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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듬 Jul 03. 2018

범인을 찾아라

교실 속 이야기

새벽녘, ㅁ이 꿈에 나왔다. 요즘 신경을 좀 쓰고 있는 녀석이라 꿈에 나온 것은 반가웠는데, 상황이 좋지 못했다. 어찌된 일인지 꿈 속 ㅁ은 많이 아팠고, 나는 꿈 속에서도 ㅁ의 담임인터라 늦은 시간에 약을 구하러 여기저기 백방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알람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꿈의 줄거리가 슬쩍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반가운 얼굴 꿈에서 한번 더 보니 반갑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넘기기로 했다.


5교시는 체육 시간이었다. 내가 점심 시간에 우리 반 친구들의 동태를 살피러 가서 수다를 떨고 놀다 돌아 온 후, 곧 아이들은 모두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으로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내 수업이었던 6교시. 아침부터 쌩쌩했던 ㅁ이,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기운이 쭉 빠져 있었다.


교복 바지에 지갑이 있었다. 지갑 안에는 삼만원 이상이 들어 있었다. 학생증 두 개와 버스카드도 들어 있었다. 책상 위에 두었던 바지 주머니 속 지갑만 사라졌다.


솔직히 교실 안에서 분실물이 생기면, 그걸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았다. 많은 친구들이 본인이 잃어버린 것인지 누가 가져가 버린 것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분실 시간, 장소 등을 유추하기가 어려웠다. 본인이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 손을 댄 것만 같은 상황일 때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 학급의 출입문과 창문을 항상 잘 잠그는 것이 아니 몰래 외부인이 드나 들었을 확률이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함부로 반 구성원 누군가를 짚어 용의자로 삼을 수도 없는 것이니. 분실물이 생기면 모두들 "어쩌지..." 하는 수밖에.


그래도 이번에는 ㅁ의 기억이 굉장히 상세하고 정확한 편인 것 같았다. 체육 시간에 ㅁ과 친구 둘이 마지막으로 나갔고, 학급에 다시 들어간 친구는 없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목소리에도 몸놀림에도 기운 하나 없는 ㅁ을 보고 있자니 맘이 참 딱하여, 가능하다면 지갑을 꼭 찾아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2학년만 6교시 수업인 날. 종례를 하고 학생부 교무실에 앉아 우리 반 복도를 찍은 CCTV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마 6월 28일 13시 35분부터 14시 20분까지는 우리 교실이 비어 있었을 것이다. 그 사이 누군가 왔다갔다면 유력한 용의자인 셈이다.'


주변 선생님들께서 "또 형사놀이 시작했구나. 우린 반()형사다. 그치?"하시는 농담에 웃어 보이고는 3초 단위로 넘어가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3초, 6초... ㅁ이 교실을 나서는 마지막 모습이 보이고, 그 이후로 복도는 정지 화면 같기만 했다. 수업 종이 치고 선생님들께서 교실에 들어가신 이후였다. 그렇게 3초, 6초...


57분! 낯선 외모의 학생이 나타났다. CCTV 화질이 나쁜 터라 얼굴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반 아이들 같으면, 그나마 CCTV에 가까이 섰을 때 형체를 보고 누군지 판단할 수 있는데, 이 학생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그러므로 외부인?


우리 반 뒷문 앞에서 왼쪽 복도를 돌아보고 휙 들어간 이 학생은 한 1분 뒤 앞문을 통해 달려 나왔다. CCTV 정면을 보고 달려 나왔음에도  도무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의 화질이 원망스러웠다. 하는 행동으로 보아 매우 유력한데.


상반신의 윗쪽만 줄무늬로 된 티셔츠.
왼팔에는 흰색 또는 회색의 손목시계.


3학년 교실이 있는 3층 복도를 어슬렁거려도 보고, 3학년 담임 선생님들께서 계시는 교무실에서 인상착의를 말씀드리고 제보를 받아보고, 다른 2학년 담임 선생님들과 1학년 교실마다 찾아가 학생들이 어떤 티셔츠를 입었는지 확인도 하고. 7교시가 끝날 때까지 분주하게 학교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녔다. 대체 줄무늬 티셔츠는 어디 있을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지나던 3층 복도에서 3학년 담당 영어 선생님을 만났다.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한 장 내게 보여주시는데... CCTV의 그 학생이 맞았다. 드디어, 한 시간만에 찾았다.


"아, 내가 얘를 찾아버렸네. 형님, 형님하면서 잘 지내는데. 잘한 일인데 왜 마음이 썩 좋질 않지."


선생님은 학생과 돈독하게 쌓아온 관계를 걱정하시는 듯했다.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학생을 위해서라면 잘못했을 때 바로잡아 주는 것이 옳기는 하지만, 내가 그 잘못을 직접 수면 위로 끌여 올려놓아 학생을 곤란하게 만들어 버리게 되는 상황은  항상 유쾌하지 않았다. 바람직한 일이지만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 나의 선택이 관계를 어그러뜨리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까지. 잘못을 들켜 곧 곤혹을 겪을 학생에 대한 안타까움도 살짝 들었지만, 그것도 잠깐. 나는 지갑을 찾아야 했다.


"혹시 너 5교시에 우리 반에 갔었니?"

"아니요."

"2학년 교실에 간 적 없어?"

"..."


사진을 들이밀자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빌린 돈이 많았다, 체육 시간에 화장실 간다고 나왔다가 들어갔다, 몇 반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다, 돈은 그대로 있지만 학생증과 버스카드는 진짜 모르겠다, 이번이 처음이다.'


학생의 말을 들은 나는 ㅁ에게 두 번을 전화해 확인을 해 보았지만, 학생증과 버스카드는 지갑에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어디에 가져다 놓았느냐 재차 물었지만 '결코 본 적이 없다'는 오리발. 속이 답답해 오던 차에 2학년 부장님께서 가까이 오셔서는 딱 한 마디 하셨다.


"여기서 해결할까. 경찰관님을 부를까."


피의자에게도 인권이 있다,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뭐 이런 '바른 말'을 믿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순식간에 바보가 되었다. 바보 중에서도 진짜 이 세상 최고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진실한 말 한 마디 듣지 못하면서 죄다 순순히 끄덕여 준 호구.


'학생증과 버스카드는 옥상 올라가는 계단에 내다 버렸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주에 다른 반에서도 삼 만원 정도를 훔친 것 같다.'


결과적으로 ㅁ의 지갑과 돈을 찾아주게 되어 참 좋았지만, 이 날 일은 내게 물음표 하나를 남긴 사건이 되고야 말았다. 똑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할 때, 나는 또 어떻게 묻고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달까? 협박 비스무리하게 말을 던지고, 답을 유도해 나가야 하나 하고.


#. 새벽녘, ㅁ 꿈을 꾼 건 어쩌면 예지몽이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정신없이 뛰어다니게 될 줄은. 다음에는 여유 있고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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