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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Ji May 11. 2022

16. 마흔, 이른 갱년기를 대하는 태도

결국 사람은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갱년기 증상 같은데요?"

의사의 말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갱년기라.... 생각지도 못한 증상인지라, 정말 나이를 먹는 건가, 절망감이 내 몸을 감싸는 듯했다.



작년 9월, 몇 개월 전부터 목이 타는 듯 열감이 올라왔고 심장이 자꾸 두근거렸다. 친한 엄마 중 한 명이 말했다.


"언니 그거 갑상선에 문제가 있어도 심장이 막 두근거려요. 내가 가는 병원에 한 번 가봐요."


엄마는 갑상선 암수술을 했고, 언니는 갑상선 오른쪽에 물혹이 있다 하니 나도 그럴 것 같은 미심쩍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개해준 갑상선 전문병원에 가서 혈압을 쟀다. 간호사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혈압이 너무 높은데요?"

"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숫자를 확인했다.

"160"

"네? 이거 잘못된 거 아니에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에 간호사가 조금 있다 한 번 더 재자고 했다.

그때부터 심장은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164예요. 혈압이 많이 높네요."

아버지 쪽 친지들이 고혈압이라 가족력이 있기는 했지만, 왜 갑자기 혈압이 올랐을까 계속 의문에 의문을 가지고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높은 혈압 결과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듯했다.




"갑상선은 깨끗해요. 그런데 혈압이 높게 나오네요."

"네, 요즘 들어 얼굴에 열감이 있고 머리도 자주 아팠고, 목이 조금 싸한 느낌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기분 나쁘건 심장이 간헐적으로 두근거려서 답답해요."

"아무래도 증상이 갱년기 증상 같습니다. 갱년기 증상이 오면 얼굴에 열이 나고 추웠다 더웠다 하기도 하며, 혈압이 올라가기도 하거든요."




갱년기는 쉰이 넘어오는 것이 아니었던가, 내 나이 마흔여섯... 갱년기가 오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을까. 억울함마저 들었다. 잠을 잘 자기 위한 약과 혈압약을 처방받아 왔다. 두툼한 약봉지를 받아오면서도 '오진일 거야. 무슨 갱년기며, 고혈압이라고... 기계가 꽉 쪼아서 갑자기 신경 써서 그럴 거야' 부정하며 집으로 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혈압이 올라간 원인이 생각났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의 일상생활이 원인이었다. 가뜩이나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무엇을 했겠는가. 먹이를 모아두는 다람쥐처럼 책상 주변을 책으로, 노트로 둘러쌓아 놓고 그 속에 파묻혀 책도 보고 유튜브를 보기도 했다. 의자에 몇 시간이나 앉아 사부작 거리며 작업을 했다. 커피와 군것질 거리를 입에 물며 한량의 생활을 이어갔다. 입맛 까다로운 아이는 "요O요 시켜먹자."를 외쳤고 점점 배달음식이 집밥을 밀어내었다. 바깥 생활보다 실내 생활과 조미료 가득 배달음식으로 내 몸이 망가져 갔던 것이다.




다리가 굵어지고 골반 , 허벅지가 굵어졌다. 다리에 혈액순환이 안된다고 느꼈을 때 뭔가 다리에서 찌르르 통증도 느껴졌다. 두통의 간격이 자주 일어났고 어깨가 자주 뭉쳤다. 아무리 작은 습관으로 스트레칭과 짧은 요가, 계단을 이어가도 성적이 좋지 않은 (고혈압, 갱년기라는 꼬리표) 결과물의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참담했다.



"야, 키 160도 아니고 혈압?" 언니가 놀리듯 말했다.



어디서부터 수정해야 할까? 곧 있으면 쉰이 될 텐데, 이대로의 건강으로 이어간다면 얼마 남지 않은 마흔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단칼이 필요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니, 카페인을 줄이자. 아니 끊자. 이건 아주 작은 습관을 쓸 게 아니야. 그냥 끊자. 단호하게!'




2021년, 9월 7일

나는 그렇게 좋아했던 커피를 끊었다. 단 번에... 심장을 건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한 일은 걷기!

그날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계속 집 근처 동백섬을 걷는다. 저녁 먹고 매일 한 시간 걷는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걷는다. 살기 위해서 그리고 갑자기 변하는 내 몸의 신호를 조금 늦추고 싶은 내 욕심이기도 하다. 덕분에 혈압은 정상을 유지하고 있고 심장의 두근거림도 거의 사라졌다. 거짓말처럼 얼굴 화끈거림이 없어졌다.




'갱년기가 내게 시간을 주는 건가?'

갱년기를 겪은 주변 지인의 말을 들으면 그런 증상들이 있다가 없다가를 몇 년 반복하다 폐경이 되고 뼈마디가 쑤시면서 갱년기가 온다고 했다. 만약 내게 진짜 이른 갱년기가 지금 온다 해도 처음 받았던 충격을 경험 삼아 담담히 갱년기를 받아들일 것 같다.





<청소기에 갇힌 파리 한 마리>라는 그림책이 있다. 슬픔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5가지 단계가 부제목이다.

청소기 속에 갇힌 파리는 나가지 못하는 현실을 부정하며 상실감을 나타낸다. 분노하고 집착하다가 결국 '에라 모르겠다, ' 하고 청소기 안에 갇힌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용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러자 우연히 다시 청소기 밖으로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청소기에 갇힌 파리의 부정-타협-절망-분노-수용의 5단계의 마음처럼 나 역시 이른 갱년기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으며, 왜 이렇게 일찍 오는 건지, 그동안 나빴던 생활태도를 후회하기도 했지만 결국 사람은  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짱짱했던 2,30대를 지나 다시 새롭게 받아들여야 마흔, 곧 지나갈 마흔을 아름답게 이별할 준비를 하는 것, 다가오는 갱년기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일이야 말로 한층 더 단단한 뿌리를 뻗은 마흔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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