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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필적 글쓰기 Jul 08. 2016

퇴근도 법으로 규제해야 하는.

칼출근은 법이 아니어도 잘 지켜지는데...



어느 겨울의 퇴근을 회상한다.




 그들의 뒷통수엔 임용의 꿈이, 확신이, 불확신이 걸려있었다. 대학교 2학년, 나는 노량진 임용고시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원은 오층건물이었는데, 1층 입구에는 필터까지 쫓겨난 담뱃불들이 죽지를 못해서 살아있었다. 강의실은 삼십평 가정집만한 곳도, 백평 연회장 같은 곳도 있었고, 나는 매번 그 가정집과 연회장의 뒤축에 카메라짐을 풀었다. 강의를 하고 강의를 듣는 수백의 인해人海에서 나는 강의를 찍는 소수자였다. 이알못(이과를 알지 못하는)인 나는 <생물>강의가 인간 생물인 나완 어쩜 이리도 동떨어졌는가, 를 생각했다. 분류하고 파고들수록 복잡한 외떡잎과 쌍떡잎을 단순한 '나물류'로 알고 살았던 내 지난날이 귀여웠다. 여전히 나는 그들을 나물로만 안다. 수강생들의 뒷통수가 화면에 침범해선 안되고 판서가 지나치게 작아서도 안되며 강단에 선 강사의 행방을 놓쳐서도 안된다. 줌의 인 아웃이 다채로우면 안되고 촬영엔 촬영자의 개성이 들어가면 안됐다. 인강용 동영상은 생선 가시 발라내듯 취향을 발라내야 했다. 나는 가진 취향도 없거니와. 물리 수업은 물리력으로 나를 강의실에 묶어 두었고, 다음 교시는 교육학 수업이었는데 내겐 고역학 수업이었다. 나는 임용의 험난한 지경을 그때 언감생심 알아버렸다.



 여섯 시간 내리 강사 꽁무니를 쫓으며 찍은 영상을 담아 사무실로 내려갔다. 그러고도 퇴근은 어려웠다. 나는 애초에 주말 양일, 하루 여섯시간의 근무조건을 철석 믿듯 해서 들어왔지만, 이곳에서의 여섯은 여덟과 같은 숫자여서 여덟시간의 노동이 일상이었다. 형광등 밝은 노량진이라고 특별히 밤이 늦게 드는 것은 아니었다. 겨울밤은 짙고 무거워서 금세 낮을 잡아잡쉈다. 내 여덟시간의 근로는 항상 새드엔딩이었다. '들어가보겠습니다'는 '임금을 올려주십시오'나 '처우 개선을 해주십시오'같은 요구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유죄한 발언이었다. 나는 민망하면 말의 끝을 흩어버리는 버릇을 매 퇴근마다 반복했다. 내 일을 마치고 내 집에 가는 일이 왜 죄스러운 걸까. 사회적 합의에서 역행이나 하는 것처럼. 나는 지금도 그 때의 퇴근이 어렵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기상천외의 법안이 등장했는데 그 중 하나가 칼퇴근법이다. 알고보니 총선 공약이었다는데, 나는 이제야 듣는다. 귀가 좀 늦었다. 발의한 의원은 자신이 과거 바랐던 칼퇴에의 열망을 제 입법 권한에 실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렇다. 휴일 포함 1주 52시간 이내 근로 법정화 (셈법을 빌리자면 주 5일 x 하루 8시간 근로해서 40시간 + 1주 중 연장 휴일 근로시간 12시간), 포괄임금제(기본금에 연장수당까지 퉁쳐서 지급) 남용 제한, 회사는 업무 시작과 종료 시간을 측정, 기업이 일을 얼마나 시키는지 공시하라는 근로시간 공시제, 장시간 근로 시킨 기업에겐 그에 따른 부담금 징수.



