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장 고성에서 동북쪽 2km 정도 떨어진 곳,
흑룡담 공원(헤이롱딴 공위엔 黑龍潭公園, 다른 지명으로는 '옥천 공원')에 다녀왔다.
돌로 포장된 리장 고성의 마을 거리가 그 무엇보다 참 좋았는데
흙을 보니 이 느낌도 참 좋다.
평소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 콘크리트 바닥돌 길에 익은 내 눈이
돌 길과 흙 길을 보고, 물론 돌과 흙은 서로 다른 느낌이지만, 무척 편안해한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택시.
상하이에는 별로 없던, 베이징의 빨간 택시.
반갑다.
나시족은 모계사회를 이루며 살아왔다고 한다.
농사도, 집 짓는 것도 여자들이 중심이 되어 해왔고 할머니가 집안의 큰 어르신 역할을 해왔다고.
남자들은 햇빛을 쬐며 여유를 즐기며 가사와 육아를 담당해왔다는데
과도해지면 굴레가 되겠지만, 이런 관습이 생긴 데에는 나름 필요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전쟁으로 남자들이 부상당하거나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해 여자들이 대부분의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거나, 먼 길 무역하러 다녀오느라 부재 기간이 길거나 험한 길에 돌아오지 못했거나...
<차마고도> 같은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여자들이 산에서 무거운 소금을 만들어 나르는 육체적으로 무척 고된 일을 했다. 남녀 같이 힘을 모아아 할 법한 일인데도, 그 필요와 이유가 사라진 이후에도 관습이 남아 가녀린 여성들에게 평생의 굴레로 작용하고 있었다. 관습과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변화해간다. 환경이 변화하고 외부에서의 영향도 있고.
또 한편, 육아와 가사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중국 요리의 경우 웍이라고 하는 큰 쇠 프라이팬 하나로, 그리고 묵직한 칼 하나와 큼직한 국자 하나로 웬만한 요리를 다 해내는 걸 볼 수 있는데 나로선 들기도 버거운 도구들.
육아 또한 만만찮은데, 아주 어릴 때는 밤낮없이 돌봐줘야 하고 아기 다리에 힘이 붙으면 무작정 돌아다니기에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위험으로부터 지키며 잘 키우려면 끊임없는 관심과 손이 간다.
또 아이들이 커가면 한 20kg은 거뜬히 들 수 있어야 한다. 요즘은 배달을 많이 해주지만, (물을 길어오고) 장바구니를 들고 아기를 안거나 업는 데에는 물리적으로도 상당한 힘이 든다.
듬직한 아빠 품에서 아이들은, 포근한 엄마 품에서 만큼이나, 거친 세상에 대해 우호적인 느낌을 형성해갈 수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넉넉한 애정.
흑룡담의 물은 옥룡설산에서 흘러내린 물로, 리장 고성의 여러 수로로 흘러들어간다고 한다.
멀리 옥룡설산이 보인다.
비기 오면 색이 더 짙어지는 흙을 배경으로
푸른 잎은 더 푸르고 하얀 석조 둥근 장식이 더 돋보인다. 대리석일까.
각 민족의상을 입은 이쁜 아가씨들이 각 문화의 자부심을 뽐내고 있었다.
기꺼이 포즈를 취해준다.
중국은 이미 다양성을 함축하고 있는 대륙.
이 다양성에 더 큰 존중과 자유가 주어지면, 그 힘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양성은 고유성이라는 힘을 내장하고 있기에.
멋지다.
프랑스 어느 현대 디자이너의 오뜨 쿠뛰르(Haute Couture - 소량 고급 맞춤옷) 작품 같다.
이 지역의 여성이 파리나 뉴욕 유명 디자인 스쿨을 다닌다면 독특하고도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어려서부터 이런 감각에 익숙하니.
나시족은 비록 사용이 제한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유일한 상형문자인 동파문자(东巴文)를 가진 민족이다. 리장 고성에는 이 동파문자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수공예품을 제작 판매하는데 그 중엔 옷도 있었다. 나는 이런 걸 꼭 산다. 여기서만 구할 수 있기 때문.
이곳엔 동파문자연구소도 있어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둘러볼 곳이 많은 장소이겠으나 비도 오고 해서, 옥룡설산을 마을에서보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옥룡설산의 물이 흘러 내린 곳을 한번 둘러본 것으로 만족하고 나왔다.
목부 고성이나 리장 마을을 볼 때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문화 수준이나 예술적 감각은 높아 보였다. 중국에 정복되면서 중국 한족의 문화를 받아들여 지역 나시족 문화와 잘 융합해내었다고 한다.
그런 그들의 문화이기에 현재 조악해보이는 것이 혹 있다면 아마도 유지 관리가 부실했거나 후대에 급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감각은 하루 아침에 형성되기 어렵기에. '문화 저력'이라는 말, 이유없이 나온 게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