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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ju Feb 11. 2019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

마음이 녹는 온도를 읽고

나는 펜을 잡고 글씨 쓰는 것을 좋아한다. 무언가 끼적이며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새해가 되기 전에 다이어리를 고르고 새로 나온 펜이 있는지 살펴본다. 그동안의 다이어리는 어디 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학생이 되고나서부터 기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고등학교 수험생활 동안은 다이어리라고 하기보다는 스터디 플래너에 가까웠던 것 같기 때문에. 길게 쓰지는 않아도 그날 있었던 일들을 조금씩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고, ‘지금의 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기록을 한다.

글씨를 쓰며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서도 있었지만, 수험생활을 하면서 그때의 순간을 기억하면서 미화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도 계기가 되었다. 공무원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검색해보고 합격수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몇 달, 몇 년을 공부했더라도 그 순간이 많이 미화되어있다는 것이다. 내가 합격하고 나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지나 보면 괜찮을 거야. 힘내!”라고 보이지 않는 터널 뒤의 모습이 괜찮다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이렇게까지 나의 바닥을 보았었고 좋았던 순간보다는 힘든 순간이 더 많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그 이후로부터 다이어리에 괜찮은 순간들도 기록하며 추억을 남기지만 괜찮지 않은 순간을 기록하며 나 스스로를 위로한다.

“오래도록 나는 위로받을 필요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괜찮은 척하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정말로 곧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통증은 혼자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이 부분을 읽고 과거의 나와 많이 닮았고 지금의 나와도 일부 겹치는 것 같아 격한 공감이 되었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가 토닥여주며 위로해주기를 바라지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도 않고 위로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그걸 싫어했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스스로의 중립을 지키며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모두의 사랑을 받을 필요도 없고, 모든 사람들을 신경 쓰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 피곤한 것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조금은 행복하지 않은 삶이었던 것 같다.

나의 이 완벽주의를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던 건, 특별한 계기로 바뀌진 않았지만 나의 감정을 일기로 남기면서부터인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만큼 되지 않았을 때 나의 감정은 생각했던 것만큼 끔찍하진 않았으며, 나에게는 그 정도 버틸 힘은 있었다. 과거의 나보다 완벽주의를 조금 내려놓았기 때문에 행복의 기준은 낮아졌을지 모르지만, 나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조금씩 바뀌었다. 예전에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작은 실수에도 힘들어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그걸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나 스스로를 믿는다. 그리고 그때의 감정을 숨기려고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괜찮지 않은 상황들을 이겨냈던 것을 기억하면 앞으로 올 수 있는 괜찮지 않은 상황 앞에서 나는 또다시 에너지가 생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괜찮은 기억과 괜찮지 않은 기억들을 기록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 나에게 칭찬과 위로를 아끼지 않는 것이 포장되지 않은 진심으로 사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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