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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 Oct 11. 2022

다시 도시에서

우리는 마법이 없어도 어른이 될 수 있나 보다.

아무리 노력하고 바라도 이뤄지지 않는 꿈과 지지부진하고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특별함의 기준에 지쳐버렸을 때, 제주도 남단의 아름다운 동네에 나 홀로 머물기로 했다. 내 멋대로 영혼의 고향으로 여기던 이 섬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또 다른 이름이자 내가 제주의 밤바다를 기억하며 지은 소설 속 주인공인 여현이 자라난 섬, 그가 어떻게든 떠나고 싶어 했던 섬, 그러나 다시 되돌아가야만 하는 그 섬에서 나는 어른으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어디든 홀로 갈 수 있는 어른으로서, 범섬을 보러 가겠다던 소설 속 어린 여현의 다짐을 실현하기로 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그렇게 혼자서도 걸어 나갈 수 있는 어른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아픔이 있었는지를 품고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병인 줄도 모르고 앓고 있었던 그 길었던 투병기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기 위한 그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언제나 벅찼던 도시를 떠나 땅끝으로 와서 나는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다른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유별나지도 않은, 잔잔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 간의 제주 산책.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그 바다와 산책 덕분에 나는 아직도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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