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3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는 말은 이제 그만 : 자비를 구하는 을의 언어>
1.
“제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화가 안 나겠냐고요.”
누군가와 대립하다 보면 자주 꺼내게 되는 말이다.
상대방에게 내 처지를 이해시키려 애쓰는 순간 이미 우리는 을의 입장이 되어버린다. 나 스스로 을의 이름표를 다는 행위다.
2.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는 말은 결국 부탁과 구걸에 가깝다.
내가 얼마나 힘들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알아달라며 사정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그동안 혼자 삭이고 참아온 시간들을 이해해달라는 애원이다.
상대방이 내 말을 듣고 갑자기 정색하며 사과를 한다면 오히려 더 비참해진다. 상대는 나에게 그래도 되니까 그렇게 행동했는데 나는 지금 막 구차하게 동정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본인의 말로 상대를 굴복시켰다며 뿌듯해하는 대신 자기가 지금까지 왜 그런 취급을 당해왔는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3.
“팀장님, 제 입장도 좀 고려해 주세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힘든 사정과 고충을 거론하며 이해시키려 애쓰는 모습은 그저 나약하게만 보인다.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주체적일 수 있다. 자신을 약자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팀장님 지시 내용은 잘 알겠습니다. 다만 제가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파악한 내용이 있는데요, 이런 이슈도 고려해 보시면 좋겠네요.”
자신의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순간 변명이 되어 버린다. 이럴 때는 오히려 팩트로 승부를 보는 편이 낫다. 자신의 어려움이 아닌 상황의 조건을 거론하는 형태로 문제를 제기하면 된다.
4.
이러한 원리는 인간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며 매달리기보다 내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편이 낫다.
각자의 생각과 판단을 이야기한 후 서로 상대방의 처지를 납득하거나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보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그동안 나는 알게 모르게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작정하고 말하지 않으면 내 생각이나 감정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나를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는 증거다.
상대가 내 말에 나의 입장을 이해하고 미안해한다면 나를 위한 배려가 아닌 자비다. 나는 졸지에 상대의 선처에 고마워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5.
갑과 을이 맞서는 상황에서 ‘입장 바꿔 생각하길’ 원하는 쪽은 언제나 을이다. 갑은 을의 상황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그동안 무기력하게 상대에게 끌려다녔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드러내지 못한 관계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부터라도 당당하게 내 입장을 밝히고 주장하자.
*3줄 요약
◯상대에게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는 말은 구걸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주관을 숨기고 끌려다니기만 하면 어느 순간 상대는 나를 무시하며 신경도 안 쓴다.
◯이해를 구하지 말고 당당하게 내 입장을 밝히며 건강한 관계를 만들자.