 도입 이유는 "칼퇴하고 싶어!". 단순한 마음으로. 덜 단순하게 말하자면, 장시간 근로 관행은 근로자의 건강 악화와 일-가정 양립 불가, 정규직의 과중노동, 낮은 여성 고용률 등을 야기한다라 할 수 있다. 옳은 말이다. 형부의 야근은 언니의 저녁 시간을 상하게 만든다. 언니는 하루종일 일한 몸을 허공에 간신히 띄워놓고 조카를 먹이고 씻기는데, 그것마저 대충하지 않고 성의롭게 하는데, 더구나 언니 자신과 같은 체력을 공유하는 내가 별 도움이 되지 않을때, 나는 언니와 함께 형부의 야근을 저주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 사과나 호두로 저녁을 땜하는 형부, 정규직과 워킹맘의 과중노동, 여기저기 칼퇴가 기여할 부문이 보인다. 그렇다면 당장 시행하자고? 어디 이 세상이 그리 인자로운가.



 법안 발의 의원은 칼퇴근법이 일자리 창출에도 호재가 될거랬다. 노동시간이 단축됨으로써 일손이 부족해진 기업이 인력을 신규 채용할것이라는 논리다. 나는 왜 '기업의 채용'에서 불안을 느끼는지. 정규직의 부족해진 일손은 정규직으로 채워질까. 긍정의 대답이 주저된다. 아마 아닐 것이다. 달린 일손은 또다른 파트 타임 비정규직의 손일 것이다. 그 연약한 손. 그 손이 왜? 법 밖에 있어서 그렇다.


 

대우조선해양 직영 노조에서 느끼는 분위기와 협력업체 사장님들 만났을 때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노조 간부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 협력업체 사장님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하더라. 그나마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4대 보험에라도 가입돼있다. 하지만 '물량팀'(조선소에서 물량이 있을 때마다 팀장 밑에서 단기간 일하는 임시 노동자들)에 속한 노동자들은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다. 정부가 근무 경력을 증명하면 실업급여를 주겠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노동개혁인가 노동개악인가, 시사IN, 458호



물량팀의 정의를 보면 "조선소에서 물량이 있을 때마다 팀장 밑에서 단기간 일하는 임시 노동자"라고 되어있다. 칼퇴근법 시행에 따라 부족해진 정규직의 일자리는 '업무가 있을 때마다 관리자 밑에서 단기간 일하는 임시 노동자'들이 맡게 될 공산이 크다. 결국 잔업이나 기타 노동은 임시 노동자들에게 돌아갈텐데, 현재 논의 중인 칼퇴근법에는 그들의 근무 환경 보장을 위한 내용이 부재하다. 비정규 임시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처우 개선을 보장하는 내용이 빠진 칼퇴근법은 노동개악과 다름 없다. 노동개혁을 조롱하는 당에서 내놓은 대안이 개악이라면 그들이 갖는 비판의 자격은 사라지고 만다. 모두는 정규직일 수 없다. 그러나 모두는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처우를 받으며 일 할 순 있다. 19세기를 살았던 자유의지론자 밀은 평등의 원칙을 근로와 임금 간 공정한 비율이라 여겼다. 두 세기가 저물어 우린 현재에 닿았는데 공정이란 단어 앞에선 여전히 주눅이 든다.




 더불어 중요한 건 법안이 발의된 계기다. 계기가 된 사회의 분위기말이다. 야근이 많아서도 문젠데, 퇴근이 어려워서가 더 큰 문제다. 출근도 어렵고 퇴근도 어려우면 하루 중 언제 쉬울 수 있단 말이야. 근로자들의 빡침을 좀 알아서, 알아줘서, 알아 좀 먹어서 기업이든 정치이든 바뀌어야 한다. 기업과 정치 모두 사람이 하는 거니까 사람이 가져야 한다. 같이 살아보지는 관용을. 경사져 뜬 해는 양지를 만듦과 동시에 음지를 만든다. 정오의 해 만이 그림자 없이 온누리를 고루 비출 수 있다. 그런 정오의 법이 될 수있어야 한다. 음의 계기를 양의 현상으로 데울 수 있는 법 말이다.




근데 통과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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