하고, 밥을 먹고, 맥주 한잔 마시고, 설거지 하고. 생각보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주방에서 보낸다. 주방을 조금 더 집의 한 가운데로 가져와서 이 공간에서 더 많은 일을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 옷방은 필요한 것만 넣고, 세탁실과 합치기
한옥집엔 베란다가 없다. 다용도실도 없다. 따로 공간을 내어 이런 곳을 만들으려니 조금 아까웠다. 아파트 다용도실에 있던 물건들을 필요에 따라 다시 재구성했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옷방에 넣고, 고양이 화장실은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잡동사니가 있던 선반은 집 뒷문쪽으로 기둥 공간을 활용해 넣었고. 요리조리 구석 공간을 활용해 짐을 분산했다.
3. 용도에 따라 가구 위치는 바꿀 수 있도록
항상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TV보다는 밥 먹으면서 보고 소파에 누워서 볼 수 있도록 삼탠바이미를 구비했다. 소파도 그냥 일반적인 소파가 아니라 침대 프레임을 활용하고 남은 조각을 붙여 소파처럼 사용해서 언제든 위치를 변경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고, 테이블 역시 평소에는 사진 편집 등을 할 수 있는 책상처럼 쓰다가 손님이 오면 빼둘 수 있도록 했다.
아파트가 아닌 덕분에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를 고민할 수 있었다. 비슷비슷한 구조의 아파트였다면 너무나 편안하게 정해진 공간을 정해진 용도대로 사용했겠지만, 내 앞에 펼쳐진 너른 공간을 우리에게 맞게 잘 조각조각내어 원하는 공간을 디자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재미있었지만, 마지막까지 확신이 들지 않아 몇번을 고치고 고쳤다. (결국 세탁기/건조기 배관이 노출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큰 배움이라 생각한다.)
구조를 고민하면서 이런 집 구조 외에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그냥 주어진대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집 구조부터 어떤 사회의 한 시스템, 사회의 구조, 교육과 문화 같은 것들. 주어진대로 내 삶을 끼워 맞추며 살았던 건 아닐까. 하물며 집 구조가 그러한데, 다른 건 아닐까. 거기에 맞춰져서 이미 편안하니, 고민없이 선택하고 살아가는 건 얼마나 많을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아파트가 일률적인 집의 기준이 되어서인지, 가구도 가전도 그 아파트에 맞춰진 경우가 많다. 사이즈, 용도, 색상까지. 분명 사람들이 많이 찾는 건 이유가 있고, 최적의 편안함은 있겠지만 말이다.
일단 시골에서의 삶을 선택했으니, 앞으로 불편하고 이상한 것 투성이일 테다. 잘 기록하면서 도시에 길들여진 나를 돌아보고 싶다. 이세상 어느것도 당연한 건 없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것이 전혀 아니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노동과 희생을 편안함으로 가장하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분주하고, 정신없고, 의문스럽고, 고민스러운 집고치기 시간이 끝을 보였다. 귀촌을 결심한 지 네 달이 지나고 다섯달 째에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