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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Oct 24. 2021

여전히 장래희망은

흙바닥에 돌멩이 하나로 그려온 세계

   어릴 적부터 장래희망을 적어내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언제나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작은 네모칸에 호기롭게 들어섰다가 어물쩍 사라져 버린 직업들은 떠올려 보기에도 숨 가쁠 정도다. 미처 써내지 못한 직업들은 아마도 어린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뿐이었다.


   나는 늘 무언가 되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밤마다 물렁한 침대에 누워 바라보던 낮은 천장에서 희미하게 발광하던 야광별이 더는 위로가 되지 않을 때면 두 눈을 꼭 감고 무엇이든 되어야 했다. 그 시절의 내게 <지금>이라는 시간은 조금 서글펐고 이따금 잔인했으므로 어디론가 도망쳐야 했다. 아직은 작고 어리던 내게 가장 빠르고 낭만적인 도피는 언제나 무언가가 되는 상상이었다. 장래희망이 아닌 장래희망'들'이 가득해 언제나 비좁던 나의 네모칸에는 사실, 꿈과 희망의 반짝거림보다도 녹록하지 않은 현실의 먼지들이 가득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렴풋하게 실감했던 현실은 조금 더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것들이 어제보다 오늘 더 줄어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희망하는 것과 선택은 다르고 선택은 결국, 선택지를 가진 사람들의 몫이라는 걸 실감하게 됐다. 학년이 올라 갈수록 빼곡하던 나의 장래희망들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때때로 희망이라는 말이 주는 잔인함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지만 여전히 장래라는 말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머니가 볼록한 사람들 틈에서 가진 거라곤 흙바닥에 돌멩이 하나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져 괴로운 날에는 오히려 더 집요하게 희망을 붙잡았다. 망연히 주저앉아 흙먼지를 먹거나 세상을 향해 있는 힘껏 돌멩이를 던지는 대신, 손에 쥔 돌멩이로 전혀 다른 세상을 그려보곤 했다. 그 시간은 그 시절 내가 움켜쥔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삼키지 않고도 배부를 수 있는 양식이 되어준 건 언제나 작은 노트에 그려보는 나의 미래였다. 책상도 없이 바닥에 엎드려 써나간 문장들은 내가 믿고 따라갈 단 하나의 지도였다. 그렇게 지금까지 문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이따금 어떻게 글을 쓰며 살기로 결심했냐고 누군가 물을 때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한다. 어린 내게는 읽을 책 보다 채울 노트가 많았다고. 장래희망이라는 네 글자에 가슴이 두근거리던 어린 시절에 품었던 근사한 직업들 가운데 작가라는 두 글자를 오롯하게 지켜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그 시절의 내게는 흙바닥과 돌멩이만이 전부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고 가능했던 세계가 있었다. 이제는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내게는 흰 종이와 펜이 가장 가깝다. 그래서 쓸 수밖에, 쓰는 수밖에. 

   긴 시간이 흘렀지만 오늘도 나의 장래희망은 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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